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탓하기 이전에 자기부터 돌아볼 줄 알아야

▲ 삽화 최주현

마음을 잘 쓰고 싶은데…

문) 이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마음공부도 잘하고 싶은데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습니다. 마음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답) 우리가 이 인간으로 살면서도 마음을 잘 쓴다는 것이 여러 가지를 포함해섭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겪어 보니깐 내가 그걸 너무도 잘 알겠어요. 이거는 밖으로 보고 들이는 것도 자기가 하는 거고 안에서 나오는 것도 자기가 나오는 건데 그거를 분리해서 자꾸 생각들을 한단 말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도 ‘주인공 속에서 나오는 것이 주인공에서 나오는 거고 내가 생각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현실에 생각하고 가는 것도 그놈에서 나오는 거요, 안에서 나오는 것도 그놈이 하는 겁니다. 즉, 들이고 내는 게 다 그놈이 하는 거란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 안에서 스스로 나오는 그 참자기의 뜻이 아니라면 이 겉으로 보고 사량으로 돌리는 게 어두워요. 요렇게 요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요거는 이렇게 이렇게 할 생각이 돌지 않는 거죠. 이게 돌질 않으니 어떡합니까, 글쎄? 하나하나 이건 말로 이루장창 할 수가 없는데. “아이, 스님.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할 텐데 이렇게 이렇게 됐으니 어떡합니까?” 이러면, 내가 생각할 때는 자기가 분명코 생각을 해서 그렇게 한 건데 생각이 엉뚱나가게 돌아가고 있어요, 생각 자체가. 그 사람으로 돼 가지고 생각이 어떻게 그렇게 엉뚱나가게 생각이 안 나느냔 말입니다. 간단하게 해치울 것도, 그것이 바로 두 놈이 아니고 그 한 놈도 없다고 만날 말을 하는데도 아이, 그걸 두 놈으로 갈라놓고선 이건 사량이고 이거는 내 주인공이 하는 거라고 이렇게 생각을 한다 이겁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하는 것도 없고 내가 사량 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 도리를 알아야 사방천이 밝아서, 참 스스로서 그 오온이 밝아서, 칠보가 정말 가득 차 있어서 내가 그대로 자유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그렇지 못하고는 항상 끄달린단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남편이 일을 갔는데, 석 달 기한을 하고 일을 갔다 이겁니다. 그런데 거길 가는데 “스님, 거길 가니깐요, 애 아빠가 그냥 먹질 못하고 일은 고되고 그래서 아주 그냥 뭐 다 죽게 생겼어요.” 그런단 말입니다. “그래? 그래서 그냥 갔던가?” 그러니까 “네.” 이런단 말입니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어딨습니까. 여자로서, 아내로서 남편에게, 자식이든지 남편이든지 부모든지 그걸 불문에 붙이고 말입니다. 그래, 가는데 먹지 못하는 거 번연히 알면서, 일 고되다는 거 번연히 알면서, 지금 굶어 죽는 거 아니고 벌어다가 그래도 예금통장에 조금이라도 넣고 사는 사람이, 그래 맨손으로 그냥 가요? 