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과 만난 사람들-나석정 거사

다리는 물이나 계곡을 건너기 위해 설치한 구조물이다. 우리 선조들이 만든 옛 다리는 재료와 구조 그리고 형식에 따라 그 유형이 여러 가지인데, 주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였으며, 형편에 맞는 적당한 구조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리를 재료에 따라서 구분하면 흙다리, 나무다리, 돌다리 등으로 나눌 수 있고, 구조와 형식에 따라 구분하면 섶다리, 외나무다리, 징검다리, 널다리, 매단다리, 배다리, 무지개다리, 누다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과거에는 기술력이 부족하고 좋은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간단한 구조 그리고 심미성보다는 기능성을 고려하여 만든 섶다리, 외나무다리, 징검다리 등을 설치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이러한 다리들은 여름철에 큰물이 나면 일시에 유실되어 한동안 통행이 되지 않았고, 다리를 다시 설치하여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기술력이 좋아지고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게 되면서 기능성과 심미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다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이곳저곳에 남아있는 다리를 통해서 살펴보면 한국인의 미적 감각과 기술적 우월성이 다리에 입력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옛 다리는 일본이나 중국의 다리와는 형식적 측면에서 같지 않았으며, 나름대로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 한국적 경관을 만드는데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중국의 경우 정원에 설치한 다리를 보면 무지개다리나 널다리 형식이 많은데, 널다리는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돌판을 덮어 만든 평교로, 대부분 꺾인 다리의 형식으로 설치되어있다. 또한, 무지개다리는 우리나라의 무지개다리가 홍예를 틀고 그 상부를 평지로 만드는 것과는 달리 다리 상부까지도 무지개모양으로 둥글게 하여 특징적 경관을 조성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목교가 많은데,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목판을 덮어 만든 널다리 형식이 많으며, 조그마한 다리의 경우에는 통 돌을 깎아 만든 경우도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경우 조경공간에 조성한 방형의 못에는 둥근 섬을 만들어 음양오행적 개념을 부여하기는 하되 다리를 놓는 것은 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섬은 저 멀리 이상적 세계로서 사람이 쉽사리 가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던 듯하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섬과 더불어 다리를 만드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것을 보면 한중일 삼국의 조경원리는 그 나름대로 차별화되는 원리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다리 놓는 공덕을 꽤나 중요하게 여겼다. 다리를 놓는 것이 그만치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특히 사찰 가는 길에 다리를 놓아 건너게 해주는 것은 그 공덕이 더욱 큰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른바 차안의 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로 넘겨주는 월천공덕(越川功德)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사찰 가는 길에 놓인 다리에는 여러 가지 사연들이 담겨있어 오래전에 살던 사람들의 신앙심을 볼 수 있다.
사찰의 다리는 여타공간에서 만든 다리와 달리 상징성이 매우 중요한 디자인 조건이었다. 일반적으로 산지사찰의 경우에는 사역의 좌측 혹은 우측으로 계류가 흘러내려와 사역 전면을 통해서 흘러내려가는 형식을 가지는데, 이 경우 계류너머에 일주문을 세우고 그곳에서부터 성의 영역이 시작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수미산세계의 구조와 연관된 것으로, 사찰전면의 계류는 향수해로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때 일주문 전면을 흐르는 계류에는 다리를 놓고 도피안교(到彼岸橋), 해탈교(解脫橋) 등의 이름을 붙인다. 속세를 떠나 불국토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찰은 깊은 산속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름다운 다리도 많이 만들어졌다.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다리의 유형을 보면,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섶다리, 외나무다리, 징검다리와 비교적 구조적으로 안정된 널다리 그리고 구조적으로는 복잡하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무지개다리와 누다리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였다.
섶다리는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통나무를 얹은 후 잔가지를 덮고 흙을 덮어 만드는데 현재 아산 외암리마을 들어가는 입구나 봉평장터 앞 섶다리, 무주 남대천 섶다리가 남아있으나 사찰주변에서는 남아있는 섶다리가 많지 않다.
외나무다리는 굵은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폭이 넓지 않은 계곡이나 연못에 걸쳐두고 사람들을 지나게 만드는 것인데, 난간을 세우기 힘들어 간단하게 건널 수 있는 용도로만 사용한다. 서산 개심사 연못에 걸어놓은 외나무다리는 비록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외나무다리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징검다리는 얕게 흐르는 물을 건널 수 있도록 자연석을 듬성듬성 놓아 다리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인데, 큰물이 나면 물에 쓸려 내려가 다시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간단히 설치할 수 있어서 마을이나 사찰 들어가는 입구에 많이 만들어졌다.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순천 송광사에서 계담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보위에 놓은 징검다리는 그나마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징검다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널다리는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넓적한 판재를 놓아 만든 다리이다. 널다리는 나무로 만든 보다리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점차 교각과 판재가 돌로 변화되었다. 함평 영산강 고막천을 동서로 가로질러 놓은 일명 떡다리는 길이가 20m이며, 폭은 3.5m, 높이는 2.5m로, 5줄의 교각에 멍엣돌을 올리고, 상판은 장방형의 판석을 우물마루 형식으로 결구했다. 이런 방식은 널다리의 원시형식인 목조 보다리의 구조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20년쯤 전에 부여의 백제사지에서 폭 2m의 배수로 바닥에 길이 2m, 직격 20~30cm의 자연석 받침대 4개가 1.9m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고 각 받침대에 목재교각이 세워진 다리유구가 발견된 적이 있었는데, 이 다리는 발견된 구조와 형식으로 볼 때 목조 보다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단의 견해로는 이 다리가 567년쯤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일찍부터 선진적 구조를 가진 다리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매단다리는 최근에 많이 볼 수 있는 진보된 현수교의 원시형식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기술력이 부족하여 지금과 같은 현수교는 만들지 못했지만 길을 내기 어려운 절벽과 절벽 사이에 줄이나 쇠사슬을 가로질러 줄의 지탱력으로 한사람이 간신히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매단다리이다.
배다리는 배를 일정한 간격으로 벌려놓고 그 위에 가로목을 질러 놓은 다음 널을 깔아 바닥을 만든 다리로 부교 혹은 주교(舟橋)라고 하는데, 깊고 폭이 넓은 강가나 바다를 건너기 위해 부력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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