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과 만난 사람들 / 김선우 시인

집 바깥에서 공양을 할 때 늘 까다롭게 고르지만 낭패를 볼 때가 많아 집에서 먹는 밥이 좋다는 김선우(43) 시인과 오대산 산나물을 갈무리해 쓴다는 소박한 한정식 집에서 마주 앉았다. “살짝 걱정이 되었어요. 선생님 책 〈법정, 나를 물들이다〉를 보니까 법정 스님을 다 뵀던 분들이던데, 전 스님을 뵌 적이 없잖아요. 오늘까지도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드릴 수 있을까? 이 인터뷰가 도움이 되기나 할까? 걱정이 되었어요.” 말을 하면서 웃는 품이 봄볕처럼 해사하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한두 분쯤은 법정 스님과 현품대조를 하지 않은 분이기를 바랐다.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은 시대와 거리를 뛰어넘어 함께 있지만, 뜻을 같이 하지 못하는 사람은 곁에 있어도 십만 팔천 리 떨어져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스님 말씀을 새기며.

“정신이 없는 봄이에요. 해마다 봄이 되면 신경을 쓰지 않으면 내가 불편할 일들이 우리사회에 꼭 생기는 것 같아요. 4대 강 공사를 시작할 때도 계속 울면서 다니고, 지난해 희망버스도 ‘한목숨이 저 크레인 꼭대기에서 저러고 있는데 어떻게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밥 먹고 잠자고 이럴 수가 있지?’ 하는 마음에 울고, 이번 강정마을 일도 마찬가지고. 꼭 그러려는 건 아닌데 가만히 있으면 내가 불편해서 안 될 일이 연이어 생기네요.” 세상은 불편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꾸는가. 온몸이 촉수인 시인은 ‘작은 힘’들이지만 모이고 인연이 만들어지면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다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세상에 문제는 너무나 많고. 그 문제에 모두 반응하며 바깥일에 쓸려가다 보면 내 안의 평화가 이어지지 않고, 에너지가 생기지 않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잖아요. 내 방에서 만든 에너지를 세상에 흐르게 하면서 자연스레 인연을 만들고 도움 되는 일들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거꾸로 내 에너지가 너무 빨리 소진되고 나면 지속할 수 없으니까. 물 흐르듯이 마음이 가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힘에 부친다 싶으면 얼른 내 자리, 내 방, 내 중심에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야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움직이지 않으면 내 마음이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일만 하나씩 동참할 뿐인데도 이렇게 바쁘네요.” 두 차례 강정마을에서 오는 전화 통화를 하고나서 꺼낸 말씀이다.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내가 먼저 행복해져야 하고, 행복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이 충분히 맑아질 수 있다는 김선우 시인.
“스님들 말씀처럼 꼭 의도를 가지고 ‘뭘 해야지’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모든 인연들이 만들어지고, 때가 되어 ‘나’라는 그릇이 잘 쓰일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차곡차곡 채워가다 보면, 딱 맞춰 내 힘이 필요한 인연이 다가와요. 그러면 기꺼이 그 일을 하면서 커지는 삶이 어느 순간에 다가오는데, 제게는 지금 같아요.”

4대강 문제로 가슴앓이를 하고, 한진중공업 사건으로 높은 크레인 꼭대기에 올라간 목숨 때문에 눈물짓고, 강정마을 구럼비에 오르며 가슴을 찧는 시인을 멀찌막이 바라보면서 전사戰士라고 여겼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시인에게 전사다움이 없다. 그동안 풀어낸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이나 〈도화 아래 잠들다〉 같은 시집을 보면서 홍매를 떠올렸는데, 현품대조를 한 시인은 해사한 청매 같다. 촛불집회 이야기를 담은 소설 〈캔들 플라워〉부터 지난해 나온 오로빌에서 보낸 편지 〈어디 아픈 데가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에 이은 이번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로 이어지는 흐름이 탈속이었을까? 담백하고 가녀린 한 마리 하얀 나비처럼 나붓이 앉아 있는 시인은 무게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가붓하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돌아오는 길 시인이 쓴 첫 소설 〈나는 춤이다〉를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시인은 소설에서 전설이 된 춤꾼 최승희 어린 시절을 이렇게 그려냈다.
“뛰어놀던 어린 시절 산야는 어디나 춤과 음악이 가득했다. 나무들은 지칠 줄 모르는 춤쟁이들이었고 구름들이 보여주는 온갖 몸짓은 한나절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바라보아도 배고픈 줄 몰랐다. 여자가 모르는 것들이 세상에 가득 차 있었고, 모르는 그 세계에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들이 모두 익숙한 리듬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단지 땅속을 제외하고 말이다. 세상은 춤이구나……. 몸을 가진 것들은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어떤 형태로든 춤을 추고 있었다.” 고향마을에서 뛰놀던 어린 선우를 되살려 그려냈으리라.
늘 내면세계로 들어가 맑은 고요를 생성했기 때문일까? 세상이 한바탕 춤이라는 걸 일찍이 깨달은 탓일까. 4대 강으로, 희망버스로, 강정마을로 콩콩거리며 다니는 소란 가운데서도 맑음을 잃지 않았다. 조그만 몸 어느 구석에서 그런 에너지가 샘솟는 것일까. 목소리가 맑고 가녀린 시인은 말끝마다 까르륵 웃음을 터뜨린다. 요정처럼.
나그네는 글을 쓸 때 3인칭 어법을 쓰지 않는데 김선우 시인에겐 왠지 ‘그여’라고 불러야할 것만 같다. 고울 여麗, 곧은 줏대를 뜻하는 음률 여呂, 말갛게 거를 여濾, 넉넉할 여餘, 나누어 줄 여與, 같을 여如….

