③ 두타제일 마하가섭 <하> 결집

부처님, ‘곽씨쌍부’로 교단 미래 부촉

흔들리는 교단 보고 경전 결집 발원

왕사성 칠엽굴서 500아라한 제1 결집

“세세생생 이 경장 지키자” 합송

부처님께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평소 부처님에게 수행자로서 인정받았던 가섭 존자는 자연스럽게 교단을 이끌게 된다.부처님께서는 가섭 존자가 교단을 이끌 인물인 것을 암시했었다. 가섭 존자는 왕사성에서 500아라한과 제1결집을 주도해 율장을 정하고, 불법이 이어지는데 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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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님의 열반

인도 전역을 유행하며 교단을 정화하던 어느 날이었다. 가섭 존자는 뒤늦게 사리불과 목건련 존자의 열반 소식을 듣게 됐다. 한동안 슬픔에 잠겼던 가섭 존자는 부처님의 안위가 걱정됐다. 가섭 존자는 그 소식을 가져온 이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서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

“부처님께선 슬픔에 잠긴 제자들을 위로하시고 다시금 수행 정진하고 계십니다.”

부처님도 가섭 존자와 같이 두타행을 펼치고 계셨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가섭 존자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가섭 존자는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인도 땅은 넓었다. 두 달은 걸려야 당도할 수 있는 거리였다. 가섭 존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길을 재촉했다.부처님이 계신다는 마가다국 북쪽에 당도했을 때였다.

“스님들 천관사에 가시는 모양인데 늦었습니다.”

길에서 만난 한 행인이 느닷없이 가섭 존자를 보고 이런 말을 전했다.

“늦었다니 무슨 말입니까?”

“부처님 다비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 아니었습니까?”

“부처님 다비식이라니! 무슨 말씀이시오?”

“부처님께서 이래 전에 열반에 드셨고 오늘 천관사에서 다비식이 있었습니다.”

가섭 존자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부처님은 마가다국 파바 마을에서 대장장이 아들 춘다가 올린 공양을 받고 열반에 드신 것이다.함께가던 가섭의 제자들도 울음을 터뜨렸다.

다시 발길을 재촉한 가섭 존자가 천관사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고 달빛만이 다비식장을 비추고 있었다.

“아...다비식마저 보지 못하다니”

가섭 존자가 탄식을 터뜨리고 있을 때 아난존자가 다가왔다.

“가섭 존자님! 못 오시는가 했습니다.”

“다비식은 끝났소?”

“아닙니다. 장작에 불이 붙지 않아 다비를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마침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관으로 다가갔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부처님의 발이 마치 가섭 존자를 기다렸다는 듯이 관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놀란 가섭 존자는 다시 보았지만 환영이 아니었다.

〈대반열반경〉에서 전하는 곽씨쌍부(槨示雙趺) 일화다. 가섭 존자는 이를 보고 더욱 슬퍼하면서 제자들과 더불어 오른쪽으로 일곱 번 돌고, 눈물을 글썽이며 장궤 합장하고 게송으로 슬프게 탄식했다.

“괴롭고 괴롭습니다. 대성인 존자이시여! 저는 지금 가슴을 도려내는 듯 고통스럽습니다. 세존이시여, 멸도하심이 어찌하여 이렇게 빠르십니까? 대비하신데도 저를 잠깐 기다리지 못하셨습니까?”

가섭 존자가 목메어 슬피 울며 이 게송을 끝내자, 부처님께서 큰 자비로 두 발을 천 개의 살이 달린 바퀴 모양으로 관 밖으로 발을 내보였다. 이때 가섭 존자와 모든 제자들이 부처님의 발을 보고 놀라움과 함께 예배했다.

가섭 존자는 그 현실 앞에서 놀라움과 함께 부처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한 가르침을 떠올렸다. 바로 수행으로 살라는 것이었다.부처님은 머리가 아닌 행동하는 실천을 강조했다. 부처님 자신부터 사람들의 길을 가르쳐주고, 또 스스로 수행의 길을 걸었다. 열반마저 그 길 위에서 이뤄졌다.

그런 삶에서 발은 ‘구도’의 상징이었다.부처님이 죽림촌(竹林村)에 안거할 때 부처님은 자신의 입적 후 교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부처님이 보인 발은 그 제자들에게 자신의 입적 후 어떻게 교단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었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가시면서 수행이 가장 올곧은 가섭 존자에게 불법의 전승을 당부한 것이었다. 장작더미에서 저절로 불길이 일었다.

아난 존자가 가섭 존자 곁으로 다가와 울먹이며 말했다.