아, 생각해 보세요, 글쎄. 아니, 왜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는지 말입니다. 고런 일에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간다면 다른 일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이 통이 똥그랗게 된 통은 똥그란 뚜껑이라야 맞고, 네모가 난 통은 네모 뚜껑이 맞는다. 그것이 맞지 않는 거라면 이건 세세생생에, 즉 말하자면 지옥이니라.” 이상에 맞지 않는 부부라면은 이건 지옥이니라 이랬습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업을 짓는 거는 더 말할 수 없거니와 돌부처도 돌아앉게 된다 이 소립니다. 이 업 짓는 것도 자기네들이 맞지 않게 해 놓고 자기네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경험을 못하고, 경험을 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물에도 들어가 보고 구덩이에도 들어가 봐야 그 깊이를 아는데, 그건 여기저기 다 다니면서 자기가 체험을 해 보지 않는 반면에서 나오는 어두운 마음이거든요. 밝은 마음이라는 것은 자기가 체험해 보는 데서 무지한 밝음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실패를 해 가면서 연구를 거듭거듭 해 봐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 공부를 하면서도 자기가 자기를 뜻을 보려고 테스트하는 건 모르고 어떠한 게 나타나도 그거 또 둘로 보는 겁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난 거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 자리에 다시 놓으면 될 것을, 이걸 둘로 보니깐 온갖 집안이 형편없이 그 자기의 마음의 분신이 이것저것 생겨 가지고는 온통 집안이 우환이 끓는 겁니다. 그러니 모든 걸 태워 버리고 모든 것을, 우환을, 가난 또는 병고, 인연, 유전, 업보 이런 것을 모두 떼 버리려면 나 자체가 없어야 됩니다. 붙을 게 없어야 돼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나 자체도 없고 너 자체도 없고 중생 부처도 없고, 이것은 이름이 부처요 이름이 중생일 뿐이다.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그 내면의 진의를 몰라서 이거는 무지하게 그런 문제가 있어 가지고는 그냥 끄달리고 돌아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물질적인 거를 가지고 야, 이건 불쌍하다, 이거는 뭐가 어떻고 너는 나쁘고 너는 좋고…, 이렇게 따지지 말라 이겁니다. 모든 거는 잘되고 못되는 건 한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한생각에. 잘되고 못되는 게 한생각에 달려 있다 하는 것은 잘되고 못되는 것을 다 놔버린 상태에서 그대로 한생각으로 굴려서, ‘아하! 너는 아주 불쌍하니까 그냥 내내 너는 사람으로서 틀림없게 살고 또 성공해라. 그리고 이 뜻을 잊지 마라.’ 하면은 그냥 그대로, 그대로 가는 거거든요, 그게. 그대로 가는 건데, 그런 무주상 보시가 부처님한테 있고 보살한텐 있는 건데, 야! 이놈의 이것이 어떻고 저것이 어떻고 이런다면 무주상 보시는 벌써 없어지고 마는 거예요. 벌써 이게 가로 걸려요. 이 물질이 벌써 생각에서 가로 걸려서 그렇게 길이 밝혀지질 않게 되죠.

