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실천행자 김원수 바른법연구원 원장

 

군시절 백성욱 박사 만나 수행 입문

“보살행 실천하라” 스승 백박사 당부

‘부처님 시봉 잘하는 삶 살자’ 다짐

금강경 공부모임 바른법 연구원 개원

주 2회 어르신 무료 급식 봉사

지난 8년간 10만 여 명 다녀가

 

김원수 원장은 … 1943년 경기 연천 출생으로 서울대 공과대학 금속공학과와 고려대 대학원 화학과 석박사과정(물리화학전공)을 수료했고 홍익공업전문대 금속과 교수, 홍익대 재료공학부 교수를 역임했다.前동국대 총장 백성욱 박사 문중에서 출가해 수행 4년을 거쳤고, 한국교수불자연합회 초대사무총장을 지냈다. 불교신행단체 바른법연구원을 설립 법당을 건립(1988)했으며 현재 사회복지법인 바른법연구원 복지재단 이사장과 무료급식소 하심정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김영사)가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후 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어두운 무명속을 헤매던 제가 깨어났고 위대한 진리의 가르침을 의지처로 삼고 밝은 세상과 만났죠. 그야말로 광명대천지를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불법은 공기와 같고 밥과 같아요. 제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죠. 그래서 부처님 법을 따른다는 것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고 지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고 세상에 잘 쓰일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바른법연구원 김원수 원장(70)은 금강경 가르침에 따라 ‘하심정’이라는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며 보시행을 펼치고 있다. 그의 삶은 온전히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살고자 하는 그 자체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삶을 부처님께 바치기로 했고 이를 위해 늘 수행하고 보시행을 실천하는 것을 일생의 업으로 삼는다.

 선지식을 만나다…백성욱 박사

그가 불교를 만난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불교에 매료되었던 청년 김원수는 전공 서적 이상으로 불교 서적을 끼고 다녔다. 그렇게 불교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선지식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은 점점 커져 갔지만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선지식이 없어도 혼자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ROTC 장교로 지내던 그는 불교의 새로운 경지를 가르쳐 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바로 前동국대 총장 백성욱 박사였다. 백 박사 법문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을 그는 이렇게 회고 한다.

“〈육조단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인종 법사가 혜능 스님 법문을 듣고 ‘제가 얘기하는 것은 기왓장과 같고 스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순금과 같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바로 제가 백 박사님 법문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이 딱 이런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들었던 법문들이 기왓장이었다면 백 박사님 법문은 순금과 같았죠”

그는 백 박사 제자가 되어 주말이면 매주 부천 소사 도량에 가서 수행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청년 김원수는 욕망을 향해 쫓아가는 세속의 삶에 회의를 느꼈고 진리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후 그는 군에서 제대하고 스승의 거처인 부천 소사 도량에서 수행자의 삶을 살기로 하고 금강경 실천 수행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먹고 자며 철저히 수행자의 삶을 살았죠. 그렇게 살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그간의 삶은 부귀영화나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쫓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요. 제 전공 역시 공학이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만을 주로 믿었어요. 하지만 수행 하면서 이 모든 것이 마음의 그림자가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았어요. 일체유심조의 의미를 터득한 거죠”

그는 당시 백 박사의 가르침이 육조 혜능 대사의 무념법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스승님께서는 모든 분별을 부처님께 바치고 부처님 시봉하는 마음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마음으로 행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때의 부처님은 아무 형상 없는 부처님, 무실 무허의 부처님이시죠. 지금 돌이켜 보면 이것이 육조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시는 무념법의 실천과 같은 것이었어요. 이후 저는 개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부처님 기쁘게 하는 마음으로 살자고 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보살행의 서원을 세우다

이렇게 4년간 금강경 실천수행을 통해 무념법을 깨닫고 모든 생각을 부처님께 바치기로 결심한 청년 김원수는 보살의 삶을 실천하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한때 출가를 생각 했었지만 부모님 반대에 부딪혀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백 박사는 그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굳이 출가가 아니더라도 현재와 같은 굳은 각오로 세상일에 임한다면 이 또한 부처님의 뜻을 따르는 것과 같다”

이어 백 박사는 현실속에서 불법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얘기해준다. “직장에 나가게 되더라도 봉급을 받거나 진급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걸 부처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가장 큰 지름길이라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스승님께서는 세상으로 나아가 보살행을 실천하며 살라고 당부했지요. 그것이 마음을 밝히는데 꼭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때 모든 일을 부처님 사업으로 알고 일하며 모든 것을 부처님께 바치는 삶을 살자고 원을 세웠죠”

다시 세상으로 나온 그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교수가 되어 오랫동안 강단에 섰다. 하지만 그에게는 큰 사명이 있었다. 불법을 세상에 알리는 것,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88년부터 고양시 원당동에 바른법연구원을 설립해 금강경실천수행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재가자 수행을 이끌며 일상 속에서 부처님 법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늘 그의 마음 속에는 허전함이 있었다. “참선 명상 등의 수행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는 될 수 있지만 보살행을 통해 스스로를 밝게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세상과 나누는 삶으로 보시행을 실천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늘 제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죠”

어느날 그는 소외 어르신을 위한 무료급식을 결심하게 된다. 처음 시작은 바른법연구원이 위치한 고양시 원당동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식사 하러 오는 어르신들이 많지 않았다.

“식사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마련했는데 왜 이렇게 오는 분들이 적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주변 환경을 살펴보니 그곳은 도시 개발로 돈을 번 노인들이 많아 급식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살 형편이 됐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인근 무주택자들의 비닐하우스촌에 반찬배달을 하는 거였어요. 그걸 시작으로 오늘의 ‘하심정’이 만들어지게 된 거죠”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여기서 김 원장은 봉사라는 것이 막연히 좋은 뜻만 갖고 행한다고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회에 봉사의 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선 좀 더 현실적 안목과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2004년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자신의 3층 주택을 개조해 무료 급식소를 만들게 된 것이다.

