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스님 수행일화

100리 오가며 탁발 굶는이들 도와

군자와 광녀는 모두 같은 도반

묵향과 썩은내 구분할바 있으리

말하지 않음 속에 법거량 있고

한데 뒤엄킴 속에 불법 나퉈

탁발과 보시행은 다르지 않아

굶주림 앞엔 부처도 없어

묵군자(默君子)와 광녀(狂女)

해인사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경허 스님은 경상도 지방에서 유명한 묵군자(默君子)의 소문을 듣게 됐다. 경허 스님은 그가 있다는 한 암자를 찾아갔다.

경허 스님은 아무 말 없이 암자의 방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묵군자는 방 안에 혼자 묵묵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경허 스님이 들어가 앉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벽을 보듯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몇시간을 두 사람은 나란히 보며 있었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을 서로 말없이 앉아 마주보기만 할 뿐이었다. 묵 군자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며 마주 앉아있던 경허 스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묵군자, 묵군자. 내 그대의 이름을 들은지가 오래더니, 과연 헛된 이름이 아니로군.”

묵군자가 곧 대답했다.

“네, 경허 스님, 경허 스님. 성망(盛望)을 들은지가 오래인데 바로 경허 스님이 아니시오.”

생면부지의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묵군자는 경허 스님을 바로 알아보았다. 묵군자가 하인을 불렀다.

“이리 오너라”

묵군자는 하인을 시켜 주안상을 한상 차려오도록 했다. 법담의 상대를 만난 서로는 백년지기와 같이 함께 음식을 들며 이야기를 쏟아냈다. 몇일 동안 경허 스님과 묵군자는 한방에 묵으며 법을 논하며 지냈다.

경허 스님의 경지가 드러난 일화는 또 있다. 그 대상은 군자로 이름을 날린 묵군자와 반대인 광녀였다. 경허 스님이 해인사 조실로 있던 어느날이었다. 경허 스님은 만신창이가 된 광녀를 데리고 와 조실방에서 같이 식사하고 자곤 했다.

이 광녀는 스님이 자신을 예뻐하는 줄 알고, 가지도 않고 조실 방에서 계속 기거하며 숙식을 함께 했다.만공 스님은 이런 모습을 대중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문 밖에서 혼자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 경허 스님을 뵈러 오면 “스님께서는 지금 주무십니다”하며 돌려보내곤 했다.만공 스님이 몇일 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경허 스님은 광녀에게 팔베게를 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여자에게 다리를 걸치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 광녀를 자세히 보니 코도 눈도 분간할 수 없었으며 손가락도 없었다. 또 걸친 옷은 고름과 소변에 쩔어서 올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며 씻지도 않아 몸에서는 송장 썩는 악취까지 풍겼다.

만공 스님은 경허 스님의 경계를 한참 서서 생각했다. 자신이 만약 저 여자를 저렇게 같이 데리고 잘 수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도저히 할 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공 스님은 열 번을 고쳐 생각해도 경허 스님의 법력을 따를 수가 없구나 하여 존경심이 더욱 깊어 졌다.


지리산 기슭에서의 자비행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 마천(馬川)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천 마을이 자리한 심산 유곡은 실상사(實相寺)ㆍ백장암(百丈庵)ㆍ벽송사(碧松寺)ㆍ상무주(上無住) 등지로 갈 수 있는 길목이지만 무성한 숲 속 오솔길로 높고 험한 재로 인해 이따금 길손이 찾을 뿐이었다.

어느해 초여름 무렵이었다.모진 흉년 끝에 마천 마을 주민들은 보리고개를 넘다 못해 굶주려 아사할 직전에 이르게 됐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로 어지럽고 어렵던 암흑시기여서 어느 누구도 두메산골의 가파른 민생고를 해결 할 수 없었다.

경허 스님이 우연히 그 곳을 지나게 됐다. 스님은 지리산 마천 마을의 참상을 보고는 가던 길을 멈추었다. 한동안 생각에 젖어 있던 스님은 가던 길을 되돌려 남원 쪽으로 향했다.

스님은 단숨에 100리 가까운 길을 걸어 남원 땅에서 탁발을 하기 시작했다.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스님은 가까스로 바랑 가득히 곡식을 모을 수 있었다.

경허 스님은 그 짐을 짊어지고 걸음을 재촉해 100리 길을 다시 걸어 마천 마을로 돌아왔다. 스님은 집집마다 손수 돌며 굶주린 주민들에게 손수 식량을 나눠주면서 자비 보시행을 베풀었다.여러 차례 걸쳐 스님은 100리를 걸어 탁발을 하고 또 100리를 걸어 자비행을 베풀었다.

굶어 숨넘어갈 고비에 놓인 두메 사람들을 계속 이처럼 살려놓은 뒤에야 스님은 이렇다할 말도 없이 비로소 가던 길을 다시 걸어 산중 오솔길로 접어들어 홀로 자취를 감추었다.지금까지도 지리산 기슭 마천 마을 일대에는 굶주려 죽게 된 산골 사람들을 구원한 경허 스님의 자비행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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