이 물질이라는 거, 예를 들면 여러분은 자식이 지금 금방 죽을까 봐 겁나고 공부 못할까 봐 겁나고 그냥 뭐 금방 야단이지마는, 자식도 나도 다 없는 겁니다.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하는 것도 그 자체 내에서, 다 오고 가는 데서 자기 꺼지는 불은 꺼지고 생기는 불은 생기는 거지 뭘 그럽니까. 자식들이 고만고만해서 이 자식들을 누구한테 맡길 데도 없고 그런데 자기가 죽는다면 그 자식들을 길러 놓고 죽는다고 할 겁니다. 그러나 죽을 때는 그 자식들 다 내버리고 그냥 어쩔 수 없이 죽는 겁니다. 그런데 죽을 때 난 저 자식들 길러 놓고 죽는다고 하고 죽나요? 못하죠, 죽는 길에는. 이렇게도 죽고 저렇게도 죽고 그러는데 뭐 야단들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 금방 내 자식 죽는다, 내가 죽는다, 내 가족이 죽는다 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라야만이 죽지 않고 오히려 밝아집니다. 아시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문) 우연히 불교 방송을 통해서 스님 법문을 접하게 되면서 마음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오니 저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가르침 주신다면 열심히 한번 해 보겠습니다.

답) 이 우주의 근본은 인간의 마음의 근본에 직결이 돼 있고 이 세상만사의 모든 살림살이는 다 연결이 돼 있습니다. 내 마음에 연결이 돼 있다 이겁니다. 그렇게 직결이 돼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부터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 깊은 속에 여러분의 몸을 끌고 다니는 마음의 주인이 있습니다. 직결이 돼 있기 때문에 나의 그 마음의 주인, 주인공, 이 자체가 모든 일체를 다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의 그 주인공은 항상 일체 만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여러분이 살림살이 하는 모든 것을다 거기다가, 내 마음 주인공에 맡기고 ‘모든 것은 거기서만이 이끌어 줄 수 있다. 거기서만이 나를 물리가 터지게 해 줄 수 있다. 거기서만이 병고를 낫게 해 줄 수 있다. 모든 애고를 면해 줄 수 있다.’ 하고 거기다가 모든 거를 한군데 맡기고 생활하시는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해야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체부터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각자 그 몸뚱이를 끌고 가는 운전수와 같은 겁니다. 운전수가 차를 끌고 가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인간이라는 것은 마음이 체가 없어서 광대무변하면서도 이 세상 전체 우주를 그 마음에 담아도 손색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이 인간의 모든 물질적인 현상은 바람과 흙과 물, 불, 이 네 가지가 모두 여러분의 바탕이 돼 있습니다. 그렇게 네 가지가 바탕이 돼 있기 때문에 광력이나 전력, 자력, 통신력, 이 자체가 바로 여러분한테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광대한 법이 여러분 앞에 주어져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주인공에 모든 것을 맡겨 놓아야 합니다. 즉 말하자면 여러분이 과거에,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컴퓨터에 입력된 것이 현실에 나오듯이, 현실에 모든 것이 그렇게 나오기 때문에 현 생활 속에서 그렇게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 현실에 입력이 돼서 나오는 것처럼 이 생활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한테, 자기 마음 깊은 정신세계의 주인공한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살아나갈 때에, 그 바로 컴퓨터에 입력됐던 것이 없어지고 되입력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주인공에다 맡겨 놓으면 되입력을 하는 것입니다. 되입력을 함으로써 앞서 입력된 것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니라 이 영계성이라든가 유전성, 세균성, 업보성, 이 모두가 다 과거로부터 현상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거기다가 입력을 다시 되할 때, 주인공에 다시 입력을 할 때 앞서의 모든 것이 없어지면서 현실에서도 모든 것을 타파해 나갈 수 있는 여러분의 능력을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주인공이라 하는 것은 영원한 근본이 되고, 마음을 내는 거며, 육신을 움죽거리는 거며, 그 삼합이 한데 합쳐서 작용하고 돌아가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주인공입니다. 지금 어느 종교를 막론해 놓고 타의에서 구하는 즉, 미신의 법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모두 내 자신의 참마음의 주인공을 믿고 모든 것을 거기다가, 어떠한 애고든지 거기다가 맡겨 놓고 거기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셨을 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의 정신계의 참나, 자성 자신은 이 우주와 이 세상과도 전부 연결이 돼서 직결이 돼 있습니다. 그러니 타의에서, 바깥에서, 즉 "주여!" "부처님이여!" "하나님이여!" 하고 바깥으로 찾지 말고 안으로, 내 마음 안으로 내 자신의 주인공, 그것을 믿고 여러분이 작용을 할 때 100% 자유인이 될 것입니다. 열심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신적으로 불안합니다
문) 제가 정신적으로 좀 불안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두렵고 직장생활도 힘들어서 그만두었습니다. 살아가기가 힘이 듭니다. 이런 저에게 힘을 좀 주십시오.

답) 여러분이 길을 가다 엎드러지면 누가 일어납니까? 엎드러지는 놈은 누구고 일어나는 놈은 누굽니까? 자기가 엎드러졌으면 자기가 일어나야죠? 그렇기 때문에 이열치열이란 말이 있어요. 병이라는 건 몸만 아파서 병이 아니에요. 마음의 병도 병입니다. 그것도 결국은 자기가 있기 때문에 자기한테서 나온 거죠. 자기한테서 나온 거니까 자기한테다 맡겨야죠. 기계도 조립한 사람이 잘 고치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한테서 나온 거니까 자기한테다가 맡겨라 이겁니다. 맡겨 놓고 ‘어, 거기서 나온 거니까 주인공! 내 주인공에서 나온 거니까 내 주인공밖에 고칠 수 없구나. 너 알아서 해.’ 하고선 맡겨 놓고 관해 본다. 지켜본다 이겁니다. 그런다면 그때에 바깥으로 어떠한 문제가 나올 때에 자기가 실험할 수 있다 이겁니다.

