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9호 8월 1일]

학승이 물었다.
“각기 한 소질을 지닌 사람들이 몰려왔다면 그 일은 어떻습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나의 눈은 본래 똑바르니까 그 일에 대해 논하지 않겠네.”

問 衆機來湊 未審其中事如何 師云 我眼本正 不說其中事

손이나 발을 능숙하게 움직이는 자가 이 도를 익히면 손발을 움직이는 것이 곧 도가 된다. 그러나 도를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손이나 발을 움직여도 그것은 절대 도가 될 수 없다. 일대 장인은 원래 도에 가깝다. 그러나 손발을 능숙하게 움직인다고 다 도인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마음이 문제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원하는 것 없이 다만 능숙하게 움직이기만 한다면 어느 날 도와 맞닥뜨릴 날이 있을 것이다. 장인이자 곧 도인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도예가가 도를 행하면 도가 더욱 빛날 것이다.
미래에 빛나는 도인은 참선을 오래 한 자가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든 자기의 일을 열심히 해서 그 일에 능숙한 달인이 되고, 마음까지 도에 합일된 사람이다. 참선을 하던지, 화살을 깎던지, 그릇을 굽던지, 벽돌을 찍어내던지, 그림을 그리는 일 등은 결국 같은 일이다. 호흡을 고르면서 화두를 드는 일이나, 일을 하면서 화두를 드는 것은 그 효과가 같다.
다만 참선하는 자는 가난하다. 일을 하는 자는 보수가 있다. 이 차이만 있다. 만일 장인이 화두까지 타파한다면 그야말로 천상천하에 유아독존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미래 참선하는 납자들에게 권한다. 자기의 일을 찾으라. 자기 일을 하면서 끝까지 화두를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맞아떨어질 날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주 선사와 같은 천하 고승도 그대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평하지 못할 것이다.

학승이 물었다.
“청정한 세계에도 머물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자네는 아직 그 곳에 있는 사람이 아니야.”
학승이 물었다.
“그 곳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모든 것을 그친 자이니라.”

問 淨地不止是什麽人 師云 你未是其中人在 云如何是其中人 師云止也

청정한 세계에도 머물지 않아야 참다운 도인이다. 오늘날 겉은 멀쩡하게 생겼으나 속은 빈껍데기인 형식에 도취되어 있는 자들이 많다. 작설 차 세트를 구입하는데 몇 백 만원, 조용하고 시원한 마루가 있는 정자를 짓는데 얼마, 그리고 처음 딴 찻잎, 시원한 모시 적삼, 점잖은 말투, 여기에 맞는 분위기를 익히는데 몇 년을 쏟아 붓고 손님을 초빙하여 능숙하게 차를 따르면서 마치 이것이 도인 듯 풍미한다. 그러나 공안에 대해 물어보면 단 반 마디의 견해도 내보이지 못하면서 스스로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자존심만 내세운다. 그야말로 수수밭에 알맹이 없는 수수대의 참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는 그런 세계에 없다. 도인은 그런 청정함에 머물지 않는다. 도인은 이산 저 강을 가리지 않는다. 고요한 운동장, 시끄러운 시장, 아수라와 같은 삶의 전쟁터, 부모와 자식, 성품이 다른 사람이 부부가 된 삶의 현장에서 적당한 조율이 필요한 곳에 도인은 있다. 지나치게 당기거나 지나치게 느슨하게 방치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살아간다. 평생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높은 장작을 쌓아놓는 호화로운 장례절차도 필요 없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갈 뿐이다.
그 곳에 있는 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참으로 양변의 견해가 끊어진 사람이다. 더럽고 추함을 보지 않고 깨끗한 것을 깨끗함이라 여기지 않는 ‘진정한 고요’를 체득한 자이다. 그는 비오는 날 선사를 만나면 “뚝방을 살펴서 평안하게 하십시오.”라고 말하고, 맑은 날 선사를 만나면 “오늘 날씨가 맑으니 산색을 구경하러 나가시지요.” 라고 말하고, 법회 날 선사가 “이 소식을 아는가?” 하고 물으면 “이 늙은이가 어찌 코를 흘리고 다닐까?” 하고 반문한다. 이 사람은 모든 것이 그쳐진 자이다.
이 사람에게 형식과 규율을 묻지 말라. 참 인간에게 강제적 규율은 필요치 않다. 이 사람은 영원히 영혼의 수용소에 갇혀 있는 자들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이 사람은 어디에 가건 그곳의 필요한 사람이 된다. 도를 닦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소수이다. 대부분은 형식에 도취되어서 그것이 틀린 삶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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