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으로 구하지 말고 모든 것을 안으로 돌리세요

▲ 그림 최주현

 

어떻게 마음공부를 해야 할는지요
문) 최근에 현대불교신문에서 스님의 법문을 접하면서 다시 한 번 저의 삶을 되돌아보고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문외한이 어떻게 마음공부를 해야 될지 몰라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답) 이 우주의 근본은 인간의 마음의 근본에 직결이 돼 있고 이 세상만사의 모든 살림살이는 다 연결이

돼 있습니다. 내 마음에 연결이 돼 있다 이겁니다. 그렇게 직결이 돼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여러분부터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 깊은 속에 여러분의 몸을 끌고 다니는 마음의 주인이 있습니다. 직결이 돼 있기 때문에 나의 그 마음의 주인, 주인공, 이 자체가 모든 일체를 다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의 그 주인공은 항상 일체 만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여러분이 살림살이 하는 모든 것을 다 거기다가, 내 마음 주인공에 맡기고 ‘모든 것은 거기서만이 이끌어 줄 수 있다. 거기서만이 나를 물리가 터지게 해 줄 수 있다. 거기서만이 병고를 낫게 해 줄 수 있다. 모든 애고를 면해 줄 수 있다.’ 하고 거기다가 모든 거를 한군데 맡기고 가시는 겁니다. 생활하시는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해야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체부터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각자 그 몸뚱이를 끌고 가는 운전수와 같은 겁니다. 운전수가 차를 끌고 가듯이 말입니다. 이 마음은 체가 없어서 광대무변하면서도 이 세상 전체 우주를 그 마음에 담아도 손색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이 인간의 모든 물질적인 현상은 바람과 흙과 물, 불, 이 네 가지가 모두 여러분의 바탕이 돼 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네 가지가 바탕이 돼 있기 때문에 광력이나 전력, 자력, 통신력, 이 자체가 바로 여러분한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광대한 법이 여러분 앞에 주어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주인공에 모든 것을 맡겨 놓고 갈 때에, 즉 말하자면 컴퓨터에 여러분이 과거에,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입력이 돼서 현실에 나오듯이, 현실에 모든 것이 그렇게 나오기 때문에 현 생활 속에서 그렇게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입력이 돼서 현실에 나오는 것처럼 이 생활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한테, 자기 마음 깊은 정신세계의 주인공한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살아나갈 때에 바로 컴퓨터에 입력됐던 것이 없어지고 되입력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주인공에다 맡겨 놓으면 되입력을 하는 것입니다. 되입력을 함으로써 앞서 입력된 것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니라 이 영계성이라든가 유전성, 세균성, 업보성, 이 모두가 다 과거로부터 현상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거기다가 입력을 다시 되할 때, 주인공에 다시 입력을 할 때 앞서의 모든 것이 없어지면서 현실에서도 모든 것을 타파해 나갈 수 있는 여러분의 능력을 즉,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주인공이라 하는 것은 영원한 근본이 되고, 마음을 내는 거며, 육신을 움죽거리는 거며, 그 삼합이 한데 합쳐서 작용하고 돌아가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주인공입니다. 모든 것은 지금 어느 종교를 막론해 놓고 타의에서 구하는 즉, 미신의 법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모두 내 자신의 참마음의 주인공을 믿고 모든 것을 거기다가, 어떠한 애고든지 거기다가 맡겨 놓고 거기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셨을 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의 정신계의 참나의 자성 자신은 이 우주와 이 세상과도 전부 연결이 돼서 직결이 돼 있습니다. 그러니 타의에서, 바깥에서, 즉 ‘주여! 부처님이여! 하나님이여!’ 하고 바깥으로 찾지 말고 안으로, 내 마음 안으로 내 자신의 주인공, 그것을 믿고 여러분이 작용을 할 때 100% 자유인이 될 것입니다.

집착하는 마음 때문일까요?
문) 마음공부에 인연돼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요, 내 자신의 문제는 잘 놓아지는 것 같은데 가족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는 놓는다 하면서도 제대로 놔지지 않습니다. 집착하는 마음 때문일까요?

