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사(袈裟)의 유래(由來)

아함부(阿含部)의 <마하박가> 8편에 보면 조각을 이어 만든 가사(袈裟)의 유래에 대한 글이 적혀있다. 당시에 비구스님들은 조각을 하나도 이어 붙이지 않은 상아색의 가사를 입었다 한다. 재가자들은 그 걸 보고 마치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장자와 같다고 비난했다.

제자들이 이를 부처님께 보고 드리자 부처님은 ‘조각을 잇지 않은 가사를 입어서는 안 되며, 누구든 조각을 잇지 않은 가사를 입는 비구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당시에 부처님께서는 라자가하에 계시다가 닥키나기리로 가는 도중에 마가다국의 들판을 지나게 되었다.

논들은 줄이 질서 정연하고, 선과 논둑이 나란하며, 네모나게 잘 배열되어 있었다. 부처님은 이를 보시고 아난다 존자에게 물으셨다. “아난다여, 저 줄과 논둑과 선이 질서정연하고, 네모나게 배열되어있는 것이 보이느냐?” “예, 부처님!” “아난다, 너는 이 들판의 모습과 같은 비구들의 가사를 만들 수 있겠느냐?” “예, 부처님”

그리하여 아난다는 조각을 이은 가사를 만들어 부처님께 바쳤다. 그 가사를 본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의 지혜를 찬탄했고 가사의 조각을 잇고 솔기를 만들어 잘라진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것을 찬탄하셨고 삼의(三衣)를 모두 기워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조각을 이은 가사를 만들라 분부하신 이유는 같은 아함부의 <쭐라박가> 11장에 보면 그 일화가 상세히 나온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아난다 존자(尊者)는 꼬삼비의 어느 나무 밑에서 좌선에 들었다. 그 곳은 꼬삼비의 우데나 왕 소유의 숲에서 가까웠다.

그 때 후궁들이 왕과 함께 산책 나왔다가 아난다존자의 설법을 듣고 환희에 벅차 500벌의 가사를 존자에게 공양했다. 500벌이나 되는 가사를 보시하였다는 후궁들의 말을 듣고 우데나왕은 존자를 비난하면서 그 사문은 장사를 하려는가 아니면 상점을 차리려나라고 비웃는다.

그리하여, 우데나왕은 아난다 존자를 방문해 예를 갖추고 묻는다.
“존자여, 그 많은 법복으로 무엇을 하렵니까?”
“낡은 법복을 가진 비구들에게 주렵니다.”
“그럼, 낡은 법복은 어쩌렵니까?”
“평상시에 입는 법복을 만들려 합니다.”
“그럼, 낡은 평상복은 어쩌렵니까?”“하의(下衣)를 만들려 합니다.”
“그럼, 원래 낡은 하의는 어쩌렵니까?”
“이불덮개를 만들렵니다.”
“원래 덮개는 어쩌렵니까?”
“바닥 깔개를 만들렵니다.”
“낡은 바닥 깔개는 어쩌렵니까?”
“문간에 까는 신발 닦개를 만들겁니다.”
“그럼, 낡은 신발 닦개는 어쩌렵니까?”
“걸레를 만들겁니다.”
“낡은 걸레는 무얼 만들겁니까?”
“잘게 잘라서 진흙에 반죽하여 바닥에 바를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왕은 석가의 아들들인 이 사문(沙門)들은 질서정연하게 순서대로 모든 것을 아껴 이용하고 하나도 낭비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500벌의 승복을 더 공양하여 모두 1000벌의 승복을 공양하였다.
승가의 소유물은 모두 청빈과 검소를 근간으로 소비되어야 한다. 그런데 부유해진 한국의 승가에서는 과소비가 미덕인 듯한 경향이 짙어져 가고 있다. 부처님의 혜명(慧命)은 부처님의 생활기준을 근간으로 해야 이어진다. 근검은 곧 수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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