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 신록축제, 생태적 상생을 그리다

마곡사 신록축제 개막 장면. 천지는 한 뿌리, 만물은 한 몸이니 우리 모두가 무처라는 슬로건에서 상생의 공동체를 추진하고 있는 마곡사의 목표가 보인다.
5월 그리고 축제
생각만으로도 푸른 기운이 차오릅니다.
짙을 대로 짙어 가는 연둣빛 숲 속 산사에서 축제를 열었습니다.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은 ‘마곡사 신록축제’입니다. ‘춘마곡(春麻谷)’이라는 수식어가 아니어도 태화산 계곡의 봄은 싱싱하게 물이 올라 찬란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찬란한 풍경의 중심을 장엄하는 천년고찰 마곡사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5월 20일 일요일 아침, 어느새 공용주차장엔 차가 가득하고 임시주차장으로 차들이 몰립니다. 바쁜 일이 전혀 없는데도 절로 향하는 발걸음에 속도가 붙습니다. 사람들이 많으니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길가에서는 지역 농산물들이 눈길을 잡아당기고 엿장수의 가위소리는 신바람을 타고 박자를 몰아갑니다.
‘마곡사 문을 열다’를 주제로 열리는 본격적인 축제마당은 해탈문에서 시작됩니다. 봉축 연등 아래 연꽃 사진이 전시되었고, 천막 안에서는 아이들이 얼굴에 그림을 그려 넣고 있습니다. 종이컵 연등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느새 손가락 끝에 빨갛게 꽃물이 들었고 염주를 꿰는 아가씨의 손길은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천왕문 옆에 줄을 선 사람들은 서원지에 소원을 적기 바쁩니다. 건강, 대입, 성적, 사업, 가정화목, 백년해로 등등 소원은 다양하기도 한데 누군가 커다란 글씨로 ‘로또 대박!’이라 써 들고 함박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모든 이들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길….

백범 김구 선생이 거닐던 마곡사 솔바람 길이라 불린다.
신록축제 참가자들이 연등을 만들며 '빈자일등'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상생의 생활공동체 설립
극락교를 건너며 다리 아래를 살펴봅니다. 팔뚝만한 잉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관광객들에게 물고기 밥을 팔았지만 지금은 팔지 않습니다. 인공사료를 던져주는 잠깐의 유희가 시내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주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장난삼아 먹이를 던져주지 않아도 시내에 사는 어족과 미물들은 나름대로의 양식이 있습니다. 그들의 먹이사슬이 바로 자연의 질서입니다. 인간의 개입은 그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생명, 나눔, 수행’ 근래 마곡사는 이 세 단어를 기반으로 변화의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수행하는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주변의 모든 생명과 상생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 그것은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통해서만 실현되는 화두입니다. 마곡사의 생태적 상생운동은 그 자체가 수행이고 청정국토 건설의 출발인 것입니다.
상생의 생활공동체 구현, 이를 위한 마곡사의 대표적인 사업은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마곡’(이하 ‘복지법인 마곡’)과 ‘십승지 소농 마을공동체’ 입니다. 복지법인 마곡은 미래를 계획하는 복지 생태 문화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노인, 청소년, 장애인, 다문화가정, 여성 등 사회가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에 복지라는 이름의 보살행을 할 수 있는 교두보를 구축한 셈입니다.
“복지법인 마곡의 사업은 몇 가지 분야로 나눠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선, 행복나눔 사업으로 독거노인 및 저소득층 어르신의 건강검진과 틀니 지원, 생계 및 난방 지원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희망나눔 사업 분야에서는 다문화 가정 자녀의 교육비나 물품을 지원하고 지역 아동들에게 운동화와 교복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또 장애인 가정의 재활치료비도 지원하고 있지요. 장난감 도서관이나 어린이 북 카페는 농촌의 어린이들에게 신나는 시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외에도 나눔과 배분 사업으로 지역민들과 함께 설날이면 떡국을 나누고 사월초파일에는 쌀을 나눕니다. 추석에는 송편을 김장철에는 김장을 동지에는 팥죽을 나누고 겨울철에는 옷을 나눠 입으며 한 가족의 온기를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만난 마곡사 주지 원혜 스님은 다양한 사업들을 소개하며 모든 사업이 나름대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고 계획 중인 사업들도 금년에는 실행단계에 접어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마곡사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인근 샘골에서 펼쳐지는 21세기 사하촌 프로젝트 ‘십승지 소농 마을공동체’입니다. 소농이란 기계나 화학 비료, 농약 등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적인 노동을 통해 무공해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따라서 혼자 힘으로는 버거워 마을 공동체가 필수입니다. 마을공동체는 품앗이와 수확물 나누기 등의 유기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전통 농경사회의 자연친화적 삶이 구현되는 것이고 연기적 질서의 삶을 훈습하는 것입니다.
마곡사는 이미 마을공동체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마곡사가 소유한 농지 33만여㎡(10만여 평)를 귀농자들의 생태적 삶을 돕기 위해 내놓고 두레배움터에서 집짓기를 가르치고 전국귀농운동본부가 농사 기술을 가르치는 3자 협력 시스템이 ‘십승지 소농마을공동체’의 근간이라 합니다. 지난 1월에 3자 협약이 이루어 졌는데, 마곡사는 농경지를 분양한 것이 아니라 무상대여 형식으로 내놓아 ‘경작권’만 빌려주는 것입니다. 에너지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가옥도 공동주택 형식으로 하고 대소변과 음식 찌꺼기를 활용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여 최대한 생태에 순응하는 마을이 될 것이라 합니다.

