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스님 수행 일화 ⑥⑦

제산 스님 남몰래 안주 올리고

남전 스님은 그 소식에 한소식

만공 스님 몸바쳐 스승공양 다짐

격외도리에 ‘법따르기’이어져

경허 스님 수행 일화

⑥제자들의 격외법담

경허 스님의 법을 신봉한 직지사 제산(齊山) 스님은 청정한 지계행과 높은 덕행을 겸비해 제방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제산 스님은 경허 스님이 합천 해인사 조실로 있을 때 시봉을 도맡다 시피했다.당시 400~500명의 대중이 상주하는 대사찰에서 경허 스님의 뜻을 받들어 모시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경허 스님을 위해 대중 모르게 곡차를 마련하고 안주감이 될 만한 것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제산 스님은 입소문을 막기 위해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고 깊은 밤이면 몰래 절 밖으로 나가 안주를 만들어 경허 스님에게 올렸다. 꼬리가 길면 잡히게 마련, 제산 스님의 행각은 대중 사이에 알려지고 말았다. 산중은 변고가 난 것처럼 야단이었다. 납자 몇 몇이 모이기만 하면 모두들 경허 스님과 제산 스님을 성토하기 바빴다.

당시 주지 남전 스님이 이 소문을 듣고 제산 스님을 찾아 소문의 진위를 물었다.제산 스님은 태연히 “제가 경허 스님을 위해 한 일입니다”라고 답했다. 남전 스님으로서는 제산 스님을 만나기 전 낭설이겠거니 하며 물었는데 제산 스님의 당당한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남전 스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밖으로 나갔다. 남전 스님은 믿기지 않았다. 평소 법력이 높아 추앙받는 선지식 경허 스님, 또 학덕과 율행을 겸비한 것으로 알려진 제산 스님이 아닌가.

남전 스님은 며칠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스님의 고민은 경허 스님의 법력에 대한 의구심에까지 이르렀다. 남전 스님은 경허 스님의 법문을 찬찬히 들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깊은 감명이 우러나는 것이 아닌가. 남전 스님은 곧바로 선방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용맹정진을 시작했다. 신심이 발한 남전 스님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남전 스님이 하루는 대중공양을 하는데 발우를 펴며 제산 스님에게 “스님, 이 발우가 안보입니다”하는 격외 법담을 걸었다.

스님의 높은 경지에 모든 좌중은 크게 놀랐다. 그 후 남전 스님 역시 제산 스님 이상으로 경허 스님을 신봉하게 돼 경허 스님에 대한 소문들을 진정시키는데 앞장섰다. 해인사에서는 어느 날 만공ㆍ제산ㆍ남전 스님이 함께 자리해 경허 스님의 법따르기를 견주는 기회가 있었다.

제산 스님은 “누가 뭐라해도 경허 스님께 계속 곡차와 닭고기를 바치리다”하자 남전 스님이 말을 받아 “경허 스님과 같은 어른을 위해서라면 닭이 아니라 소도 잡아 올리기를 조금도 거리낄게 없소”라고 대꾸했다.이에 만공 스님은 “나는 전쟁이 나 깊은 산중에 모시고 살다가 양식이 떨어져 공양 올릴 것이 없게 된다면 나의 살점을 오려서라도 스님의 생명을 유지케 해 스님이 중생제도 하시게끔 해 드릴 자신이 있소”라고 말했다.


“이 막대기로 나를 때려봐라

제대로 때리면 과자를 주마”

아이들은 주장자로 후려쳤으나

스님 “너희들은 나를 때리지 못했다”

 

⑦ 마정령의 목동들

경허 스님이 마정령이란 고개를 넘을 때의 일이다. 산에서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던 초동들이 스님을 보고 “저 중봐라, 이상하다”며 웃었다. 그때 스님의 행색은 머리는 깎았으되 수염은 길렀으며 맨발에 한손에는 담뱃대를 잡고, 다른 손에는 떡과 과자가 든 자루를 둘러메고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에 스님이 되물었다.

“아이들아, 나를 알겠느냐?”

아이들이 “저희들은 스님을 알지 못합니다”고 답하자 스님은 “그러면 나를 보느냐”고 물었다.

“예, 지금 스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놈들아 나를 알지 못한다하면서 나를 어찌 본다고 하느냐?”

스님은 차고 있던 주장자를 내어주며 이르길 “얘들아, 누구든지 이 막대기로 나를 한번 때려봐라, 만약 너희들이 나를 제대로 때리기만 한다면 수고한 대가로 이 자루에 든 과자와 돈을 다 주마”라고 말했다.그 가운데 한 영리한 아이가 나와 “스님, 그게 정말입니까?”하며 스님이 내주는 주장자를 받아 쥐고 힘껏 후려쳤다.하지만 스님은 계속 아이들을 보고 “때려봐라, 때려봐라”고 말했다.

스님은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때리지 못했느니라. 만약 때렸다면 부처도 때리고, 또 조사도 때리고, 또 세세 제불과 역대 조사 내지 천하 노화상을 한 방망이로 때려 갈길 것이니라”고 말했다. 이에 초동들은 “스님을 아무리 때려도 때리지 못했다고 하니 과자와 금전을 준다고 하는 것은 모두 거짓 아닙니까?”라며 항의했다.

스님은 껄껄 웃으며 “여기 있다. 그럼 가져가거라”하며 돈과 과자를 내주고 마정령을 넘어가며 노래를 한 곡조 읊었다.온 세상 혼탁하나 나 홀로 깨었어라. 우거진 수풀 아래 남은 해를 보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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