感慕如在圖(감모여재도) 소견(所見)

사당과 제사상을 그려 넣어
조선시대 유교사상을 표현
사찰과 유사한 건물 보며
보조국사 지눌 부탁 떠올려 
 

감모여재도는 이름 그대로만 읽고 이해하려면 조금 무리가 가는 명칭이다. 감모여재(感慕如在)란 말은 사실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그 모습이 실재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감모여재도는 원래 민화의 한 갈래로 들어가는 조선시대 특히 유교사상을 표현하는 그림이다.


대개의 경우 사당을 그리되 단아한 지붕에 잡상(雜像)이나 용두의 치미(雉尾)를 단정하게 그리고 서너 칸의 자그마한 집을 그린다. 그리고 그 안에 위패를 배치하고 바로 앞에 제사상을 펼쳐놓은 형태가 주로 많은데 상에는 여러 가지 제수인 과일이나 제사도구인 향 향합 촛대 술잔 꽃병 등을 그려넣는다.
제사상의 과일들은 자손창성(子孫昌盛)을 의미하는 석류(石榴), 자손을 남겼다는 의미를 지니는 유자(柚子), 아들을 상징하는 가지, 역시 남긴 자손이 많다는 의미를 지닌 포도(葡萄)등의 길상(吉祥)적인 과일들을 씨앗이 보이도록 그려 자손의 번창을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다.


그림의 형태는 대개 말아서 보관할 수 있도록 두루마리 형태로 놔두거나 족자를 한다. 집안의 정갈한 곳에 모셔놓았다가 명절이나 제사를 지낼 때 제사상 앞에 걸어놓고 조상의 명복을 비는 방식이다. 이는 사당이 없는 가난한 선비들이나 멀리 여행을 나와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에 많이 사용한다.
감모여재도의 다른 명칭은 사당도(祠堂圖)이다. 말 그대로 집을 그리므로 집이 주제가 되는 특이한 그림이다. 그 집안에 조상의 영혼을 모시고 다시 그 영혼을 마치 살아있는 부모님을 모시듯이 제사를 올려 공양하고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부모의 유훈(遺訓)을 받드는 그림이다.


감모여재도에 나오는 노송(老松)은 유서(由緖)깊은 집안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또 오동나무를 그리는 경우는 군자의 덕을 함께 보이며, 그 위에 달을 그려 차고, 기울어지는 달의 모습을 통해 조화와 융합, 재생 등을 보인다. 뜨락에 국화(菊花)를 그리는 경우는 무병장수(無病長壽)와 신비로운 영약(靈藥)으로 인식되는 국화를 통해 그 의(義)를 밝히고, 모란화분은 부귀옥당을 상징하여 음양의 기운을 묘사한다.
사당은 보통 주심포(柱心包) 양식에 약하게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겹처마 팔작지붕을 얹는 것이 보통이다. 지붕 용마루 양쪽에는 용두치미를 두어 사악한 기운을 막고 처마의 곡선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며 날렵한 모양새를 자랑한다.
또 전체적으로 단청을 칠해 아름다우면서도 정숙하고 화려한 모습을 지닌 집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찰의 법당과 거의 유사한 모습을 지니는 것이 감모여재도에 나오는 사당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진실로 이미 돌아가신 부모를 사모하여 그 은덕을 기리면, 마치 금방이라도 위패를 모신 집 안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그림이 감모여재도인 것이다.
요즘은 이 그림을 보면 간절히 그리워 만나고 싶은 분이 있다. 다름 아닌 보조국사 지눌큰 스님이다. 스님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후손인 우리 승려들이 반드시 승가의 화합과 전등(傳燈)의 사명을 잇도록 간절히 부탁하셨다.


특히 생각나는 구절은 부득양어가추(不得揚於家醜)하고, 단찬원문불사(但讚院門佛事)어다 라는 부분이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집안의 좋지 못한 일을 드러내지 말고, 다만 가람의 불사를 찬탄할지어다” 요즈음, 선배스님들의 활약을 보면서 더욱 더 생각나는 글귀이다. 매일 자고, 일어날 때마다 깎은 머리를 쓰다듬고 마음을 겸손히 하여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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