‘마곡사 문을 열다’ 주제 다양한 전시 체험
친환경 상품, 자연 에너지 활용법 등 눈길
마곡사 ‘생명·나눔·수행’ 청규 종무혁신
지역 단체 등 교류 활발 포교에 큰 효과
 

즐거운 참여 유익한 추억
대광보전 앞마당도 줄을 이은 축제 부스와 색색의 봉축연등이 극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은 일섭문도회가 마련한 불교문화 체험 부스입니다. 유치원에 다닐 것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동그란 나무판에 연꽃을 그리고 있습니다. 단청체험입니다. 물감이 자꾸 선을 벗어나 꽃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지만 아이는 진지합니다. 그 옆의 여자아이도 입을 꼭 다문 채 조심스럽게 색칠을 합니다. 그림이 완성되면 집으로 가져갈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마곡사에서의 추억을 기억할 것입니다.
지구를 살리는 환경 책 전시회, 친환경생활용품 전시 판매, 자연미술교실(손수건 꽃물들이기, 에코백 만들기), 대한 에너지 체험학교, 적정에너지 활용기술 시연회. 대부분의 부스들이 생태적 삶의 지혜를 주는 아이템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마곡사가 추구하는 ‘생명, 나눔, 수행’의 의지가 축제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입니다.
적정에너지 활용기술 시연회에서는 나무젓가락 3개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고효율의 로켓 스토브가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동식 가마솥 화덕과 거꾸로 타는 깡통난로, 햇빛온풍기, 자전거 발전기, 순간온수기 등이 자연의 에너지를 생활에너지로 바꾸어 쓰는 지혜를 보여 줍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한 때 출가하여 지낸 마곡사. 이번 축제 마당에서 김구 선생 관련 역사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청소년들은 김구선생 관련 도서를 읽고 독후감쓰기 대회도 가졌습니다.
김구 서생이 은거했던 요사를 지나니 마곡천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마곡사 솔바람 길입니다. 백범 명상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길은 김구 선생의 산책로였습니다. 민족의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일생을 바친 선각자의 고뇌가 어린 길입니다.

청규,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약속
마곡사에는 청규가 있습니다. 청규란 수행집단에서의 공동 규약입니다. ‘사람의 숲 마음의 숲 태화산 마곡사 수행공동체 청규’가 그것인데, 대중화합, 종무행정, 재정운용원칙, 기타사항 등 교구본사의 전체적인 살림살이의 규칙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생명살림을 위한 실천 청규 세칙’은 ‘생명살림을 위한 불자들의 여덟 가지 청규’와 ‘3S+3S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덟 가지 청규는 △모든 생명은 나와 한 몸임을 깨달아 공경하고 섬기는 삶을 산다. △자연은 미래세대와 뭇생명의 미래를 고려하여 이용한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끼리 서로 살리는 공생의 삶을 산다. △소욕지족의 삶을 통해 아름답고 소박한 삶을 산다. △항상 자신을 살피며 마음을 닦는 수행의 삶을 산다. △분별하는 삶을 내려놓고 다양성을 풍요로움으로 여기는 삶을 산다. △불편함을 즐기며 천천히 사는 삶을 누린다. △잘 썩는 삶, 순환적인 삶을 산다 등입니다.
또 ‘3S+3S의 삶’이란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life is Beautiful) △천천히 사는 것이 아름답다(Slow life is Beautiful) △나누는 삶이 아름답다(Share life is Beautiful)의 3S에 생명과 정신, 지구를 생각하는 (Save Our Life, Save Our Soul, Save Our Earth) 불자되기 등입니다.

마곡사 신록축제는 푸른 신록의 기운을 삶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흥겨운 자리입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바쁜 일상, 자연을 등지고 달려가는 문명,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 거대한 벽이 쌓이는 첨단 시대의 고독과 불안은 5월의 신록 안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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