답) 이 마음이라는 게, 빛은 가다가도 어떠한 연고가 생기지만 마음은 은산철벽도 뚫을 수 있고 어디로든, 남의 마음으로 같이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자식이나 남편이 정히 안됐을 때 내 마음이 그쪽으로 투입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내 마음이 말입니다. ‘너만이 할 수 있어.’ 하고 관할 때에 바로 내가 남편한테로 들어갈 수도 있고 남편이 아내한테로 들어올 수도 있고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가 아주 특별한 인연이 되고 그러는데, 어째 나만은 안 그렇게 되겠습니까.

모두가, 이 나쁜 사람이 생기는 것도 마음의 조작입니다. 돈이 있어도 도둑질하고 싶어서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뭐 죽일 것도 아닌데 죽이거든요, 또. 이게 마음의 조작이란 말입니다. 고가 있느니 집착이 있느니, 그게 고와 집착만 없으면 멸이 되고 이러는 것 아닙니까. 모두가 이 집착, 집착이 없으면 욕심이 없고 그렇다면 고라는 건 없어요. 모든 게, 모두가 우리가 만들어서 ‘고’ 라고 하는 거지.
보세요, 강물 흐르듯이 흘러갈 거를, 기껏 그냥 흘러갈 거를 붙잡는단 말입니다. ‘아이고, 우리 남편은 이렇게 되고 우리 자식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는데….’ 그냥 이럭하고 집착하고 하니까 강물이 그냥 흘러가다가도 그냥, 그냥 가서는 걸려 버려요. 그러니 안될 수밖에. 왜 안되겠어요? 마음은 체가 없어서 강물 흘러가듯 하는 건데. 고정된 게 하나라도 있습니까. 우리가 한 발짝 떼어 놓으면 한 발짝 없어지고 한 발짝 떼어 놓으면 한 발짝 없어지는데. 이것 보면 저것 봐야 하고 저것 보면 이것 봐야 하고, 이것 들었으면 저것 들어야 하고, 저 사람 만났으면 이 사람 만나야 하고, 이것 했으면 저것 해야 하고 이게, 매사가 하나서부터 열까지 다 고정됨이 없이 한 발짝 떼어 놓으면 한 발짝 없어지듯이 그렇게, 그냥 말을 해도 벌써 내가 이렇게 말을 하는 대로 과거로 흘러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거를 붙잡아요, 자꾸. 여러분이 살면서 붙잡는 게 고(苦) 인(因)이에요. 잘되는 건 붙잡지 않는데 잘못되면 더 더욱 붙잡고 늘어져요. 아, 좀 느긋하게, 어떠한 회사가 망한다 하더라도 느긋하게 좀…. 나무가 자기 뿌리 없이 사는 거 보셨습니까? 뿌리가 있기 때문에 싹이 사는 거거든요. 그렇듯이 뿌리에서 모든 에너지를 흡수해서 싹으로 올려보내야 싹이 푸르게 살 수 있는 거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항상 그냥 자기 뿌리는 얻다가 팽개치고 이름이나 형상을 보고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려고 하니 그게 통신이 되나요? 이 나무가 저 나무한테 에너지를 달라고 그러면 주게 될까요? 자기 뿌리만이 자기 나무를 이끌고 있는 거죠. 