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스님 수행 일화 ⑩⑪

“그 도지사란 놈 당장 목을 벨…”

서슬퍼런 호통에 일본 관원도 머뭇

바위 내려앉을 리 없단 말에

“가장 안전한 곳이 가장 위험한 곳”

⑩ 속인들의 탐심에 일갈

경허 스님이 만공 스님과 여러 날 째 멀리 여행을 하고 있었다. 두 스님이 길을 가는데 그만 여비가 똑 떨어졌다. 날이 저물어 여관에 행장을 풀고 하룻밤을 쉬게 됐다.

다음날 여관주인이 경허ㆍ만공 스님에게 숙박비와 식대를 내라고 했다.

그러자 경허 스님이 “우리가 법당을 중수하려고 화주를 나왔습니다. 주인께서도 시주를 하시지요?”라고 말했다.

여관주인이 잠자코 있다가 답했다.

“그러면 그 화주 책을 한번 봅시다.”

만공 스님이 곰곰이 생각해보니 경허 스님에게 화주 책이 없었다. 화주 책도 없는데 시주하라고 말을 꺼냈으니 큰일이었다.

만공 스님이 말했다.

“실은 이 주인댁에 우리가 화주를 하려고 왔으나 지난 밤 너무 극진한 대접을 받아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니 이 댁에서는 시주를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화주 책을 내놓지 않고 둘러대는 만공 스님의 말에 얼떨떨해진 여관주인은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때 만공 스님이 덧붙인 한마디가 가관이었다.

“그렇게 까지 괘념하시어 우리에게 시주까지 고맙게 해 주신다면 책을 꺼내 보여드리지요.”

만공 스님은 걸망 속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정작 있지도 않은 화주 책을 꺼낼 기세였다.

그러자 여관주인이 “네,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스님들” 하며 책 꺼내는 것을 만류하는 것이 아닌가. 주인으로서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여관비를 받기는커녕 법당 중수 화주까지 하게 생겼다는 생각에 책 꺼내는 것을 극구 만류할 수 밖에 없었다.

여관 주인은 “스님들, 그렇다면 제가 시주를 특별히 할 수는 없고 어젯밤 두 분의 숙식비는 받지 않을 테니 그냥 가시지요”하고 정중히 말했다.

여관에서 나오자 경허 스님이 만공 스님에게 말했다.

“자네 수단이 나보다 훨씬 낫네 그려”

만공 스님이 경허 스님과 만행하며 겪은 고비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고비 마다 만공 스님은 기지를 발했다.

어느 날 만공 스님이 경허 스님을 모시고 전주 인근을 지날 때의 일이었다. 어느 식당에서 점심공양울 마친 두 스님은 구한말 시대에 쓰던 은백전을 내주었다.
그러자 식당 주인이 “이 돈은 전라도 도지사가 사용치 말라는 명령을 내려 받을 수 없으니 여기서 쓰는 돈을 주시오”라고 말했다.

당시는 일제가 침략 정책에 의해 화폐개혁을 하고 새 화폐 사용을 강요하던 시기였다.식당주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허 스님이 큰 눈을 부릅뜨고 일갈했다.

“그 도지사란 놈은 당장 잡아 목을 벨 놈이로구나. 우리나라에서 내놓는 돈을 우리나라 사람이 사용 못하다니, 그런 죽일 놈이 있단 말이냐? 이 돈을 썩 받아라!”스님의 호통에 주인은 얼떨결에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 식당 주변에는 일제 관원이 나와 있었다. 관원이 이 광경을 보고 개입하려 했지만 서슬 퍼런 스님의 야단에 관원조차 무어라 말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경허 스님은 이 틈을 타 식당을 나와 뛰기 시작했다. 만공 스님은 태연한 척 마을 사람들에게 잘 이야기 하고는 부리나케 경허 스님을 쫓아 식당을 빠져 나왔다. 얼마를 갔을까, 산모퉁이를 돌고나니 경허 스님이 쉬며 있었다.

“내가 어지간하지. 그 바람에 길을 많이 걸어왔다. 어떠냐. 내 재주가?”

경허 스님의 너털웃음에 두 스님은 만행의 피로를 잊고 다시 길을 떠났다.


⑪ 동굴에서 비를 피하며

경허 스님을 모시고 만공 스님이 어느 산중 깊은 길을 가다 갑자기 비를 만났다. 두 스님은 큰 바위 동굴에 몸을 피했다.

조용한 가운데 경허 스님이 단단한 바위로 된 동굴 천장을 자꾸 올려다 보는 것이 아닌가. 만공 스님이 이런 경허 스님에게 의아해 말했다.

“스님은 왜 그렇게 천장을 올려다 보십니까?”

경허 스님이 조용히 말했다.“이 바위가 내려 앉을까 염려되서 그러네.”

만공 스님이 “스님 이 끄덕없는 바위가 내려 앉을 리가 있겠습니까?”하고 다시 묻자 경허 스님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아, 가장 안전한 곳이 가장 위험한 곳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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