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 마하왁가(大品)〉- 17

▲ 삽화 박구원

2009년도부터 2011년도까지 매해 대만불교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사실 지금은 대만에서 불교의 위상은 매우 높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긴 세월이 걸린 것은 아니다. 겨우 60년 정도 된다. 그럴진대 어떤 요인으로 대만불교는 그 사회에서 주류의 종교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다양한 방면에서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대답을 내게 요구한다면, 나는 중간지도자 양성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예컨대 대만 자제공덕회(慈濟功德會)의 최고지도자는 증엄(證嚴, 1937~ )스님이지만, 스님이 직접 400만 이상의 회원들을 다 만날 수는 없다. 스님을 대신하여, 스님의 뜻과 원력을 전하는 중간지도자들이 있어야 한다. 이들을 자제공덕회에서는 자제위원이라 부른다. 4만명이다. 1명의 자제위원이 40명의 회원을 담당한다.

우리는 대개 아직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아직 불교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아직 멀었다. 공부를 더 하고 나서, 내 스스로 어느 정도 확신을 얻게 되면, 그때 이웃들에게 부처님 법을 전하겠다. 만약 자제위원들이 이런 생각을 했더라면, 오늘날 자제공덕회의 갖가지 불사(사회복지사업이나 재난구호 활동 등)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포교위기 역시 이 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길을 떠나지 못하는 우리들의 나약함이여! 포교는 스님들만이 아니라, 재가불자 역시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재가불자는 주저하고만 있는 것 아닌가. 아직 나는 절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좀더 알아야 해. 내가 어찌 그런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겠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같다.

이렇게 주저하기만 하고 용기있게 길을 떠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최초의 다섯비구 중의 한 분인 아삿지(Assaji, 馬勝) 비구의 태도는 우리의 자세전환을 촉구하는 모범사례가 아닐 수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이냐 묻는 사리불과 목련(이때 이들은 외도인 ‘산자야’의 제자였다.)에게 아삿지 비구는 겸손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있다. “벗이여, 나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르침과 계율에 초년생입니다. 그래서 그대에게 가르침을 온전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그 뜻을 말할 수는 있습니다.”(일아 역편,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80쪽)

아삿지 비구의 태도가 정답이다. 우리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벗이여, 나는 불교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르침과 계율에 초년생입니다. 그래서 그대에게 가르침을 온전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그 뜻을 말할 수는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실제로 부처님으로부터 「전법선언」, 즉 전법의 명령을 받은 60명의 제자들이 길을 떠났을 때 그들 역시 이러한 태도를 취했던 것이리라.

아삿지 비구가 전한 내용은 “모든 것은 원인으로부터 생긴다고 여래는 그 원인을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소멸을 말씀하셨습니다.”(80쪽) 이러한 이야기는 지금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은가. 저 아삿지 비구처럼, 우리 역시 오늘 듣고 배운 부처님 가르침 중에서 작은 한 부분이라도, “간단히 그 뜻”만이라도 전해주도록 하자.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중간지도자가 된다. 그러한 중간지도자들로 넘쳐날 때 우리나라 불교가 다시 태양처럼 높이 솟아오르게 되리라. 마치 대만불교가 그랬던 것처럼. (887호 5월 9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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