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섭의 염화미소 보고 미묘법문 부촉③

두타제일 마하가섭 <중> 두타행

 

가난한 집 탁발… 유마힐 만나 반성

타락한 사원의 사문 승적 박탈

교단에 수행의 새바람 일으켜

부처님 당시 교단은 발전을 거듭했지만 그 이면에 불법을 빙자한 외도를 비롯해 나태한 수행자들로 인한 문제가 다양하게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섭 존자는 수행자로서 교단의 모범이 됐다.

부처님은 가섭 존자의 두타행을 비롯한 수행을 크게 찬탄하며 정법을 그에게 전했다.두타행에는 차별이 없다다자탑에서 부처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은 가섭 존자는 죽림정사에서 우바리 존자를 만나 계율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내려주신 두타행을 수행할 장소를 물색했다.

두타행은 의식주에 대한 탐착을 버리고 무소유정신으로 심신을 수련하는 불교 수행이다. <잡아함경> 권41에서는 두타행을 헐뜯는 자는 나를 헐뜯는 것과 다름없으며, 두타행을 칭찬하는 자는 나를 칭찬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전해진다.

당시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두타행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가섭 존자는 칠엽굴에 은둔한 채 수행정진했다. 가섭 존자가 탁발하기 위해 왕사성으로 나갈 때의 일이었다. 가섭은 가난한 집을 골라다녔다. 육바라밀 중 보시의 공덕은 무량한 것이다. 가섭은 걸식함에 있어 가난한 집과 부유한 집을 가리지 않는다는 계율을 알고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우선 구제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가섭은 재가불자로 유명한 유마힐과 마주쳤다.

“가섭님, 부자를 버리고 굳이 가난한 사람에게 탁발하는 것은 그 자비심을 널리 펴는 일이 못되는 것이라 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탁발은 평등한 부처님 법에 머물러 차례대로 행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마을에 들어갈 때는 빈 마을이라 생각하며 들어가고, 형상을 보더라도 장님같이 보며, 냄새는 바람같이 느끼고, 맛은 분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찌 가난한자와 부유한자를 구분할 것입니까?”

가섭 존자는 유마힐 거사와의 대화를 통해 보시와 자비의 공덕은 계층의 구별이 없음을 깨달았다. 가섭 존자는 분별심을 낸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가섭 존자는 부처님의 분소의를 받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수행자로서 새로운 결심을 했다.

  • 연꽃 한 송이와 가섭의 미소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서 법을 펼치실 때였다. 영산에서 범왕(梵王)이 부처님에게 설법을 청하며 연꽃을 바쳤다.

그때였다. 부처님이 설법을 하지 않고 대중들에게 연꽃을 들어보였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부처님의 행동에 모든 대중은 영문을 모를 뿐이었다.

그 것을 본 가섭 존자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 때의 일을 염화미소(拈花微笑)라 한다. 부처님께서 설하고자 한 뜻을 가섭 만이 짐작한 까닭이었다. 그 미소를 본 부처님은 가섭 존자를 비롯한 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서 전해지는 내용이다.

“나는 때가 되면 보이려고 깊이 간직한 법이 있다. 실상은 상이 없음이 진실이다. 이 미묘한 법문은 글이나 말로 표현하여 전하기 어려운 경지이기에 따로 전하며 이를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에게 마음을 전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아함경> ‘중본경’ ‘대가섭품’에서의 일화다.가섭 존자가 어느 날 사위국의 고요한 숲 속에 오랫동안 머물다가 길게 자란 수염과 머리, 헌옷을 입은 채 기원정사에서 열린 부처님 법석을 찾았다.

사람들이 말은 안했지만 가섭 존자가 오랫동안 수행해 남루한 모습을 보고 비웃고 깔보는 마음이 들었다.이때 다자탑 앞에 좌정하고 있던 부처님은 무리 맨 뒤쪽에 있던 가섭 존자를 불러 자신의 자리 절반을 내어주며 앉게 했다. 가섭 존자는 부처님께 말했다.

“저는 부처님 무리 중 끝의 제자인데 저에게 자리를 나눠 주시니, 감히 뜻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그러자 대중들은 모두 생각했다.

‘가섭 제자는 무슨 덕이 있길래 부처님께서 자리를 나눠 주셨을까?’

부처님께서는 대중들의 생각을 알고 말했다.

“가섭의 행이야말로 성인과 같다. 나는 사선(四禪)의 선정을 닦아 마음을 쉬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손실된 것이 없는데, 가섭도 사선이 있고 선정의 뜻을 얻었다. 나는 크게 인자한 마음으로 일체를 사랑하는데, 가섭의 인자함도 이와 같다. 나는 대자비로 중생을 제도하는데 가섭도 역시 그와 같다.”

  • 정법의 길을 떠나다

당시 부처님의 교단은 죽림정사와 기원정사를 거점으로 교세를 넓혀 인도 전역에 수많은 사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수행자들은 나태해지기 시작했고, 그 본분을 망각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가섭 존자가 부처님께 물었다.

