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탑

청평사 올라가는 길에 만들어 놓은 돌탑은 절에 오르는 불자들의 염원이 담긴 소망탑이다.
산사 가는 길에는 이곳저곳에 무더기를 이루며 쌓아올려진 돌탑이 많다. 이러한 돌탑은 적석(積石)신앙이나 건탑(建塔)사상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적석신앙은 오랜 역사를 지니는 것으로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식을 가지고 나타나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견된다. 건탑사상 역시 적석신앙과 무관하지 않다. 불교의 상징물인 불탑은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난 후 제자들이 만든 스투파를 원형으로 한다. 스투파는 벽돌이나 돌을 쌓아 올려 몸체를 만들고 그 위에 회반죽이나 진흙을 발라 마감한 것으로 적석의 한 유형이다. 이 스투파는 불교의 전파와 함께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양식으로 변화 발전되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중국의 파고다를 원형으로 한 석탑을 만들어 고유양식으로 정착시켰다. 이와 같이 사리탑은 불교가 전파된 나라마다 그 지역의 문화와 재료가 바탕이 되어 특별한 형식으로 전개되었지만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던 컨셉은 쌓아올린다는 것이었다.
돌탑은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조성한 서낭당에서도 볼 수 있다. 서낭당은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신역(神域)으로, 그것의 형태는 서낭나무에 잡석을 쌓아 올린 돌무더기와 더불어 나무에 백지나 청·홍·백·황·녹색 등의 오색 비단 헝겊을 잡아맨 형태, 잡석만을 형식 없이 쌓아올린 돌무더기의 형태, 서낭나무에 백지나 5색 비단 헝겊 조각을 잡아맨 형태, 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는 형태, 입석의 형태 등 다양하다. 서낭당을 지나는 사람들은 돌무더기에 돌을 세 개 얹고, 세 번 절한 다음 침을 세 번 뱉고 지나갔다고 하는데, 마음속으로는 마을의 안녕과 가정의 무탈을 빌었을 것이다.
몽골의 대초원에서 발견되는 오보(Ovoo) 역시 우리나라의 서낭당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돌무더기의 형식을 가진다. 오보는 사방이 끝없이 펼쳐진 망망한 대초원에서 방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유목민들에게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유목민들은 오보에 돌을 던져놓고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면서 가족구성원들의 무사와 안녕을 기원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불교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탑돌이 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네팔의 히말라야에서도 산길 이곳저곳에 쌓아올린 돌무더기를 흔히 볼 수 있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이 돌탑에 돌을 쌓아 올린 후 정성으로 무사히 귀환하기를 기원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산행을 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도 한다. 때때로 돌무더기 앞에서는 다양한 제사의식도 거행하는데, 제사는 산신을 대상으로 하는 원시적 신앙형태로 나타난다.
길에서 발견되는 돌탑은 이와 같이 히말라야로부터 몽골, 한국에 이르기까지 공간적으로 매우 넓은 지역에서 분포한다. 특히 불교가 전파된 나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한 돌무더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보면 돌탑을 쌓아올리는 것은 적석신앙이 불교적 개념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찰 가는 길에 조성한 돌탑 가운데에는 역사적으로나 조형적으로 중요성이 인정되어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오래된 돌탑도 길을 넓히거나 포장을 하면서 무분별하게 훼멸된 것들이 많은 까닭이다. 진안 마이산 탑사에 조성한 돌탑무리들은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돌탑무리는 절 길에 특별한 형식 없이 쌓아올린 돌무더기와는 형식적으로는 물론 개념적으로도 차이가 있어 차별화된다.
산사에서 발견되는 돌탑은 형식 없이 쌓아올린 자연적 산물이기는 하나, 그것은 몇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즉, 장승이나 선돌과 결합한 돌무더기의 형식, 다른 것과 연관 없이 주변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들을 한 무더기로 높이 쌓아올린 형식, 낮은 돌탑을 여러 개 쌓아올린 형식이 있다.
장승과 돌무더기가 결합된 형식의 돌탑은 순천 선암사, 함양 벽송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순천 선암사에 있었던 것은 오래된 장승 하부에 돌무더기를 쌓아올린 것으로 많은 이들에게 선암사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었으나 장승을 새로 깎아 세워놓는 바람에 역사성이 지워져 버렸다. 함양 벽송사에는 오래된 장승이 있으며, 장승에 얽힌 이야기도 있으나, 돌무더기와 결합된 장승은 오래 묵은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장승과 돌무더기가 결합된 형태는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요즘에는 이러한 형식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선돌과 돌무더기가 결합된 사례는 남원 실상사에서 볼 수 있다. 실상사 바로 옆 입석리에 세워진 이 돌탑은 자연스럽게 깎은 입석을 가운데 세우고 그 주변에 돌을 쌓아올렸는데, 사용한 돌들이 냇돌인 것을 보면 지리산에서 흘러와 마천 쪽으로 흘러가는 람천(만수천)에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이 돌탑이 세워진 마을 이름이 입석인 것을 보면 돌탑의 역사가 아주 오랜된 것으로 보인다.
절길 올라가면서 주변에 흩어져 있는 돌들을 주워 정성껏 하나하나 쌓아올린 돌탑은 어느 절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어떤 특별한 형식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절에 오르는 불자들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많은 사람들의 소원이 담겨있는 소망탑이다.
무더기를 이루며 형성된 돌탑도 있지만 작은 돌을 여러 층으로 쌓아올린 여러 개의 돌탑들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돌탑들은 구조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오래가지 않지만 무너지면 또 쌓아올려 항상 그곳에 가면 그러한 돌탑무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돌탑들은 오래 지속되지 않으면서도 항상성이 있어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사람의 손이 아니라 기계의 힘을 빌려 쌓아올린 돌탑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통도사 옥련암 입구에 만들어 놓은 돌탑도 그러한 사례 중의 하나인데, 이 돌탑을 만든 의도가 무엇인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사리탑의 기능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사찰을 상징하는 조형물로서도 적합하지 않다.
사찰에 도입되는 조형물은 즉시적으로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은 항상 상징적 개념을 가지고 존재하여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요즈음 아무 의미 없이 만들어지는 조형물은 사찰의 경관을 오히려 부정적으로 만드는 작용인자가 될 뿐이다.
 
통도사 옥련암 입구에 새로 만들어 새운 돌탑은 의미론적으로 볼때 불교적 상징성을 가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실상사 가까운 곳에 있는 입석과 돌무더기는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전형적인 돌무더기의 형태이다.
벽송사의 장승과 돌무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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