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스님 수행 일화 ⑰⑱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 물으니
경허 스님 말없이 주장자로 갈겼다
태평 스님도 주장자로 후려 갈기니
“사자는 사람물고 개는 흙덩이만 쫓네”


 곡차 동이의 법력
보은 법주사에서 진하(震河) 스님과의 일화다. 법주사에서 강백으로 이름을 크게 떨치던 진하 스님은 평소 경허 스님을 좋지 않게 평하고 있었다.

진하 스님운 학인 스님들로 하여금 경허 스님을 혼낼 작정을 하고 있었다. 이러던 중 우연히 경허 스님이 법주사를 찾았다. 벼르고 벼르던 학인스님들은 경허 스님에게 봉변을 줄 계획을 짜 놓고 있었다.
형세와 분위기를 감지해서일까. 경허 스님은 큰 방에 좌정하자마자 느닷없이 우렁찬 사자후를 토했다.
“자고로 종사(宗師)가 선사(禪師)에게 이런 법이 없다!”
경허 스님의 한마디에 진하 스님은 그만 아찔해졌다. 평소에 경허 스님의 무애행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겨 불만에 찬 비평을 늘어놓던 진하 스님은 경허 스님을 친견하자 첫 눈에 존경심이 나게 됐다.
진하 스님은 머리를 숙여 아만(我慢)을 없애고 학인들이 불량한 짓을 못하도록 자진해 막기에 바빴다. 진하 스님은 시간이 나는 대로 경허 스님을 모시고 여법하게 법을 청했다. 또, 자신이 직접 곡차를 받아 공양을 올리기도 했다.

부산 범어사에서 경산(擎山) 스님과의 일화다. 경허 스님이 어느 날 범어사에서 경산 스님과 부산진을 거쳐 해운대를 돌아보고 오게 됐다. 경산 스님은 기골이 장대하고 그 힘이 장사였으며 한때 걸승으로 유명한 스님이었다.
경산 스님은 경허 스님이 곡차를 즐겨 드신다는 말을 미리 접하고 경허 스님이 곡차를 얼마만큼 마시는지 시험하고 싶었다.
경산 스님은 경허 스님을 모시고 일부러 주점 인근을 다니며 스님이 곡차를 마음껏 드실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경허 스님이 곡차 잔을 쓰지도 않고 동이 째로 마시는 것이 아닌가. 자신도 대작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따라 마실 수 없었다. 경산 스님은 가끔 한잔 씩 경허 스님이 권하는 것을 받아 마시다 만취하게 됐다. 경산 스님은 거리에 쓰러져 세상모를 지경이 돼 버렸다.
경허 스님이 이런 경산 스님을 말없이 한 손으로 바구니 들 듯 치켜들고 범어사 금강암까지 단숨에 올려다 놓았다고 한다.

 

⑱ 정 처사와의 사제인연
경허 스님이 천장암에 주석할 때의 일이다. 경허 스님의 명성을 듣고 정 처사(處士)라고 하는 선비가 경허 스님을 만나기 위해 천장암을 찾았다.
정 처사는 천장암 선당방으로 들어가서 경허 스님의 맞은편에 앉았다.
경허 스님과 정 처사는 한문 문장으로 대화를 하는 토사성문(吐辭成文)을 시작했다.

“차처해우벽지(此處海隅僻地)로 구불견룡사(久不見龍蛇)려니 금일래자(今日來者) 시룡야사야(是龍耶蛇耶)?”

“이 곳은 바닷가의 구석진 벽지로서 오랫동안 용도 뱀도 보지 못했는데, 오늘 온 것은 용인가? 뱀인가?”란 뜻이었다.
정 처사는 이 말을 듣자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올리며 답했다.

“석가불배 석가불(釋迦佛拜 釋迦佛)이요, 미륵불배 미륵불(미륵불배 미륵불)입니다.
“석가불에게 절하는 것은 석가불이요, 미륵불에게 절하는 것은 미륵불입니다.”

정 처사의 말은 경허 스님에게 절하는 자신은 경허 스님을 알만하며 경허 스님 또한 자신을 알 만 하다는 것이었다.
서로의 경지를 알아본 경허 스님과 정 처사는 무상의 법연을 맺어 스승과 제자가 됐다. 경허 스님은 정 처사를 맞아들여 정 처사는 사흘 동안을 천장암에서 묶으며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선(禪)에 대해 묻고 또 들었다. 서로를 알아보고 뜻이 맞는 그들 사이에 사흘은 오히려 짧은 시간이었다.


⑲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문답
경허 스님이 천장암에 있을 때 계룡산에 태평 상인(太平 上人)이라 불리는 지혜와 덕을 겸비한 스님이 있었다. 태평 스님은 원래 판서집 자제로 어려서 출가해 수행정진에 철저했다.
또 기이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태평 스님이 경허 스님의 도명(道名)을 접하고 스님을 찾아 천장암을 거쳐 다시 서산 부석사로 갔다. 경허 스님이 있는 방 앞에서 태평 스님은 방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여하시(如何是)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이니꼬?”

달마 조사가 서쪽 인도에서 온 참 뜻이 무엇이냐는 선문답이었다. 태평 스님에게 경허 스님은 아무 대꾸 없이 주장자를 들어 냅다 후려 갈겼다.
주장자를 맞은 태평 스님이 다시 입을 열기를 “때리기는 때렸어도 조사서래의는 아닙니다”고 말했다.
이에 경허 스님은 곧 되받아 묻기를
“여하시 조사서래의 인고?” 했다.
이번에는 태평 스님이 주장자로 경허 스님을 후려 갈겼다. 얻어맞은 경허 스님이 말했다.

“사자는 사람을 물거늘(獅子咬人), 어찌 한나라 개는 흙덩이만을 쫓는고(韓盧逐槐)?”

그 소리를 듣고 태평 스님은 공손히 경허 스님에게 아뢨다.
“큰 스님, 법은(法恩)이 망극합니다.”
경허 스님은 웃으며 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