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평화’의 님을 찾아 간 DMZ

한 때 백화점 분점이 들어설 정도로 규모가 큰 포구였던 고랑포. 물은 깊고 푸르게 흐르는데 작은 배 한척이 쓸쓸함을 더한다. 이 포구 인근에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잠들어 있다.

자전거로 달리는 평화누리길
자전거를 타고 6월의 신록 속으로 들어갑니다. 행자(行者)의 자전거는 경기도 파주 금촌역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합니다. 긴 가뭄에 목이 타는 6월입니다. 신록은 때가 되어 저토록 푸른데 호국보훈의 달을 기리는 행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애국가를 잘 모르고, 60여 년 전 이 땅에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소위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던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 정치권에서는 뒤늦게 ‘색깔론’이니 ‘메카시즘’이니 떠들고 있습니다.
선종(禪宗)에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 나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6월에는 ‘내가 태어나기 전 이 나라의 참 모습은 어떤 것인가?’ 라는 생각도 한 번 쯤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평화는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 아닐 터이니 말입니다.
평화라는 이름의 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행자는 자전거를 타고 임진강을 거슬러 ‘평화누리길’의 DMZ 인근을 달리고 싶었습니다.

화석정, 중세이후 ‘전쟁과 평화’의 역사
통일로의 끝자락 여우고개에서 임진각으로 가는 직진 코스를 비켜나 오른쪽 37번 국도로 들어섭니다. 도로는 한산하여 차들이 달리는 속도에 겁이 덜컹 나기도 합니다. 임진강을 끼고 달리는 이 국도의 파주 연천 구간은 근래에 확장 포장되어 고속도로를 방불케 합니다. 그러나 37번 국도가 경남 거창군에서 시작되어 남북 연장길이 482Km에 이르는 도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모든 길은 시작과 끝이 있지만 그 중간에서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니 인생행로 또한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화석정(花石亭).
임진나루 인근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하는 이 정자는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 선생의 체온이 전해지는 곳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 칸의 화석정(경기도유형문화재 제61호)은 율곡이 어릴 때 놀던 곳입니다. 지금도 그가 8세 때 지었다는 시 한 수가 바위에 새겨져 정자 옆에 서 있습니다.
화석정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탔고 다시 지어졌다가 6.25 한국전쟁 때 다시 화마에 먹혔습니다. 지금의 화석정은 1966년 지역 유림이 다시 짓고 1973년 정부에서 정비를 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박정희 前 대통령이 쓴 현판 글씨가 이 정자의 고된 역사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나이가 560살이나 된 두 그루의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 안에 들어앉은 화석정의 역사는 한반도의 중세 이후 ‘전쟁과 평화’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율곡, 그러나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앞 뒤 분간 못하는 당쟁과 무사안일이었습니다.
화석정 기둥에 기대서서 유유히 휘도는 임진강을 내려다봅니다. 햇살이 튕겨 오르는 강물 그 안쪽에는 푸른 녹음이 담겨 있습니다. 강 건너 평지에서는 군인들이 각종 포를 설치해 놓고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440여 년 전, ‘10만 양병설’이 먹히지 않았던 그 때의 상황과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겪고서도 정신 차리지 못한 오늘날의 ‘안보불감증’을 대비(對比)해 봅니다. 율곡의 집안이 대대로 아끼던 이 정자가 한 밤중에 도강(渡江) 하는 임금의 몽진행차를 밝히기 위해 불에 타야 했다는 이야기는 과거가 아닌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1000년 전 경순왕이 생각 못했던 설움
국도를 벗어나 두지리 황포돛배 선착장에서 목을 축이고 자전거는 장남교를 건넙니다. 임진강 푸른 물을 건너 인삼밭이 즐비한 마을의 안쪽 길을 달립니다. 등줄기에 땀이 차오르지만 가끔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은 그지없이 상쾌합니다. 그렇게 오늘의 시간을 달리는 자전거의 목적지는 1000여 년 전 아득한 과거를 향합니다.
신라 경순왕릉(敬順王陵).
우리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를 일구어 냈던 신라. 그 푸른 하늘의 평화는 수많은 전쟁 속에서 지켜졌습니다. 삼국 시대의 변방은 늘 싸움판이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그 균형이 깨지고 통일국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변방은 시끄러웠고 병장기의 힘이 핍박과 평화의 울타리를 갈라놓았습니다.
