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찰 만들기-우물

경복궁 향원지의 수원으로 스이는 열상진원은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주목된다.
우물(井)은 오목한 구멍이란 뜻을 가진 움(穴)에 물(水)이 합성된 말이다. 오목하게 판 구명에서 나온 물이란 뜻의 ‘움물’이 변해 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몇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물은 땅 속 일정한 깊이에 있는 물을 얻기 위해 인공적으로 파서 만든 시설이다. 지표면까지 수맥이 노출되어 물줄기가 솟아나는 샘과는 달리 우물은 지표면 하부에 형성된 지하수맥의 물을 끌어올리는 물구멍인 것이다. 과거에는 우물을 파려면 우선 물이 있을법한 곳을 찾아내는 혜안이 있어야 했으며, 사람의 힘으로 땅을 파내려가서 물을 확인한 다음 벽체를 돌로 쌓아 안정시키는 일련의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인력으로 땅을 파내고 벽면에 돌을 촘촘히 붙이는 작업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욱이 상부에 만든 우물틀은 독특한 디자인을 통해 만들어진 석조예술작품인데, 이것을 보면 우물은 우리의 뛰어난 과학기술과 창의적 예술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우물의 형태는 원형, 사각형, 팔각형, 타원형 등 다채로우며, 구조는 우물틀을 높게 쌓는 높이쌓기방식과 지면과 거의 동일하게 만드는 낮게쌓기방식이 있다. 우물벽은 돌로 자연석을 이용해서 쌓는 것이 일반적이며, 우물바닥은 원지반을 그대로 두기도 하지만 자갈을 깔아놓은 것도 있다. 우물의 물을 긷는 도구로는 보통 두레박을 사용하는데, 우물 깊이가 깊지 않은 경우에는 두레박에 줄을 달아 사람이 끌어올리게 되나, 우물이 깊거나 편하게 물을 긷기 위해 도르레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농경전서』에는 길고와 녹로라는 물긷는 장치가 소개되어 있다. 길고는 수평저울와 같은 역학적 원리를 응용하여 두레박의 반대편에 돌을 매달아 물긷기를 용이하도록 만든 기구이며, 녹로는 고패(깃대 따위의 높은 곳에 기나 물건을 달아 올리고 내리기 위한 줄을 걸치는 작은 바퀴나 고리)라고도 하며 길고와 원리가 같으나 보다 진보된 기구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우물의 물을 긷는 그림이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을 보면 우리가 쓰던 길고와 같은 형식의 기구를 통해서 물을 길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우물을 만드는 일을 중요하게 취급하였으며, 자리를 잡고 우물을 디자인하는데 있어서도 정성을 들였다. 민가의 경우에는 우물을 만든 자리가 부엌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곳이 많았는데, 부엌과의 연관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좋은 물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우물을 파서 그 물을 이용하였다. 특히 우물의 수질을 제대로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우물에서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정하고 그것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우물가에 나무를 심는 것도 피했는데, 그것은 나뭇가지에 날짐승이 앉아 물을 더럽히거나 벌레가 물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사찰의 경우를 살펴보면 깊은 산속에 지어진 사찰에서는 석간수를 얻을 수 있는 장치로 샘을 조성한 곳이 많고, 평지에 지어진 평지형 사찰에는 우물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속에서는 굳이 우물을 파지 않더라도 좋은 물을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평지형 사찰에서는 땅속에 있는 물을 얻기 위해 우물을 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불교전래 초기 도심에 지어진 사찰들은 물을 얻기 위해 우물을 파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나말여초 사찰이 산지로 옮겨지어지면서부터는 석간수가 고이는 샘을 만들어 물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신라의 옛 수도 경주에는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신라시대의 우물들이 여러 개 발견된다. 그 가운데에서도 사찰에 만든 우물로는 분황사의 우물인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과 남간사지의 우물이 대표적이다. 분황사의 삼룡변어정은 우물틀을 화강석으로 높게 만든 높이쌓기형식을 가진 우물인데, 특이한 것은 우물틀 뿐만 아니라 지대석까지도 한 덩어리의 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물의 형태를 보면, 우물틀 외부는 팔각형으로 만들고 내부는 원형으로 만들어 매우 독특한 디자인수법을 적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팔정도와 원융의 진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 이 우물의 덮개부분은 없어지고 없으나 만들 당시에는 돌로 만든 덮개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간사지(南澗寺址)에 남아있는 석정(石井)은 남간사에서 사용하였다고 전해지는 우물이다. 남간사는 헌덕왕대 이전에 창건된 사찰인데, 우물 역시 창건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간사가 폐사된 이후 이 우물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남아있는 부재들을 통해서 이 우물의 형식을 살펴보면, 남간사 우물은 분황사 우물과는 달리 지면에서 높지 않게 우물틀을 만든 낮게쌓기방식의 우물로 하부 지대석에 해당되는 부분은 한 변의 길이가 1.47m 되는 정사각형이고 그 위로 원형의 우물틀을 올렸는데 하부의 지대석과 상부의 우물틀이 통돌로 만들어져있다. 우물틀은 2단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윗 단이 아랫단보다 좁게 만든 것으로 언뜻 보면 이중으로 된 테를 두른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만들 당시에는 우물틀 위에 팔각형으로 된 두 개의 돌판을 조합하여 덮개돌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물 옆에 놓인 덮개돌에 해당되는 부재를 보면, 덮개돌은 가운데 부분에 지름 약 25cm 정도의 구멍을 내어 그곳으로 물을 길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지금은 우물틀 위에 새로 만든 화강석 통을 얹어놓고 상부의 우물덮개는 설치하지 않아서 원형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물주변으로는 장대석을 깔았던 흔적이 남아있어 주변도 제대로 마무리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환경오염원이 다양화되면서 물 부족현상이 생기고 수질이 악화되는 것은 비단 외국의 얘기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물 부족국가에 해당되며, 먹을 수 있는 물이 점차 줄어드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수돗물도 먹기가 꺼려져서 물을 사먹은 것이 벌써 오래전의 일인 것을 보면 향후 물에 대한 문제는 더욱 좋지 않아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물을 살펴보면 물이 말라 물을 얻을 수 없는 곳이 많고, 수질이 나빠져서 물을 쓸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사찰이 산지로 자리를 옮긴 이후 석간수를 이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사찰에서 우물을 파는 일이 적어졌다. 또한 풍수지리적으로 행주형(行舟形) 혹은 부선형(浮船形)에 해당되는 절터에서는 우물을 파는 것을 금기시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남아 전해지는 우물이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사찰에 남아있는 우물은 매우 중요하게 보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물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그것을 옮겨버리거나 메워버릴 경우 그 사찰의 역사성이나 진정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분황사에 남아있는 삼룡변어정은 한덩어리로 된 화강석을 사용해서 만든 것으로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뒤어난다.

남간사지 석정은 2단으로 된 우물틀 위에 팔각형 덮개들을 덮었던 우물이다.

서울 백련사의 우물은 철제로 만든 덮개를 사용하고 있어 보기에도 좋지 않다.

창덕궁 주합부 전면부에 새로 복원된 두 개의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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