“세존이시여, 전에는 계율로 정한 것이 적었지만 수행자들이 즐겁게 배웠는데, 지금은 많은 계율을 정해도 즐겁게 배우는 이들이 적은 까닭이 무엇입니까?”

부처님은 가섭 존자에게 말했다.

“지금은 명탁, 번뇌탁, 겁탁, 중생탁, 견탁의 시대라 중생들의 선법이 줄었기 때문에 내가 많은 계율을 정해도 즐겁게 배우는 이들이 적게 되었다. 나의 정법이 소멸하려 할 때는 정법과 유사한 법들이 나오고 그러한 법들이 넘쳐나면 정법은 곧 사라지고 만다”

부처님은 이어 정법이 사라지는 과정에서는 수행자들이 훌륭한 스승을 공경하거나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 마음을 낮추어 공양하지 않고, 법을 받들어 실천하지 않고, 교단의 질서를 어지럽히면서 수행에 힘쓰지 않고, 마음을 집중하는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 등의 다섯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가섭 존자는 정법을 지키기 위한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부처님은 가섭 존자에게 두타행을 수행덕목으로 정해주며 그릇된 사문의 유형을 조목조목 일러준 바 있었다.

“사문에는 크게 네 종류가 있다. 겉모양만의 사문과 남을 속이는 사문이 있고, 명예와 명성을 구하는 사문과 진실로 수행하는 사문이 있다”

가섭 존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길로 나서 사원의 실태를 살피던 어느날 이었다. 가섭 존자는 한 젊은이에게 길을 물었다.

“젊은이, 혹시 이 부근 절이 어디 있는지 아시는가?”

“절이라면 다른데 가서 알아보슈”

젊은이의 쏘아붙이듯 하는 말에 가섭 존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 때였다. 멀리서 걸어오던 한 여인이 가섭 존자를 보고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길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이 슬금슬금 가섭 존자를 피하고 있었다. 부처님 법이 인심을 잃었다는 방증이었다.가섭 존자는 그 마을의 사원에 당도했다. 마당에 깔린 대리석부터 조경을 위한 나무까지 사원은 사치스럽기만 했다. 가섭 존자는 그 사원의 수행자들을 불러 모았다.

“부처님께서 사원을 허락하신 것은 수행을 위함이 아니었던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사문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집단이 아니다. 그대들의 승적을 박탈할 수 밖에 없으니 그리 알라”

가섭 존자는 단호하게 각 지역의 타락한 사원과 수행본분에서 어긋난 승려들을 일깨웠다. 그로 인해 교단에 다시금 수행의 바람이 일도록 이끌었다.<증일아함경> 불체품에는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의 이런 수행정신을 크게 찬탄하는 대목이 나온다.

부처님께서 라열성(羅閱城)의 가란다죽원에서 법을 설할 때 나이가 많은 가섭 존자를 부르며 말했다. “가섭아, 그대는 나이도 많고 노쇠하여 기력이 없을 것이다. 그대는 지금부터 걸식과 온갖 두타행을 중단하고 또 여러 장자의 공양과 그들이 주는 옷을 받도록 하라.”

부처님의 말씀에 가섭 존자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부처님의 분부를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때가 돼 걸식할 적에는 가난한 집과 부자를 가리지 않고 한곳에 한 번 앉으면 끝끝내 옮기지 않았으며, 두타행을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와서 본래 익힌 것을 버리고 다시 다른 행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훌륭하다, 가섭 존자. 그대는 중생들에게 많은 이익을 주어 한량없이 많은 사람들을 건질 것이다. 두타행이 세상에 남아 있으면 내 법도 또한 이 세상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비구들은 수행을 하되 가섭이 익혔던 것처럼 해야 하느니라.”

  • 두타행은

마하 가섭 존자의 ‘두타(頭陀)제일’ 칭호에서 ‘두타’는 산스크리트어의 ‘투타울’의 음사로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떨치는 수행을 말한다. 두타의 실천 항목으로서는 열두가지가 있어 ‘십이두타행’이라고 한다. 십이두타행△재아란약처(在阿蘭若處) 마을과 떨어진 산림 속에서 산다. △상행걸식(常行乞食) 언제나 탁발 걸식에 의해서 생활한다. △차제걸식(次第乞食) 걸식을 하는데 있어서 집의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수일식법(受一食法) 하루 한 끼만 먹는다. △절량식(節量食) 많이 먹지 않도록 양을 절약한다. △중후부득음장(中後不得飮漿) 중식 이후에는 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착페납의(着弊納衣) 폐물인 누더기로 만든 옷을 입는다. △단삼의(但三衣) 세 개 옷밖에는 갖지 않는다. △총간주(塚間住) 무덤들 사이에서 산다. △수하지(樹下止) 나무 아래에 산다. △노지좌(露地坐) 한 곳에 앉아 지낸다. △단좌불와(但坐不臥) 언제나 앉아 있고 드러눕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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