경순왕(?~935)은 신라의 제56대 왕입니다. 선왕 경애왕이 후백제에 인질로 잡혀가서 자결해 버리자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시작부터 불행한 왕이었습니다. 난폭한 견훤보다는 다소 온건한 왕건에게 항복한 경순왕. 새 왕조 고려의 수도 개성에서 벼슬을 받고 말년을 보냈던 그는 이역만리에서 한 많은 목숨을 거두었고, 죽어서도 선대왕들이 묻힌 경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의 시신이 돌아가면 옛 신라의 민심이 요동칠 것을 염려한 고려 왕실에 의해 개성 100리 안쪽 변두리 임진강 고랑포구 옆 언덕에 묻힌 겁니다. 이름이 왕릉이건만, 800여 년이나 잊어진 무덤으로 전해 왔고 1747년(조선 영조 23)에 비를 세우고 능을 보수했습니다. 그래서 신라의 왕릉이 조선의 왕릉 양식을 따라 조성되는 모순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국가 사적 제244호인 경순왕 능역은 3967㎡입니다. 그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신라 마지막 왕의 능역은 철책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끝내 나라를 지키지 못했던 왕, 백성들에게 평화를 주지 못했고 항복으로 불안을 극복해야 했던 경순왕. 죽어서 1000년 뒤에도 분단으로 대치한 병장기 속 철책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신세를 꿈에라도 예견했겠습니까?
숭의전, 고려와 조선의 태조가 만난 곳
다시 자전거는 임진강 물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아미천교를 지나고 ‘DMZ 생수’ 공장도 지납니다. 가문 밭에서는 흙먼지가 폴폴 날리지만 김매는 아낙들의 등 너머로 얕은 산들이 정겹습니다.
석장천을 따라 석장리 안쪽끝자락에 위치한 조각공원에서는 6월 한 달 동안 민통선 예술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공원 가득 들어 선 조각품과 설치미술품들은 단절의 고난과 분단의 아픔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석장리를 나와 백학 저수지를 오른쪽에 두고 달리다가 숭의전 표지판을 따라 갑니다. 어느새 정오가 넘은 한 낮이고 약간 오르막길이라 힘이 들지만, 오른 만큼 내려가는 것이 길이므로 견뎌 봅니다. 그러고 보니 기어를 조여 올리고 풀어 내리기를 반복하며 길에 적응하는 자전거는 어느새 내 몸이 되었습니다.
숭의전(崇義殿).
조선조가 고려조의 왕과 공신들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원래는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인 앙암사(仰巖寺)가 있던 자리에 조선의 태조가 재위 6년째 되던 해(1397년)에 왕건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지은 것이 시초입니다. 한 왕조의 창업을 이룬 위인들이 500여 년의 세월을 건너 만났으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는 곳이 숭의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가사적 제223호인 숭의전은 야트막한 언덕위에 있는데 여기도 570살 먹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전각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고려 태조, 현종, 문종, 원종 등 4왕의 위패가 정전에 모셔져 있고 그 옆 배신청(陪臣廳)에는 복지겸, 홍유, 신숭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 등 16명의 고려조 충신들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제례는 개성왕씨종친회와 숭의전 보존회가 주관하여 봄과 가을에 봉행된다고 합니다.
망국의 왕에 모셔진 곳이지만 숭의전과 경순왕릉에서의 느낌은 아주 다릅니다. 시절을 놓치지 않고 격을 갖춘 예우와 시절도 격도 다 놓쳐버린 예우의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DMZ 깊은 안 쪽 마을 석장리 미술관에서는 6월 한 달 ‘민통선 예술제’가 열린다. 전시된 작품들이 분단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을 웅변하고 있다.
‘평화누리길’을 포함하는 DMZ 지역은 길이 아니면 가지 못한다. 한반도 평화의 마지막 보루를 실감케 하는 표지판을 만나면 가슴이 아려온다.
수 십 억년 시간이 모여 사는 곳
학곡리 임진강 뚝방길을 달리다가 백제건국과 관련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돌무지무덤(경기도 기념물 제212호)과 청동기시대의 전형적인 탁자식 고인돌(경기도 기념물 제158호)을 만납니다. 물 건너는 화산이 폭발하며 나온 용암이 식어서 형성된 단애(斷崖)인 주상절리(柱狀絶理)가 병풍처럼 강을 따라 펼쳐져 있습니다. 임진강의 주상절리는 중국대륙에서 뻗어 나온 선캄브리아기의 화강편마암류에 해당하는데 생성연대는 ‘탄소연대측정기’로도 측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푸짐한 햇살 속 푸른 갈댓잎과 강물이 하나로 흐르고, 건너편 수십 억 년 시간의 기둥이 발을 물에 담그고 6월의 더위를 식하고 있으니 평화라는 이름의 님은 이미 내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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