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8주년 특집 인터뷰- 일본 조동종 이치노헤 스님

일본 불교, 침략 전쟁 동참
“불교 근본정신 져버렸다”
조동종 과오 조사… 책 발간
강점기 사원 목록 새로 발굴

소녀상 평화비 말뚝테러는
日우익 자금 조달 퍼포먼스
불교적 실천 위한 연대 필요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을 이끌고 있는 일본 조동종 이치노헤 쇼고 스님은 광복 67주년 특집 인터뷰에서 일본불교가 일본의 아시아 침략전쟁에 일조했다고 비판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지 67년이 지났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한일 양국이 가진 갈등의 응어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일본 조동종 운상사 주지 이치노헤 쇼고 스님이 보여주고 있는 최근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스님은 현재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담고 있는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을 설립해 묻혀있던 한일 불교사를 발굴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돌며 자신의 종단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질렀던 과오의 흔적들을 찾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의 침략 행위을 담은 〈조동종은 조선에서 무엇을 했나〉를 발간했다.

이치노헤 스님은 서면으로 진행된 본지와의 특집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종단, 조동종의 침략 행위를 인정하고 “불교의 근본정신을 져버린 일”이라고 통렬히 비판했다. 그 만행 중 일부에는 안중근 의사의 차남 안준생이 이토의 아들에게 사죄를 하도록 회유한 일도 포함된다.

최근에 벌어진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평화비 말뚝 테러에 대해서는 “일본 우익 세력의 자금 모으기 퍼포먼스”라며 “올바른 역사 인식과 이에 대한 정립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또한 스님은 진정한 동아시아의 평화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불교적 관점에서의 실천과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순한 구호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치노헤 스님과의 일문일답. 일본어 번역은 군산 성불사 주지 종걸 스님이 도움을 줬다. 
 
최근 군산 지역의 일제 강점기 흔적들을 조사했다고 알려졌다. 조사를 하게 된 계기는?
현지를 조사하면 새로운 발견이 있다. 일본에서는 전쟁자료를 보존해하고 기록해서 공개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쟁 당시 어두운 기억을 상기하고 싶지 않아서다.
전쟁과 식민지 시대를 알고자 하면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구체적인 자료가 필요하다. 물건이나 사진은 현실을 정확하게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연구는 종단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다.
불교의 중요한 것은 모든 문제를 불교적으로 생각하고, 불교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기본은 항상 부처님 가르침 안에 있다. 국가나 사회, 교단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이 작업들은 일본 불교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조동종은 전쟁 당시 한국사회와 불교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가?
일본 조동종은, 다른 일본 불교종파와 함께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종교적으로 적극 협력했다.
특히 1932년 10월 장춘단공원에 설립된 ‘히로부미사(博文寺, 현재 신라호텔)’의 초대 주지를 조동종 승려가 맡았다. ‘히로부미사’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추모하는 절이었다.
2대 주지 우에노 순에이(上野 舜穎)는 우가키(宇垣一成) 총독이 제창한 ‘심전개발(心田開發, 조선인의 일본화를 목적으로 한 정신개조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했다.

또 1939년 10월 15일에는 안중근 의사의 차남 안준생(安俊生)을 ‘히로부미사’에 이토 암살을 속죄하는 ‘사죄 참배’를 회유하기도 했다.
1945년 한국이 해방되고 조동종은 서울에서 별원을 철수하면서도 봉은사 주지를 홍태욱에게 맡겼다. 홍태욱은 봉은사 재건 당시 일본군 희생자 위령탑을 세운 ‘친일파 승려’다.
이런 활동들은 일본의 조선 침탈 정책에 조동종이 뿌리 깊게 침투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초들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한 박문사. 조동종은 이 곳의 주지를 맡으며, 황국 신민화 정책을 위한 포교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신라호텔이 됐다.
최근 〈조동종은 조선에서 무엇을 하였나〉라는 책을 출간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조선 침략기에 모든 일본 종교가 전쟁에 협력했다. 침략행위에 대한 협조로 일본불교는 ‘불교의 근본정신’을 버렸고, 책은 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전반부는 근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해 가는 과정과 거기에 조동종이 어떻게 개입된 것인지를 그렸다.

후반부는 함경북도에 일본이 만든 군사 도시 군도(軍都)와 나남(羅南)에 창건된 조동종 사찰 난젠지(南禪寺)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권말에 첨부한 ‘조동종사원·포교소 목록(1902∼1944)’은, 새로운 자료이다. 많은 사람들이 연구에 참고했으면 한다.

최근 소녀상 평화비 말뚝테러로 한일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침략 신사〉의 저자 츠지 미노루는 "이번 일본인의 말뚝테러가 우익 자금 모집을 위한 퍼포먼스"라고 갈파하고 있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 동의한다. 일본의 민족주의는 사회에 불만이 많아지면 반드시 머리를 치켜든다. 그리고 그 표적은 꼭 한국이나 중국이다. 정말로 한심한 짓이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 인식과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을 결성했다.
현재, 동지회 회원수는 25명 정도다. 큰 모임은 아니지만 회원 모두가 침략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반성하고 있다. 주요 사업은 동국사를 통해서 묻혀 있던 한일불교사를 발굴하고, 실질적인 불교교류를 통해 불심을 되찾는 일이다.
1차 사업으로 지난 5월에 동국사에서 ‘치욕의 36년 일제 유물전시회’를 개최했으며, 오는 9월 16일에는 2차 사업으로 ‘참사문(懺謝文)’비문 제막식을 동국사에서 봉행한다. ‘한일 불교인 토론회’도 준비 중이다.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는 양국 불교계의 역할이 중요하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일로 받드는 종교다. 정치나 경제에 좌지우지돼서는 안되며, ‘마음의 평화’만을 외쳐서도 안된다. 불교는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하며, 불교적 관점에서 끈질기게 평화를 계속 주창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 불교연대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8월 15일이다. 한일 양국 국민과 불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전후 67년이 지났고, 전쟁과 관련됐던 사람들도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객관적인 사실들을 연구하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직도 일본 불교계는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고, 한국 불교계에는 일본 불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지금이야말로 이 불신의 벽을 뛰어 넘을 때라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 사실을 검증하고, 객관화해야 한다. 그래야 한일 불교교류의 새로운 국면이 형성될 수 있다. 모두 열심히 노력합시다.

이치노헤 스님은 인터뷰를 게송으로 마무리했다. 〈법집요송경(法集要誦經, 일본에서는 ‘감흥화’)〉의 한 구절이었다.
“시방으로 마음 찾아 헤매었으나, 자신보다 사랑스러운 것,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네. 남도, 각각의 자기가 사랑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을 위해 남을 해쳐서는 안된다.”

이치노헤 쇼고(一戶彰晃) 스님은?   1949년 아오모리현 출생으로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 대학원 영미문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아오모리현(靑森縣) 운쇼지(雲祥寺)·주지이자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동지회) 회장이다. 이밖에도 원죄 ‘사야마(狹山) 사건을 생각하는 시민집회’ 실행위원, ‘인권·평화·환경’운동단체 ‘촉광(燭光)’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조동종의 전쟁(2010)〉, 〈조동종은 조선에서 무엇을 했나(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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