그런데 자꾸 행복하게 살려고 해도 살지 못하게 자기네들이 마구 붙들고 그래 가지고선 그릇되는 거죠. 잘 생각해 보세요, 왜 그런가. 이 세상 살아나가는 건 다 놓고 가는 건데 왜 마음을 그렇게 놓지 못합니까. 어떠한 문제가 생겼어도 그걸 놓게 되면 그냥 저절로 풀려서 돌아갈 걸 외려 붙들어서 풀려서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분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회사를 하시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돌보지를 않아요. 그래서 그냥 집도 없고 아주 어려워서 죽겠으니깐 날더러 하루는 “아버지가 이렇게 돌보지를 않고 이럭하니 우리가 애들하고 살 수가 없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자기 마음은 다 버리고 길바닥에서도 절을 하는 거예요. 그것도 나는 내가 우쭐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이 더 잘나 보여요. 세상에 저렇게 마음을 다 비우고 저렇게 아무 데서나 자기를 버리고 그렇게 절하는 데가 어딨습니까. 그건 드물죠. 그러자 그 사람은 부모가 찾아서 다시 그 회사에 아들을 내놓고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그러니깐 마음과 마음의 인연도 그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참 묘하죠. 마음은 빛깔도 없고 잠글 수도 없고 그렇지만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에 그 음파가 전도되는 것만 아니라 마음에, 즉 말하자면 사람의 에너지도 전도가 된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서 먼 외국에서 말입니다, “병원에서도 어디서 하혈이 되는 걸 모르고 인제는 생명이 위태합니다." “그래." 예를 들어서 그게 말로 할 일입니까, 그게? 이건 왜 내가 잘났다고 이런 소리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도 그것은 실험해서 살아나가는 데에 좀더 편리하게 살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섭니다. “알았어." 이럴 수밖엔 없죠. 하지만 “알았어." 할 때 그 에너지는 전도가 됩니다. 이 마음이라는 건 체가 없어서 자기가 몇만 개라도 될 수 있는 겁니다. 이해가 가실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는 지금 땅덩어리에서 에너지를 다 쓰게 되면 어디서 에너지를 가지고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차원이 높아져야 차원이 높은 허공의 에너지를 꺼내 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차원이 높아지고 그러는 반면에 높은 데로 걱정 없이 에너지를 꺼내 쓸 수 있는 그런 계기가 생긴다 이 소립니다.

