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8호 5월 16일]

조주 스님은 대왕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마중하지 않고, 손으로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알겠습니까?” 대왕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조주 스님이 말했다.
“저는 어릴 때 출가하여 지금은 완전히 늙어 버렸습니다. 손님을 보고도 선상에서 내려올 힘조차 없습니다.”

師見大王入院不起 以手自拍膝云 會麽
大王云不會
師云 自小出家今巳老 見人無力下禪床

 

사전에 아무런 행동이나 말도 없이 선사가 대뜸 “알겠는가?” 하고 묻는 이 질문은 상승 법문이다. 부처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고, 오묘한 도를 들어내 보인 것이며,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을 높은 단계로 이끄는 선지식의 상승 가르침이다. 납자들은 이 한 마디에서 다 털어내 버리고 모든 부처와 조사가 간 길을 가야 한다.
선사가 알겠는가하고 물어보면, 어떤 사람은 바로 알고 ‘뜻이 너무 크다’하고 말하거나, 혹 ‘나를 속이지 말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바로 박차고 나가버린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거나, 혹은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설사 내방자가 모른다 해도 선사가 ‘알겠습니까?’ 하고 말했을 때 이미 도를 보인 것이므로 그가 국왕이라면 국왕의 은혜에 보답한 것이 된다.
조주선사는 110세의 노승이 되어 선상에서 내려가 왕을 영접하지 못하는 대신 상승 법문‘알겠습니까?’를 선물하고, 곧이어 왕에게 예의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한 것이다.

학승이 물었다.
“무엇이 충언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쇠방망이를 먹는 것과 같아.”

問 如何是忠言
師云 喫鐵棒

지혜와 덕이 부족한 왕이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가 어지럽다. 전생에 어쩌다 복을 약간 지은 것이 있는 자는 행동과 생각이 잘못되어도 한동안 승승장구한다. 왕은 그의 단점을 보지 못하고 가까이 둔다. 전생에 책을 읽거나, 수행만 열심히 한 자는 지혜는 갖추었지만 등용하지는 못한다.
지혜로운 자는 왕에게 나라의 일이 잘못되어간다고 아무리 말해주어도, 왕은 충언을 듣고 있는 것이 마치 쇠방망이를 삼키는 것과 같이 곤욕스러울 뿐이다. 충언에 응할 뜻이 전혀 없다. 충신은 뜻을 굽히지 않고 상소를 올리지만 소용없다. 어떤 경우는 왕이 분노하여 수없이 상소하는 충신에게 되레 벌을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나라는 곧 멸망하고 말았다. 왕이나 신하나 지혜와 덕, 이 둘을 다 겸비해야 한다. 그 누구도 마찬가지다. 지혜나 덕 중에 한 가지만 갖추면 새가 한쪽 날개로 비상하려고 퍼덕이는 것과 같을 뿐이다.

학승이 물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어떤 것에도 마음이 얽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 항상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사념하도록 해라.”

問 從上至今不忘底人如何
師云 不可得繫心 常思念十方一切佛

 

선사들은 래방자에게 대뜸 말한다. “그대는 이미 부처이다. 더 이상 중생으로 살지 말고 붓다로 살아가라. 지금 즉시 깨어나라. 만물은 부처의 분신이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은 깨어나지 못하지만 그대는 깨어날 수 있다. 주변을 돌아보라. 그대가 만든 세상이다. 모든 법은 그대가 만든 법이다. 그대는 원래 부처이다. 그대는 원래 행복하다. 만물을 향유하라.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말라. 불조(佛祖)도 넘어가서 천상천하에 홀로 우뚝 서라. 그대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분신이다. 그것을 항상 잊지 말라.”
불조가 아니면 누가 이것을 가르쳐주겠는가? 그러하니 지구상에서 오로지 불조만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불조는 만대에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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