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합천 해인사(海印寺)

성철 스님은 해인사에서 출가해 열반에 드셨다. 방장으로 주석할 당시 선문에서 전례없는 ‘백일법문’을 설했다. 원택 스님이 순례단과 해인사를 둘러보며 성철 스님과의 추억담을 순례단에게 설명하고 있다.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 출가시(出家詩)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 열반송(涅槃頌)

출가와 열반이 함께한 곳. 5월 26일 ‘성철 스님 수행도량 순례단’이 세 번째 순례로 경남 합천 해인사(海印寺)를 찾았다. 성철 스님이 출가 수행 생활을 시작하고 회향한 해인사는 스님에게 가장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대원사서 동정일여(動靜一如)에 이르게 된 성철 스님을 보고, 당시 대원사 주지 스님은 스님에게 해인사에서의 출가를 권했다. 1936년 봄. 성철 스님은 해인사로 출가해 백련암에 주석하고 있던 동산(東山) 스님에게 수계득도 했다. 그렇게 스님과 해인사의 인연은 시작됐다.

교단정화가 본격화된 1955년 성철 스님은 해인사 주지에 임명됐으나 자리를 뿌리치고 대구 파계사 성전암으로 들어가 수행 정진에만 몰두했다. 이후 1967년 해인총림이 재건되면서 초대 방장에 추대돼 해인사에 주석한다.

스님과 해인사의 인연은 스님이 열반에 든 1993년 11월 4일, 해인사 퇴설당에서 끝이 났다. 스님은 “참선 잘하라”라는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당시 세수 82세, 법랍 58세였다. 순례단 300여 명이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해인사는 5월의 신록으로 뒤덮여 있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해인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걸렸다.

해인사는 국내 최대 명찰로, 신라 제 40대 임금 애장왕 3년에 창건됐다. 해인사는 신라시대부터 균여와 의천 대사 같은 빼어난 학승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이런 사력이 있는 해인사는 존재만으로도 순례자들의 노곤함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해인사 대웅전 앞마당에 연등이 걸려있다.

뒤로는 가야산, 앞은 매화산을 둔 해인사는 모습 자체로 웅장함을 자아낸다. 해인사는 발 닿는 길 곳곳마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최치원이 노년을 지내다 갓과 신발만 남겨둔 채 홀연히 신선이 됐다는 해인사 계곡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속세에 찌든 번뇌가 씻겨나가는 듯하다. 순례단은 원택 스님과 천년 역사가 담긴 해인사 길을 걸으며 해인사 역사의 유구함과 찬란함에 절로 고개를 숙였다. 

해인사는 성철 스님이 방장으로 주석할 당시, 전설로 회자되는 ‘백일법문(白日法門)’을 설한 곳이다. 스님은 1967년 겨울 안거 기간 선문에서 전례 없는 법문을 하셨다. 100일 동안 매일 2시간씩 불교의 핵심이 부처님이 깨달은 중도라는 것을 경전을 통해 증명하고 선종의 종지는 돈오돈수(頓悟頓修)임을 설파했다.
순례단은 당시 스님의 음성을 상상하며 ‘백일법문’의 일부를 읽어내려 갔다.

“불교는 내 마음 속에 절대무한의 세계가 다 갖춰져 있는 것이지 내 마음 밖에, 이 현실 밖에 따로 있지 아니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불교의 독특한 입장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누구든지 불교를 믿으려면 자기에게 그러한 절대무한의 세계가 갖춰 있다는 것, 내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을 믿는 것이 근본 조건입니다. 불교는 처음과 끝이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인간을 완성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는데 그 인간이 절대적 존재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백일법문〉 상권 중에서

출가·열반 한 절… 동산 스님에게 수계
1967년 선문에 전례없는 ‘백일법문’
100일동안 매일 두시간씩 〈중도〉 설해
“불교는 인간을 완성 시키는 종교” 강조

법회를 마친 순례단은 성철 스님의 부도탑 앞에서 참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스님의 부도탑은 한 눈에 봐도 여느 탑과는 확연히 다르다. 현대적으로 재 조성된 탑이었다. 3단의 기단 위에 반원이 2단으로 엇갈리게 놓여 있고, 그 위에 큰 원이 얹혀 있다. 둥근 원은 성철 스님의 완전한 깨달음이 표현된 것이다. 스님의 가르침이 현재와 미래에도 영원할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정인영 씨는 “해인사에 온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다. 스님의 사리탑을 보니 아직도 스님이 살아 계신 것 같다”며 “이번 기회로 스님의 ‘백일법문’을 다시 공부할 예정이다. 6월 11일에 시작하는 고우 스님의 ‘백일법문’강좌도 신청한 상태이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신순례 씨는 “친구 권유로 순례단에 참가하게 됐다. 막상 와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성철 스님 수행도량 사찰들을 순례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더 깊이 알게 됐다. 앞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열심히 따라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성철 스님 부도탑을 돌며 기도하는 순례단 참가자들.

스님은 가야산 제일 높은 위치에 자리한 백련암에 주석했다.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부처님께 3000배를 해야만 한 일화는 유명하다. 스님들은 신도들에게 3000배를 하는 동안 스스로 참회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원택 스님이 얼마 전 자신을 찾아온 한 기자와의 일화도 소개했다. “기자가 묻습디다. 만일 성철 스님에게 도박사태 등 현재 종단 안팎서 일어나는 안좋은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 것 같으냐고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지요. ‘중보러 절에 오지 마라. 부처님 보러 절에 오라고 하셨을 거라고요.’”

‘백일법문’을 통해 불교의 바른 믿음과 진리를 전하고 싶었던 성철 스님의 육성이 해인사 곳곳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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