“기억을 더듬어 보니까 중학교 때 지금은 출가해서 스님으로 사는 둘째 누이 서가에서 〈무소유〉를 만나 법정 스님을 처음 뵈었어요. 문고판으로 나온 그 얇은 책. 그 뒤로 법정 스님에 대한 기억이 없다가 30대 중반이 되어 ‘이 사람은 참 괜찮은 사람이네’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과 얘기를 하다보면 늘 법정 스님과 맞닿아요. 인도 실험도시 오로빌Auroville에 갔을 때도 한국인 오로빌리언들을 만났는데, 여행자는 짐이 많으니까 책을 몇 권 지니지 못하잖아요. 몇 권 되지 않는 책들 가운데 꼭 빠지지 않는 책이 법정 스님 책이에요. 〈무소유〉가 없으면 마치 늘 손목에 걸고 다니던 염주를 잃어버린 것처럼, 평정을 잃고 마음이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뭐랄까?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그렇다고 그 분들이 모두 법정 스님을 만나 뵈었느냐 하면 아니에요. 책에서만 법정 스님 뵙고, 〈무소유〉 같은 책을 자기 삶에 특별한 표징처럼 늘 가지고 다녀야만 마음이 놓이는 그런 사람들을 세계 어디를 가도 만나게 돼요. ‘법정 스님이 책을 쓰지 않고 그저 승려생활만 하셨더라도 이런 영향력을 가지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귀한 어떤 분이 세상에 미치는 많은 영향들, 민들레 솜털처럼 곳곳으로 날아가 스며든 인연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뵌 적이 없어도.”

법정 스님이 돌아가셨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가슴이 먹먹했단다. “한동안 그랬어요. 그렇게 앉아있는데 세계일보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법정 스님 추도사를 아무래도 김선우 시인이 써야하겠다고. ‘저는 스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요.’ 그랬더니 아무리 돌아봐도 김선우 시인이 써야하겠더라고 하더군요.” 문자를 한 수녀님도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나 법정 스님 책 〈무소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마음을 연 소중한 인연이었다.

“흰 눈 덮인 낮은 한옥 지붕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볍게 덮였구나.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붕의 살갗처럼 눈이 희구나.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삼월에 내린 눈 위로 ‘봄 햇살’이라고 할, 꼭 그런 햇살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아침부터 내내 마음이 두근거렸다. 무슨 일이 있으려는가. ……창밖으로 보이는 눈 덮인 지붕들이 어제보다 조금 가벼워져 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나. 햇살에 몸이 닿으며 아지랑이처럼 화하는 눈의 입자들이 허공을 촉촉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나. ‘법정 스님 입적’이라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내가 참 좋아하는 수녀님이 보낸 메시지였다. 햇살이, 흰 눈을, 건너고 있다. 중얼거리면서 티브이를 틀었다. 화면 하단에 자막으로 속보가 지나간다.……‘왕생기원’이라고 메시지를 보낸 뒤, 백팔 배를 올렸다.” ‘그여’가 세계일보에 쓴 추도사 ‘법정 스님을 보내며…’에서 모셨다.

‘수많은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는 방방곡곡 이 땅이 근래에 와서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성찰을 잊은 개발 때문에 온 땅이 피 흘리고 신음하고 있다’며 대운하와 4대강 사업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던 법정 스님을 떠올리는 시인.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스님을 꼭 뵙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어요. 어떤 귀한 분이 어느 곳에 계시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그 분을 꼭 뵈어야 하고, 알아야 하는 것은 제 욕망과는 상관없는 일이라서.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까 스며있는 거예요. 이미 내가 살아가는 동선 안에. 이 사람은 참 곱게 살고 있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들 안에 다 스며있더라고요. 스님 숨결이 맑고 향기롭게. 인연이 드나드는 모습이 이렇게 자연스러워야 하죠.”