자기한테도 영원한 자기의 불성의 그 근본이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는 자기 주인공에서 모든 가정을 이끌어나갈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 아픈 거나 가정에 어떤 우환이나 가난한 거나 또는 인과응보로 인해서 오는 거나, 유전성으로 오는 거나, 영계성으로 오는 거나, 모든 일체가 다 그렇게 해서 용광로에 헌쇠들을 넣듯이 넣는다면 자동적으로 새 쇠가 생산이 돼서 나가듯이, 우리가 용광로에 넣는 작업만 한다면 새로 생산돼서 이름을 가지고 다시 나가는 건 걱정 안 해도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좋은 생각으로서 ‘거기에서밖에는 해결할 수 없다.’ 하고 믿었을 때 바로 보이지 않은 전력이 보이지 않게 들어오듯이 내 마음의 참 법성신의 그 뜻이 바로 돌아서 나한테 턱 나타나게 되고 그 기쁨이란 말할 수도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고런 조그마한 걸로부터 자기가 한번 던져보고 실험하고 이렇게 하다 보면 자기가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 깊은 속에
여러분의 몸을 끌고 다니는 마음의 주인이 있습니다.
그 마음의 주인, 주인공 그 자체가
모든 일체를 다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떠한 문제든지 거기다 맡겨 놓고
거기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셨을 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쁜 짓을 보면 참지 못해 괴로워요
문) 공부인이라면 좋다 나쁘다는 분별도 놔야 하는데 상대방이 정말 나쁜 짓을 할 때는 참지를 못하는 성격이라 스스로 괴롭습니다. 그냥 봐주는 마음이 잘 되질 않으니 어쩌면 좋을까요?

답)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사시면서 나쁘다 좋다 하기 이전에, 나쁘다는 생각이 들면 나쁘지 않게 생각을 하게 하는 것도 주인공, 너 아니냐는 거죠. 또 좋게 했으면 ‘아이휴, 감사하구나.’ 이런 뜻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어떠한 일이 과거로부터 인과로서 닥친다 하더라도 ‘음, 과거에 입력이 된 거고 입력이 된 것도 네가 한 거니까, 입력을 없애는 것도 네가 하는 거다.’ 하고 다 맡겨 놓고 ‘주인공! 당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을 해주는 것도 너밖엔 없다.’ 하고 거기다, 생활 속에서 용도에 따라서 괴로움이 있다 할지라도 ‘괴로움을 준 놈도 너니까 안 주게 하는 것도 너다.’ 하고 놓았을 때, 상대에서 모두 나쁜 묘략을 하고 들어올 때도 그 사람을 탓하기 이전에 나를 한번 돌아다보고 나에게 모든 것을 거기다 맡겨 놓고, ‘그 사람의 주인공이나 내 주인공이 둘이 아니니 당신밖에는 해결할 수 없어.’ 할 때에 그 상대방의 마음이 스스로 녹아져 버리고 내 마음과 같이 착해지고 의리가 있게 되고 서로서로 사랑할 수 있는, 그런마음이 싹트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언제나 평등한 마음으로서 웃으면서 모든 사람들을 대하고, 상대를 대하고 아무리 마구니라 할지라도 마구니라는 생각을 말고 모자란다는 생각을 마세요. 모든 것은 내 모자랄 때 내 모습이요, 내가 나쁜 일을 할 때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세요. 지금만 내가 살았던 게 아닌 까닭이죠. 그럼으로써 모든 잘못, 가정에서도 자식이나 모든 형제나 잘못됨이 있으면 모든 건 내 탓으로 돌리고 부드럽게 말을 해 주고 주인공에다 맡겨 놓고 그 주인공에서밖에는 해결 못한다는 그런 믿음을 진실하게 가질 수 있어야 형제하고도 자식하고도 잘 똑바로 나갈 수 있고 공부도 머리가 트여서 잘될 수 있고, 또 뿌리를 돋우어 주니까 뿌리가 썩지 않으니 가장구가 썩지 않을 것이고, 열매가 크게 열려서 만 가지 맛을 내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무르익어서 말입니다. 그러니 모든 문제가 바로 자기한테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누구를 나무라기 이전에 나부터 돌아다볼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몸이 괴로우니 공부도 달아나가요