김 원장은 주택 대문을 헐고 정원을 개조하고 대나무 지붕을 만들어 임시 급식소를 만들었다. 이름은 ‘하심정(下心亭)’. 〈초발심자경문〉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 만든 이 명칭은 마음을 닦는데 하심(下心)이 좋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른법연구원 회원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열정을 다해 어르신들의 공양을 대접했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하나둘 식사 하러 어르신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당시는 그래도 현직 교수 신분이어서 월급을 받았죠. 이 월급을 갖고 ‘하심정’을 운영해보자고 마음먹고 무작정 덤벼들었죠. 저의 마음이 통했는지 봉사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또 여기저기서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요. 모두들 큰 힘이 돼 주었습니다.”

 

‘하심정’반대하던 이웃 이제는 후원자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하심정도 1, 2층을 개조해 어엿한 식당의 모습을 갖췄다. 주 2회 급식을 하는 이곳에 한 달이면 2천 5백 여명이, 1 년이면 3만 명이 다녀간다. 8월 11일로 개업 8주년을 맞은 ‘하심정’에 그 긴 시간 동안 다녀간 어르신만 10만 명을 넘어섰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반대는 이웃들에게 있었다. 시의원이라도 나가려고 그러냐 왜 이 동네에서 이런 급식소를 운영하느냐 등 뜻하지 않은 항의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저 부처님 법에 따라 모든 것을 회향한다는 마음을 갖고 꿋꿋하게 뜻을 펼쳐 나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인근 시장 상인들도 팔다 남은 물건을 놓고 가고 급식을 먹고 간 노인들이 요구르트를 놓고 가기도 했다. 심지어는 지나가던 이웃이 자원봉사자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기도 했다. 또한 개신교 가톨릭 신자도 자원봉사자가 되었고 급식 먹으러 왔던 어르신도 일을 거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모두가 하심정 후원자가 된 것이다.

김 원장은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말한다. “30년 동안 이 동네에 살았는데 이웃들 반대가 그렇게 거셀 줄 몰랐죠. 하지만 모든 게 제 마음 먹기에 달렸다 생각하고 꿋꿋하게 밀고 나갔죠.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도와 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이제는 조계종서 국수도 제공해 주고 마포구청은 저렴한 가격으로 쌀도 주는 등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이 많아져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하심정을 운영하며 느낀 것은 이기심을 버리고 남에게 나누면 인정도 생긴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요즘 세상이 각박하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마음이지 세상이 다 그런게 아니더라고요. 내가 마음을 열고 나누면 상대도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게 인지상정이라는 것을 무료급식소 운영을 통해 체험하게 됐죠”

 

세상과 통하는 ‘불교’ 만들고 싶다

이제 ‘하심정’은 무료급식소에 국한되지 않고 또 다른 도전에 나서고 있다. 김 원장은 화·목요일 무료급식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심정’을 한식 뷔페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심정’의 독립 운영을 위해 진정 필요한 일을 찾던 그는 4년 전 홍익대 교수직을 은퇴하면서 새 운영 방식을 채택했다. 이른바 복지 기업 ‘하심정’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조미료를 넣지 않은 청정 식당으로 말이다.

“사실 복지 식당을 지속 운영하기 위해서는 각종 후원과 보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체 수익을 내서 다시 사회로 환원하는 경영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모두가 함께 뛰어 우리 힘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하심정’을 기업으로 확대 운영하게 됐습니다”

물론 하심정은 이윤을 내기 위한 다른 기업과는 다르다. 바른법연구원 회원들이 직원이 되어 운영하는 ‘하심정’은 아침 근무 시작 전에 모두 〈금강경〉 독송을 한다. 그리고 모든 고객을 부처님 대하는 마음으로 대하겠다는 다짐으로 하루 일과를 연다. 수행과 일의 일치를 통해 제대로 된 불교 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김 원장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사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기업은 엄청나게 많잖아요. 하지만 불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이끌어가는 기업은 주변에서 찾기 힘들지요.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기업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고 싶었어요. 아직은 소규모 식당이지만 부처님 법을 제대로 알면 최고 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예를 ‘하심정’에서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김 원장은 불법을 믿고 따르면 그 누구보다 세상일에도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고 덧붙인다.

“불법을 믿고 따르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고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출가만이 길은 아니지요. 부처님께 모든 것을 바치고 행할 때 좋은 결과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불교도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겠죠. 그게 진정한 포교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의 서원은 ‘금강경 실천 연수원’을 설립해 유능한 불교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행복과 진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공간, 깨달음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는 “금강경 실천법을 세상에 적용하면 최상의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될 수도 있어요. 몇 십년 못 푼 진리도 풀 수 있죠. 이렇게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인재 양성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금강경 실천 연수원을 세우고자 하는 게 제 꿈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금강경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금강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 탐진치를 부처님 마음으로 바꾼다는 것을 의미하죠. 올라오는 화도 마음의 어리석음도 헛된 욕심도 부처님 마음으로 돌이키면 모두가 좋은 일이 됩니다”

이렇게 모든 불자들이 자신의 삶을 수행으로 돌이켜 진정한 행복을 얻었으면 한다고 말하는 김 원장. 많은 이들이 진정 부처님 법을 믿고 배우고 실천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그는 오늘도 자신의 수행을 세상에 회향하는 구도의 길을 가고 있었다.

글=정혜숙 기자 bwjhs@hyunbul.com

사진=박재완 기자 wanihollo@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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