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스님 수행일화 <21>, <22>, <23>

세상풍속도 마음따라 달라

어려서 예쁜 것 커서 싫다니

경허 스님 어머니 노기는

특별 법문에 대한 상놀음

<21> 모친 위한 해탈 법문

하루는 천장사에서 경허 스님이 어머니를 위해 법문을 한다고 대중을 불러 모았다.

“우리 어머니를 모셔 오도록 하라.”시자는 스님의 뜻을 연만한 할머니께 전하며, 큰스님으로 존경받는 아드님의 법회에 가시기를 청했다. 모친 되시는 할머니 또한 희색이 만연해 옷을 갈아 있고 대중이 모인 큰 방에 들어가 향을 피우며 정성을 다해 경의를 표하고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는 “우리 경허가 나를 위해 법문을 설한다 하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구나”하며 특별 법문을 청했다.

그 때 스님은 잠자코 앉아 있다가 어찌된 셈인지 어머니를 맞이해 부시럭부시럭 옷을 벗는 것이 아닌가. 스님은 완전히 벌거벗은 알몸이 되자,“어머니, 저를 보십시오”하고 그대로의 나신(裸身)을 보였다.

그 어머니는 무슨 심오한 설법을 자기를 위해 해줄 줄로만 알고 크게 기대하고 있다가 해괴한 모습을 보고는 크게 노했다.

“대체 무슨 법문이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별 발칙한 짓도 다하는구나!”

할머니는 법석을 박차고 나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는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았다. 이에 스님은, “저래 가지고 어찌 남의 어머니 노릇을 한단 말인가. 내가 아주 어려서는 이 몸을 벌거벗겨 씻기며 안고 빨고 하시더니, 지금은 왜 그렇게 못하실까. 세상 풍속 참으로 한심한 일이로군”하고 짐짓 쓴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스님의 모친은 노발대발해“그래, 나를 위해 법을 설한다고 하더니, 그게 무슨 짓이란 말이냐?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하고 탄식하며 좀처럼 노기를 풀지 않았다. 대중이 전부 몰려가서 아뢰었다.

“할머니, 그게 바로 스님의 큰 법문이랍니다. 특별 설법이었어요. 그러니, 어서 노여움을 푸십시요”하고 거듭 빌어야 했다.


<22> 벌 드나드는 콧구멍

하루는 경허 스님이 큰 방에서 정진하고 계시는데 만공 스님이 스님에게 넌지시 물었다.

“스님, 저는 콧구멍이 간질간질합니다.”

경허 스님이 물었다.

“왜 그런가?”

경허 스님이 되물은 즉 만공 스님이 대답했다.

“벌들이 저의 콧구멍 속으로 드나드느라고 그러합니다.”

경허 스님이 만공 스님을 나무랬다.“이 사람아, 벌이 드나드는 콧구멍은 간지럽지를 않아.”

만공 스님은 한 마디 자기의 견처를 과시해 보려고 했으나, 조작된 망상임을 뉘우쳤다. 스님은 경허 스님의 자연스러운 지적에 깊이 깨우쳤다 


만공 스님 망상에 따끔한 지적

유생 행세하던 경허 스님

대자유인으로 유유자적

고향·타향·차안·피안 구분없네

<23>무하향의 경지

경허 스님이 만년 10년 가까이나 떠돌며 보내던 열반지는 북녘 땅 끝 함경도 갑산ㆍ강계 지방 일대였다.회갑 노년기의 스님이 강계 땅 장뚜루벌을 지나던 때는 1905년 무렵 어느 날 이었다.

강계군 종남면 한전동의 시골 선비 담여 김탁은 경허 스님보다 3살 아래인 54세였다. 지방유지였던 김탁은 마침 고향 마을에서 10여 리 거리에 있는 장뚜루벌에 와있었다.

어찌된 셈인지 대여섯 명의 청년들이 속인이라 보기도 어렵고, 또 그렇다고 해서 스님이라 보기도 어려운 한 초로의 늙은이를 에워싸고 몰매를 갈기고 발길질을 해대고 있었다.

“이런 놈의 영감은 죽여도 그만이야! 나쁜 영감태기 같으니라구.”

청년들의 모습은 살기가 등등했다.김탁은 시끄러운 고함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거리로 나와봤다. 이유인즉슨 아낙네를 희롱했다는 이유로 젊은이들이 펄펄 뛰는 것이었다.

김탁은 청년들의 분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의 무지막지한 폭행부터 뜯어말렸다. 김탁 덕분에 경허 스님은 청년들로부터 봉변을 그칠 수 있었다.

이 때였다. 스님이 김탁에게 도리어 목청을 돋구는 것 아닌가.

“미친 놈이, 할 일이 없으면 그대로 길이나 갈 것이지, 괘씸하구나! 네 이놈, 이 고얀 놈 같으니라고! 너는 남의 일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어찌 삯싸움이나 하며 쓸 데 없는 참견을 하러 드는고?”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욕설 섞인 호령부터 하는 경허 스님을 보고 김탁은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면서도 김탁은 안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달래며, 스님의 얼굴과 행색을 다시금 눈여겨 보았다.

범상치 않은 풍채를 지닌 스님은 드물게 보는 괴이한 걸물이었다. 순간 김탁은 스님의 비범함에 끌렸다.

“이거 어른을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시간이 있으시다면, 저희 집 누처로 가시겠습니까?”하며 스님에게 동행을 청했다.

화가 누그러진 스님은 김탁의 뒤를 따랐다.길을 걸으며 경허 스님과 김탁은 법담을 나눴다. 집에 돌아와서도 밤 새는 줄 모르고, 그 날 밤을 밝히며 스님의 일거일동(一擧一動)에 도취해 버린 담여 김탁은 유생 박난주로 행세하는 경허 스님을 깎듯이 받들어 모셨다.

경허 스님은 그 집에 머물며 정성들여 옷 시중을 하는 김탁의 부인 박씨를 계수처럼 부르며 한 집안 식구로 지냈다.

어느 날, 스님은 박씨에게 “계수님은 여기 강계에서만 살 분이 아니고, 장차 충청도 수덕사 혹은 천장암 근처로 가서 살 것 같소이다”하는 예언도 했다.

김탁의 집에서 스님은 줄곧 유생 박난주로 행세하며 마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면서도 경허 스님은 그 일대 도처에서 거침 없는 시흥(詩興)을 돋구면서 대자유인으로 유유 자적하는 나날을 보냈다.

경허 스님이 이 때 읊은 시가 여러 수 전한다. 이 가운데에는 김탁과 술자리에서 읊은 시는 7언 율시로 돈의 이상향이라 할 ‘무하향(無何鄕)’의 경지가 도도하다. 고향이니 타향이니 하는 구분은 물론 구태여 차안(此岸)이다 피안(彼岸)이다 하는 구분도 없는 선객의 가풍 또한 여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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