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같이 걸림없는 길을 걸어보자
구름 같이 걸림없는 길을 걸어보자
  • 노덕현 기자
  • 승인 2012.06.22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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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북한산 ‘흰구름길’ - 화계사와 삼성각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여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 그 생동감 자체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 북한산 둘레길은 번잡한 도심에서 가까운 싱그러운 초록의 호젓함이 남아있는 곳이다. 몸의 감각을 열고 호젓한 둘레길을 걸으며 숨을 가다듬다 보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됨은 물론이다.


북한산 둘레길 3구간은 흰구름길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거리 상으로는 4.1km. 먼 거리는 아니지만 막상 걸어보면 ‘아! 등산하는 분위기인데?’라는 생각이 든다. 둘레길을 오르다보면 서울 아래가 한눈에 들어온다. 흰구름이란 명칭이 이 때문에 붙어있음이랴. 600년 한양 도읍지를 품에 안고 펼쳐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서울의 옛이야기도 돌아볼 수 있다.


흰구름길이 시작되는 이준열사묘역 입구는 수유역 1번 출구에서 강북01번 버스를 타고 통일교육원에서 내리면 된다. 반대쪽인 북한산생태숲은 길음옆 3번 출구에서 1014번과 1114번 버스를 타면 된다.


흰구름길의 길들은 다소 좁지만 중간중간 성철 스님의 법어록 같은 명구 푯말이 있다. 3구간 시작점에는 2010년 개장한 북한산 둘레길 탐방안내센터가 있어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북한산 둘레길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한눈에 살필 수 있으며 필요한 모자나 두건 같은 기념품도 구입할 수 있다.


본격적인 둘레길은 통일교육원 옆 샛길을 진입하면서 부터다. 국내 유일의 통일교육기관인 통일부 통일교육원은 철문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무래도 길 자체는 조금은 삭막한 느낌이다. 옆에 쳐진 철조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택 담장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로 펼쳐진 울창한 숲이 계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발길을 이끈다.


3구간 둘레길 왼편으로는 주택가가 가까이 있어 주민들을 위한 체육시설및 휴계시설이 잘 정비돼 있다. 산내음 가득한 주변에서 마을주민들이 체육시설물에서 몸을 움직이며 어르신네들은 게이트볼장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길을 계속 걷다보면 화계사 일주문이 빼꼼히 머리를 내민다. 화계사 역시 일주문 바로 앞까지 주택가는 이어진다. 학교도 인근에 있는데 평일 오후 수업을 마칠 시간이었나보다. 아이들이 화계사 앞을 뛰어다는 모습이 조용한 둘레길의 모습과 대비된다.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숭산 스님의 제자인 미국인 현각 스님이 쓴 이 책 한권으로 더욱 세간에 많이 알려진 화계사다. 화계사는 1522년(조선 중종 17년)에 신월선사가 창건했다. 고려 때 법인 대사 탄문(法印大師 坦文)이 화계사 인근에 보덕암을 세우고 오랫동안 법등을 이어왔는데, 신월 선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짓고 절 이름을 화계사라 명했다.


화계사가 창건된 조선시대는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장려하는 정책을 펴던 시기였다. 흥미로운 점은 불교 탄압 정책에도 실제로 왕실에서는 불교를 믿었다는 것이다. 화계사는 1618년(광해군 10년)의 큰 화재와 오랜 세월로 인해 건물이 퇴락하자 이듬해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시주로 재건됐다. 왕실의 비호 아래, 절의 특색을 살리면서 발전해온 화계사는 흥선대원군의 원찰이라 불릴 정도로 흥선대원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866년(고종 3년) 사찰이 다시 퇴락하자 흥선대원군의 시주로 중창됐는데 그래서인지 조선후기 명필로 알려진 흥선대원군의 흔적을 화계사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1933년에는 한글학회 주관으로 이희승, 최현배 등 국문학자 9인이 화계사에 기거하면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집필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숭산 스님에 의하여 시작된 국제선원의 산실인 화계사는 1991년 대적광전을 창건하고 4층에 국제선원을 개원해 외국인 스님들이 현재도 용맹정진하고 있다. 현재 숭산 스님의 제자로 국내외에서 수행과 포교에 힘쓰고 있는 스님들은 현각 스님(미국), 대봉 스님(미국), 무심 스님(미국), 청안 스님(헝가리), 현문 스님(폴란드) 등이 대표적이다. 안거 기간이어서일까. 스님들의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마을 주민들은 화계사 대웅전 앞 느티나무 그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다시 발길을 재촉해 화계사 왼편의 둘레길을 걸었다. 화계사 일주문을 바라보고 가는 길에서 왼쪽은 둘레길 오른편은 칼바위 능선과 그 아래 자리한 삼성암으로 가는 길이다.


내려가는 길보다 올라가는 길이 더 많은 느낌이 들었다. 3구간은 이렇게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전망대까지 하면 전체 구간 중에서 고도가 제일 높다고 한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내리막. 내리막도 역시 짧게 끝나지 않는다. 한참을 걸어내려가야 하는데 돌로 된 계단이 단정하게 배치가 잘 되어 있다. 아니 벌써? 바로 흰구름길 종착점인 빨래골공원지킴터다. 속옷 빨래터란 이름은 궁에서 궁녀들이 이곳까지 빨랫감을 들고와 빨래를 했다고 해 붙은 것이다. 계곡이라고 부르기에 좁은 개울이지만 넓은 평지가 있어 당시 궁녀들 여럿이 모여 빨래도 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않았을지 추측만 된다.


3구간 둘레길은 화계사와 빨래골공원지킴터가 그나마 평지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근처에 가게 같은 것은 없으니 사전에 음료수 등은 준비해야 한다.


보이는 돌로 만든 계단이 3구간의 끝을 알린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돌들이 앙증맞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푯말이 길을 걷는 이들의 눈을 머물게 한다. 중간중간 명언명구들과 돌무더기 등이 자연과 어우려져 있다. 한편으로는 둘레길을 만든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듯 싶기도 하다. 다소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빨래골공원지킴터에서 북한산 쪽을 발길을 옮겨 기도도량인 삼성암으로 향했다. 화계사에서도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600M 가량 오르면 갈수 있는 곳이다.


다시 오르막길을 걸어 도착한 삼성암은 북한산에 우두커니 솟아있는 칼바위 아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운문사 사리암과 함께 대표적인 독성기도도량인 삼성암은 역사가 긴 편이 아니다. 1872년(고종 9년)에 고상진(高尙鎭)이라는 거사가 창건했다.


산이라는 커다란 자연 아래 삼성각은 점하나를 찍고 있었다.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날은 저문다. 삼성암에서 화계사로 이어지는 길에 한 스님이 바삐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 보았지만 이내 스님은 사라졌다.


설봉 스님은 이런 자유의 노래를 불렀다.

떠다니는 구름이 온 곳이 없듯
가는 곳 자취가 없네
구름이 오고 가는 것을 살펴보니
다만 하나의 허공일 뿐이네

떠다니는 구름이 온 곳이 없듯 스님이 가는 곳 자취가 없이 길은 이어졌다.


산행코스 (4.1km 2시간소요) : 통일교육원~정자~화계사~전망데크~구름전망대~빨래골공원지킴터~북한산생태숲앞(배드민턴장)

교통편:
통일교육원(이준열사묘역입구)-지하철4호선 수유역 1번출구~01번마을버스-종점하차(통일교육원)
북한산생태숲앞-지하철4호선 길음역3번출구~버스1014,1114번종점, 북한생태숲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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