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순례단 부산 범어사 찾아

 

무비 스님 ‘생신을…’ 법문
중생 눈높이에 맞게 설법
불성 일깨운 가르침 ‘강조’  
용성스님과 일화도 흥미로워

 

성철스님 순례단이 6월 23일 부산 범어사를 찾았다.

한여름 찜통더위가 내려 쬐는 6월 23일의 여름날, 백련문화재단과 불교인재원이 주최하는 ‘성철큰스님 탄생 100주년 기념 순례단’이 부산 범어사를 향했다. 새벽 6시 30분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5시간을 달려 범어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20대 성철 스님의 자취를 만날 수 있었다.


범어사는 화엄종(華嚴宗) 10찰 중 하나이며 일제강점기에는 31교구 본산의 하나였다. <삼국유사>에는 678년(문무왕 18)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신승동국여지승>에 의하면 금빛 나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정산(金井山)으로 이름 짓고 그곳에 사찰을 지어 범어사(梵魚寺)를 건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보물 제4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 3층석탑(보물 250호), 당간지주(幢竿支柱), 일주문, 석등(石燈), 동서 3층 석탑 등의 지방문화재가 있으며 이밖에 많은 전각?암자(庵子) 누(樓) 문 등이 있다. 의상대사를 비롯해 표훈(表訓)?낙안(樂安)?영원(靈源) 스님 등이 거쳐 갔다는 이곳에서 20대 성철 스님이 있었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달려온 순례단 3백여명이 점심 공양 후 범어사 설법전에 앉았다. 이번 순례에는 범어사에 주석하고 있는 무비스님이 법사로 나섰다. 스님이 법사로 나선 데에는 성철 스님과의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해인사 강원 시절 성철 스님이 백련암에서 내려오실 때면 시자 소임을 맡았다는 무비 스님. 사숙이기도 한 성철 스님을 모시며 각별한 인연을 유지했던 스님은 최근, 디스크 수술의 휴유증으로 4~5년 간 병석에 머물면서 성철 스님의 100일 법문 테이프를 들었다.


성철 스님의 법문에 대해 최근까지 가장 깊이 공부한 스님이 선택한 법문은 ‘생신을 축하합니다’ 1986년 초파일 종정 법어다. ‘교도소에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꽃밭에 활짝 웃는 아름다운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꽃밭에서 활짝 웃는 아름다운 부처님들, 허공을 훨훨 나는 활발한 부처님들, 교회에서 찬송하는 경건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생략)’
무비 스님은 ‘사람이 곧 부처’라는 인불 사상에 근거해 ‘생신을 축하합니다’ 법문을 설명했다. “이 모두가 인불사상의 근원입니다. 인간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면서도 존중하면서 살자는 뜻이며 ‘당신은 부처님입니다’라는 뜻이 이 짧은 법문에 다 담겨 있습니다. 이 이상 더 나갈 게 없습니다”라고 전했다.


무비 스님은 성철 스님이 중생의 근기 따라 법문하는 탁월한 설법가였다고 전한다. “스님께서는 초등학생을 만나면 초등학생에 맞게 말씀 하시고 중년 장년 노년을 만나면 그 수준과 근기에 맞게 각각 법문하셨습니다. 근기 따라 상황 따서 인연 따라 다양한 가르침을 펼치셨지요. 성철 스님이 평생 ‘중도’를 설하셨다 또 연기를 말씀하셨다 혹은 공을 말씀하셨다 다양한 평가를 합니다. 하지만 ‘생신을 축하합니다’ 이 짧은 법문에 스님의 모든 사상의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곧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증명법사 원택 스님은 범어사에서 머물렀던 성철 스님이 용성 스님과 만난 인연을 얘기해 주었다. “일제 시대였던 당시 용성 스님이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난 후 범어사 내원암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그때 성철 스님이 내원암 선방에서 안거를 치렀다고 합니다. 용성 스님은 그 무렵 누구를 보아도 스님이라 하지 않고 ‘선생’이라 불렀는데 손자인 성철 스님에게만은 ‘성철 수좌, 성철 스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후 용성 스님은 서울 대각사로 옮겨 가실 때 꼭 스님을 데려가겠다고 했지만 스님은 부산역까지만 배웅하고 그 길로 금강산 마하연으로 급히 떠나버렸다고 한다. 원택 스님은 “스님은 당시 큰 스님을 시봉하는 것보다는 즉심즉불에 관심이 많았던 거 같다. 그래서 그 길로 금강산 마하연으로 가서 정진을 하러 떠났다”고 전했다.


이후 순례단은 스님이 한 철 정진했다는 범어사 내원암으로 향했다. 새롭게 불사를 거듭해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만 제일선원(第一 禪院)이라는 현판이 붙은 미륵전은 예전 선방 자리라고 하니 성철 스님은 아마도 이곳에서 한 철 정진을 했다고 추측해본다. 화두를 들고 용맹 정진했을 20대 스님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본다.

범어사 내원암 전경

순례객들 역시 참배를 마치고 제일선원 주변을 걸어보기도 툇마루에 앉아 스님의 발자취를 느끼는 듯 조용히 눈을 감기도 하고 하늘을 보기도 하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제 각각 스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들은 그렇게 피 끓는 청춘에 구도의 길에 들어선 스님의 그 칼날 같은 기상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사람이 곧 부처다…’ 그렇다. 세상은 물질에 휩싸이고 인심(人心)은 야박하기 그지없는 이 물질 문명이 만연한 세상의 한 가운데 그 한 말씀을 잊지 않는다면 세상은 좀 더 따뜻해지지고 여여해지지 않을까? ‘사람이 곧 부처다’ 그 한 말씀을 다시 한번 온 마음으로 온 몸으로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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