문) 몸이 몹시 괴로울 때는 그동안 공부했던 것도 다 달아나는 것 같아 제 믿음이 의심스럽습니다. 참된 공부인의 자세라면 이 아픔도 공부재료로 삼을 수 있어야 되겠지요?

답) 우리가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하고 아주 패기 있게 나갈 수 있는 그런 영력이 생깁니다. 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결집해서 회전을 시키는 데는 전력이 있고 가설이 다 돼 있어요. 그러면 용도대로 끌어 쓰는 건 자기에게 달린 겁니다. 그러니 그냥 용도에 따라서 전력을 끌어 쓰라 이겁니다. 그러면 몸에 지금 병 증세가 있다 하더라도 한순간에 이 생명체들이 전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따라 주거든요.
그러니까 파워를 일으켰다 할지라도, 만약에 간염이다 하더라도, 간염이라면 파워를 일으켜서 한 부분이 마비가 돼서 들어가는 형상이거든요. 그러나 파워를 일으키기 이전의 선장이 이 한마음으로 돌리는 데는 영락없이 파워 일으켰던 게 다시 되살아나요. 되살아나니까 간염이라는 건 한순간에 없어지는 겁니다. 의심할 것도 없어요. 그거는 벌써 자기 자신을 못 믿는 겁니다. 믿지 못하고 그러니까 놓지 못하고, 놓지 못하니까 물러서고 이런 거 아닙니까. 수억겁 광년을 거쳐 오면서 살던 그 습에 의해서 믿지 못하는 거죠. 믿고 놔야지 믿지 못하면 놓질 못해요. 놓지 못하는 까닭에 한마음으로 돌아가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근본자리를 철저하게 믿고 놓을 수 있도록 열심히 정진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스승을 찾아야 하는지

문) 이 마음공부를 하려면 스승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스승을 찾아야 하는지요?

답) 알고 본다면 스승은 고정되게 하나만 스승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분도 다 스승입니다. 왜냐하면 잘된 거든 못된 거든 다 여러분은 자질이 있으니까요. 하다못해 돌 하나를 보더라도 이거를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다. 왜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모두 보고, 나무가 자라는 것도 보고 또 죽는 것도 보고 고목도 보고 잘 자라는 것도 보고, 사람 못사는 것도 보고 잘사는 것도 보고 이렇게 보다 보니깐 내 스승 아닌 게 하나도 없어요.
난 여러분이 다 내 스승인데요? 여러분은 또 나를 보고서 스승이라고 그러겠지만 저는 여러분을 보고 스승이라고 합니다. 이 모두가 스승 아닌 게 없고 또 부처님 공안 아닌 게 하나도 없고, 이러고 이러다 보니까 우리가 마음 하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또 스승으로 할 수가 있는 거거든요. 어떤 때는 거지로서, 아예 미친 사람이 돼서 길바닥으로 뛰어다니는 것도 봤습니다만, 그걸 보고도 난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그걸 배우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러니 스승 아닌 게 하나도 없는데 뭘 따로 찾습니까. 
 

(887호 5월 9일자 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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