 

여러분이 한번 요동치고 한번 몸부림 치지 않고서
어떻게 나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그 습이 끼었는데.
그러니까 들어오는 모든 것을 요것 조것 따지지 않고
자기 그 소용돌이에다가 그냥 탁 믿고 놨을 때
묘법이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아요
문) 요즘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예전보다 정신적인 문제가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우울증이라든가 치매라든가 뭐 원인 모를 어떤 정신적인 질병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이런 병에 걸리지 않고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요.
답) 우리가 사람사람이 진짜 50%만 가지고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무의 50%, 유의 50% 이렇게 해서 100%를 가지고 인간의 노릇을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무 사유 한데 합쳐서 본다면 그것이 바로 100%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제일 시급한 게 지금 나, 모두 각자 나, 나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아니, 부처님 앞에다 떡이나 해 놓고 밥이나 해 놓고 절이나 하고 비는 것이 부처님 법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사람이 귀신 노릇을 하니까 귀신이 있지 사람이 귀신 노릇 하지 않는데 무슨 귀신이 있겠습니까.
그전에 이런 예가 있었습니다. 산에 가서 항상 자는데, 언제나 잘 때는 묘지를 베고 잤는데 아, 귀신이 막 머릴 풀어 산발을 하고 내 집에 침입했다고 그러는 겁니다. 만약에 타의에서 들어오는 것을 자의로 만들지 않는다면, 내가 항복을 받을 줄 모른다면, 또 항복을 할 줄 모른다면 그게 문제가 생기는 거죠. 바로 미신이 돼 버리고 말죠. 자기를 자기가 발견했어도 그걸 커버를 못한다면 그건 미신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이 도리를 알면 미신도 자의, 자신을 만들 수가 있죠. 그래서 미친 사람들을 시식을 지내서 낫게 해 주는 게 아닙니다. 타의에서 들어온 그 마음을 내 마음과 둘이 아니게끔 코치하면 그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자기가 있는데도, 자기 주장자가 있는데도 또 하나가 들어가니까 순간 자기가 됐다가, 순간 딴 사람이 됐다가, 즉 싸우는 겁니다. 그러니 미친 짓이 안 나와요? 그러니 우리 이 마음이 제일 첫째 문제예요, 이 마음이.
그러니까 지금부터 마음공부, 즉 말하자면 모든 것을 안으로 돌리세요. 안으로 의지하고. 바깥에서 찾지 마세요. 바깥에서 구하지 말고 바깥에서 끄달리지 말라고요. 모든 것은, 지금 내가 난 것도 그렇고 움죽거리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은 나의 바로 주인공에 의해서, 자성에 의해서 나왔다 이겁니다. 자성에 의해서 나왔다면 자성에다 다시 놔라 이겁니다. 자성에 의해서 모든 것이, 거기에서 병이 생겼다면, 병이 생기게 한 놈이라면 병이 낫게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러니 거기다가 놔라 이겁니다. 병이 있게도 할 수 있는 재주가 있었는데 병 낫게도 할 수 있는 재주가 없겠어요? 한번 뒤집어 놔라 이겁니다. 병뿐이 아니라 사람 사는 데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도리를 아는 사람에 한해서는 돈 한 푼 없이 맨손 들고 나가도 다 이 오방신장이라든가 호법신장이라든가, 또 화신이라든가 보신이라든가, 다 자기한테 있는 겁니다. 수십억이 우립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뭐가 걱정입니까. 없으면 없는 대로 갖다 주고, 먹을 게 없으면 먹을 게 없는 대로 갖다 주고 다 갖다 바쳐요. 바치는데 그것을 얻어먹는 것도 아니에요. 자기가 당당하게 먹는 것뿐입니다. 당당하게 쓰고 당당하게 갚고 당당하게 먹어요. 그렇게 당당하고 도도하면서도 그렇게 그냥 나 아님이 없이, 내 아픔 아님이 없이 그렇게 서로 울 때는 같이 울어 줄 수가 있고 웃을 때는 같이 웃을 수가 있는 그런 아량과 지혜가 있어야죠.
여러분이 말로만 듣고 그냥 흘려 버리지 마시고 자신이 행을 그대로 해 보세요. 한번 요동치고 한번 정말 몸부림치지 않고서 나를 발견하겠어요? 그 습이 끼었는데. 구태여 좋은 거 먹을 필요가 뭐 있고, 구태여 남이 좋다는 거 다 할 필요가 뭐 있고, 남이 가면 낫는다 하는 거 다 쫓아다닐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내가 의사를 가지고 있고 내가 간호원을 가지고 있고 내가 관세음을 가지고 있고 지장을 가지고 있고 다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상식으로나 의식적으로, 물론 감각이나 청각이나 뭐, 시각적으로나 이런 모든 것을 종합해서 들어오는 것을 그거를 요것조것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믿고 자기 그 소용돌이 속에 그냥 탁 놨을 때 그 묘법이 거기서 나오는 겁니다.