“마치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님이 오시기를 기다리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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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들리는 교단

가섭 존자는 부처님의 열반이란 큰 파도가 물러간 후 고요한 숲속에서 여느때 처럼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한 계절이 훌쩍 지나고, 장마철이 다가오자 문제가 생겼다.

부처님께서 열반 후 교단 내 아라한들이 하나 둘씩 열반하는 것이었다. 상당수의 아라한들이 열반해버렸거나 열반을 앞두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는 또 하나의 걱정거리였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가섭 존자는 숲 속의 나무사이를 걷다가 우연히 다른 비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대반열반경〉에는 이 일화가 전해진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부처님 열반으로 인한 교단의 공백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무엇 그리 걱정스럽소? 사실 부처님은 늘 우리에게 아주 사소한 행동, 이를테면, 숲 속에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를 버리는 것까지도 간섭하시었소. 우리는 어린 아이들이 아닌데도 마치 어린 아이를 대하듯 하셨소. 사람이 먹다가 남은 것은 똥으로 나오게 마련이고, 몸 밖으로 나온 것은 숲 속 어딘가에 버려지게 마련인데, 그런 것들 하나에까지 일일이 규법을 적용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었소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세존의 열반으로 이제 우리가 오히려 더 개선하고 개량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셈이 아니겠소?”

이 말을 들은 가섭존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가섭존자는 결심한다.

‘세존의 행적과 가르침을 하나로 담아야겠다. 어찌 법을 언어로 담을까만은 그렇게라도 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는 무소의 그림을 여우로 그려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결심한 그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무려 45년 동안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이들부터 각자의 근기에 맞게 해석하고 이해한 가르침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가섭존자는 생각했다. ‘세존의 가르침은 이러저러하면 깨달을 것이다’가 아닌 ‘깨달은 이는 이러저러하고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 구나’가 되야 한다. 가섭존자는 아라한들로 구성된 결집을 생각했다.’

가섭존자는 교단 내에 아라한의 숫자가 열반으로 더 줄어 들기 전에 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개월 뒤 왕사성 칠엽굴에서 500명의 아라한이 모이는데 이 것이 바로 제1결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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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의 결집

이 1차 결집은 부처님을 곁에서 모시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어 다문제일(多聞第一) 이라 불렸던 아난존자가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우팔리존자가 율장을 외우고 500 아라한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아라한으로 결집의 참여를 제한한 것은 1차 결집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의미하며 부처님의 법을 엮는 것을 매우 신중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가섭존자는 칠엽굴에서 아라한들에게 말했다.

“500의 아라한이신 비구들이여 부처님의 열반으로 교단은 어미를 잃은 사슴처럼 쓸쓸하고 별을 잃은 밤배처럼 두려웠지만 이제 결속의 힘으로 가르침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고, 후세의 모든 교학들에게 부처님의 사자후를 그대로 듣게 해주어야 합니다.”

가섭존자의 짧지만 분명한 의지의 표현을 담은 처음 말이 나가자 500 아라한들은 한결 같은 음성으로 합장하며 합송했다.

“우리들은 세세생생 이 사바세계에 머물면서 이 경장들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가섭존자가 입을 열었다.

“아난존자여, 대중들이 증명하여줄 부처님의 말씀을 풀어라. 부처님은 처음 어느 곳에서 누구에게 어떤 법을 말씀 하셨는가?”

이에 아난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지긋이 감고 하나 하나의 장면들을 추억 한 뒤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그때 세존께서 녹야원에서 다섯 수행자들을 위하여 초전법륜을 굴리시니……”

이러한 아난존자의 말에 500 아라한들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가르침을 확인했다.

이렇게 진행된 1차 결집으로 부처님의 법이 각 개인이 지니고 외워 전달하여 발생하는 오해를 줄일 수 있고 각지에서 말씀하신 부처님의 법을 한곳으로 모을 수 있었다. 이는 불교의 2500 여 년 역사에 있어 가장 큰 불사였다.

그 때에 합송하여 결집한 경과 율이 4차에 걸친 지속적인 결집을 통해 성문화됐다. 그것이 다시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 오게 된 것이다. 경전이 결집됨으로써 가섭 존자의 원력은 이루어졌다.

〈아함경〉에서는 가섭 존자가 아난존자에게 말한 내용이 전해진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면서 내게 지혜안을 여는 이 법문을 그대에게 전하라고 하셨네. 그대는 신중하게 이 법문을 지켜 결코 법맥이 끊기지 않게 해주게”

두타행으로 참수행자로 살며 그 법이 현재까지 이어지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가섭존자. 가섭존자의 원력은 현재도 수많은 경전을 통해 우리 곁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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