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스님 수행도량 순례법회-2.산청 대원사
도량에 들어선 순례단은 이곳 저곳을 둘러보느라 분주했다.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584)때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다. 자장율사가 부처님 사리를 모신 대원사 다층석탑(보물 제1112호)이 있다. 석탑 앞에는 사리전이 있는데, 성철 스님이 재가자의 몸으로 40여 일만에 ‘동정일여(動靜一如)’를 이룬 자리다. 그 땐 당우의 이름이 탑전이었다. 규모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다. 10년 전 불사를 통해 규모가 커졌고, 지금은 비구니 선원이다. 대원사는 잦은 전란과 사건에 휩쓸려 소실과 불사를 거듭했다. 1955년 이후 비구니 법일(法一) 스님의 중창불사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증도가〉는 대표적인 선 수행 지침서다. 원택 스님이 〈증도가〉의 첫 구절을 읽었다. “1.君不見,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2. 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 배움이 끊어진 할일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하지 않으니. 3. 無明實性 卽佛性 幻化空身 卽法身, 무명의 참 성품이 곧 불성이요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이로다.…” 〈증도가〉를 읽어 내려가던 성철 스님은 무릎을 쳤다. “아, 이런 공부가 있었구나.” 충격이었고 기쁨이었다. 어떤 공부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해결의 열쇠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리가 ‘불교’에 있음을 확신하게 된 스님은 대원사 탑전에 방을 얻어 그 날로 정진에 들어갔다. 스승도 없이 스스로 ‘무’자 화두를 든 스무 살 청년은 42일 만에 깨달음을 이룬다. 스님은 그렇게 대원사 탑전에서 그 해 겨울을 났다.
원택 스님의 법문이 끝나고 순례단은 성철 스님의 법어를 독송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팔만대장경에 담겨 있는 만큼 불교를 알려면 팔만대장경을 다 봐야 할 터인데 누가 그 많은 팔만대장경을 다 보겠습니까. 팔만대장경이 그토록 방대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마음 심(心)’자 한 자에 있습니다. 팔만대장경 전체를 똘똘 뭉치면 ‘심’자 한 자 위에 서 있어서, 이 한 자의 문제만 옳게 해결하면 일체의 불교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일체 만법을 다 통찰할 수 있고 삼세제불(三世諸佛)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의 눈을 뜨자고 하는 것입니다.….” 〈1981년 음 6월 15일. 해인총림 방장 대중법어와 ‘백일법문’ 중에서 화두법문 정리 분〉 스님의 법문이 지리산 자락으로 퍼졌다. 각지에서 새벽잠을 물리치고 먼 길을 달려온 순례단이다. 마음 심(心) 자 한 자를 읽기 위해 먼 길을 온 것이다. 스님의 발자국 위에서 읽는 스님의 법어가 먼 길을 달려온 고단함을 씻어냈다.
원택 스님과 순례단은 석탑을 돌며 성철 스님의 첫걸음을 조용히 더듬었다. 스님은 24세 때, 범술 스님으로부터 해인사로 갈 것을 권유받는다. 제 3차 순례는 5월 26일 합천 해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