시간 정해놓고 참선하면 어떨지요.
문) 생활 속의 참선이라지만 그냥 막연해서 시간 정해 놓고 참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끌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 우리가 시간을 정해서 놓는 것이 참선이 아닙니다. 그대로 우리가 똥 누고 밥 먹고 자고, 그냥 앉고 싶으면 앉고 서고 싶으면 서고 그냥 명상을 하고 싶으면 하고, 앉아서 좌선을 하고 싶으면 앉는 것이 그대로 일하면서도 참선이요, 자면서도 참선이에요. 아니, 그러면 앉았을 때는 지구가 돌아가고 참선을 안 할 때는, 좌선 안 할 때는 그럼 지구가 안 돌아갑니까? 모두가 자나 깨나 돌아가요, 그냥. 지금도 돌아가고 있어요.
옛날에도 그런 일이 있었죠. 모두들 공부한다고 토굴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 들어가서 선을 하고 꽉 앉아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말을 했어요. 당신이 일어나지도 말고 오줌 누지도 말고 똥 누지도 말고 먹지도 말아야 이 돌아가는 진리가 끊어지지 않지, 일어나면 끊어지지 않느냐고 하니까 고만 무릎을 탁 치고 깨쳐서 일어났단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악 회양이 말입니다, 가만히 마조 스님 하는 행동을 보니까 그냥 좌선을 하고 앉았는데 그냥 뭉치고 앉았거든요.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 얘기 다 아시죠? 아, 그래 기왓장을 갖다간 그냥 그 좌선 하는 앞에 앉아서 싹싹 갈고 있었단 말입니다. 하도 답답하니깐 또 마조는 “스님, 그거 뭐 하시려고 기왓장을 갈고 계십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걸로 거울을 만들려고 그런다.” 그런단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구, 망령나셨군.” 그러니까 “내가 망령 났다 한다면 너는 그거 뭐 하려고 앉아서 그러느냐?” 그러니까 “나는 부처를 이루려고 그럽니다.” 이러거든요. 그러니까 “앉았다 일어나면 부처가 이루어지느냐?” 하니까 그때 그만 선뜻 그 뜻을 이루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게 그대로 참선이라니깐 모두 헛들으셨나 봅니다. 앉았다 일어났다, 말하고 그냥 자유스럽게 사는 게 그대로 참선이에요. 그러니까 사람이 앉고 싶으면 앉고 그러지, 누가 그럭하지 말라나요? 정해 놓고 하는 게 어딨습니까?

직장생활이 너무 괴로워요

문) 저는 직장생활이 너무 괴로워요. 하는 일도 부담스러운데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부딪치는 것도 너무 힘들고요. 어떡하면 좀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답) 살다 보면 그런 괴로움이 생기는데 그 괴로움은 금방 괴로웠는데 나중에 보면 괜히 시시껄렁한 거 가지고 괴로워하고 또 자기가 괴로워해도 안될 거를 괴로워했음을 알게 되곤 합니다. 현재 짊어지고 있는 건 모든 걸 통틀어서 내 주인공이 하는 겁니다. 내 차를 끌고 다니면서 내 운전수가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차가 내가 아니다. 바로 운전수가 바로 주인이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몸뚱이는 차예요. 주인이 끌고 다니는 대로 끌려 다니는 차란 말입니다. 그 몸뚱이가 자기가 아니에요. 그러니 무조건, 무조건 못났든 잘났든 믿으세요. 물러서지 마시고 믿고 자기 운전수에다가 맡기시는 작업을 하세요. 왜, 우리가 용광로에다 헌쇠 모두 갖다 쓸어 넣죠? 그러면 새 쇠로 생산이 돼서 그냥 나갑니다. 고런 작업을 하시란 말입니다.

참 이게 재미있는 우리 공부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만약에 한 일 년이라도 이렇게 해 나가신다면 정말 즐거울 것입니다. 지금 현실이 없다면 미래도 없어요. 그런데 미래에 천당에 가자고, 승천하자고 지금 이렇게 믿고 빕니까? 오늘 없는 내일이 어딨습니까? 오늘 즐거움이 있어야 내일도 즐거움이 있는 거지, 오늘 즐거움이 없고 그냥 상을 찌푸리고 만날 무겁게 두 어깨에다 잔뜩 짊어지고 다니는 그런 삶은 삶의 보람이 아니에요.

부처님이 “그렇게 짊어지고, 너 그렇게 해서 요다음에 천당에 가거라.” 그러고선 그렇게 49년 설하신 게 아니에요. “너희들에게 재료가 있으니 해맑게 청정하게, 자유스럽게 써라. 그러면서 너희들은 삶의 보람을 가져라.” 이런 거지, 아니 “요담에 죽어서 너 천당에 가거라.” 이러고 가르치신 게 아니에요. 아니, 오늘도 내가 그렇게 모르는데 아이, 어떻게 내일 천당이 있겠습니까, 글쎄.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하신다면요 바로 마음이 편안하게 됨으로써 그게 바로 천국이죠. 천국인데 그 천국에서 또 생산이 돼서 참 즐겁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중용입니다. 보이지 않는 데와 보이는 데를 싸잡아서 내가 그 활용하는 것이 중용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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