시가 남다른데 어디서 왔을까. “제가 가지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느냐고 물으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여러 전생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열심히 공부하고 쓰는 것이 아니라. 특히 시를 쓸 때 ‘툭’ 나오는 순간들이 있어요. 써놓고도 내가 쓰긴 했으나 그냥 온 것이라는 느낌이에요.”
‘전생인연들이 대한민국, 하필이면 강원도 어느 골짜기에 목숨을 떨구었기에, 내가 아닌 것들이 무수하게 모여서 내가 되고. 그 바닷가, 그 강가, 그 나무 아래서 일찍부터 나무랑 말하고 구름이랑 말하고 떨어지는 햇빛 속에서 행복해하며 일찍부터 나와 남이라는 경계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 어느 순간 석류가 툭! 터져 벌어지듯이’ 시상詩想이 터져 나왔다는 말씀이다. 그처럼 모든 사람 안에 선하고도 존귀한 씨앗들이 발현해 세상은 아름답다고 여기던 시인. 그 아름다운 세계가 대학교 1학년 때 광주 항쟁 사진을 보면서 무너져 내렸다. “아름답고 착함만 있을 것만 같았던 이 세상에 존재하는 폭력과 불의를 보면서 인간 속에 깃든 부정과 불의, 이것들과 어떻게 맞서야 하나 고민하며 대학교 4년을 운동권으로 살면서 거칠게 싸웠어요. 두 극단 요소가 한꺼번에 제 인생을 뚫고 지나갔어요. 하나는 내부에 있는 선한 씨앗에 대한 절대 믿음과 그 반대를 겪으며 살아내야 하는 사회인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존재에 대한 요소들이 확 부딪쳐오면서 시 쓰는, 글 쓰는 김선우를 만든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글쟁이들, 특히 시인은 그저 순수한 무엇이기를 바라는 로망이 있다. 이슬 머금은 꽃 같은 줄 알았던 사람이 현장에 나가서 거친 발언을 하고 가슴 아파하면, 대중들은 그런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순수함을 견지할 것이냐, 우회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자.’ 마음먹었어요. 내 글을 통해서 뭔가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어요. 글쟁이라는 정체성 속에서 ‘어떻게 하면 세상에 이로운 향기들을 널리 퍼뜨리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하죠. 가장 좋은 방식은 법정 스님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 물처럼 자연스럽게 스미는 걸 텐데.”

불교를 내세우지는 않지만 절집과 인연이 깊던데. “의도가 없어요. 굳이 운명 지어진 까닭을 훑어보자면, 저희 집 가족계획에는 원래 제가 없었어요. 큰 오빠가 중학교 때 사고로 죽으면서 갑자기 딸만 셋이 남게 되어, 이 집안에 남아를 생산해야 한다는 놀라운 사명을 띠고 어머님이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면서 9년이란 오랜 기도 끝에 제가 태어났어요. 게다가 스님이 되어 출가한 둘째 언니랑은 특히 어렸을 때부터 많은 얘기를 나누며 교감이 커서 불교가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열한 살 차이 나는 둘째 언니 서가에 꽂혀있던 책들을 보면서 자랐어요.” 둘째 언니는 불교, 셋째 언니는 기독교, 아버지는 유림儒林, 할아버지는 동학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이라 다양한 종교 성향을 가진 식구들 사이에서 김선우는 중립을 지켰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불교를 종교라기보다 인류가 가진 가장 매력 있는 철학사상으로 받아들인다. 불교철학은 지구환경이 직면한 21세기 위기로부터 인류와 지구를 구할 가장 강력한 대안철학이라면서.

사람이 갈 수 있는 끝, 지구 끝이 보이는데도 마구 써대는 씀씀이, 지구를 쓰고 있는 패턴을 보면서, ‘200년 뒤에 지구가 멀쩡할까?’ 하는 비관론이 20대 시인 김선우를 지배했었다. “지난해 희망버스에 오른 사람들이 모두 평범한 생활을 하던 분들이에요. 그곳에 갈 때 내 마음이 그랬듯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구해야 하는 목숨이 있기 때문에 선뜻 나섰더라고요. 아무런 계산 없이 내 돈, 내 시간을 들여가면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 안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예쁜 것들이 훨씬 더 많이 있네. 우리에게 많은 가능성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씨앗들을 더 예쁘고 더 자유롭게 끄집어내는데 내가 어떤 구실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정말로 환희로워요. 분명 우리에겐 연화장 씨앗이 있고, 부처님 씨앗이 있어요. ‘당신이 바로 부처’란 말은 공허한 말이 아니에요. 그 씨앗을 발견해낼 수 있도록 서로 도와야죠.” 석가모니나 예수, 신라에 나툰 붓다라는 원효, 얼마 전까지 우리와 함께 숨 쉬던 법정 스님도 바로 사람들 안에 있는 씨앗을 발견하고 싹을 틔우려고 애쓰셨으리라. 이 봄, 흙이 몸살을 앓는 덕분에 세상이 온통 잎과 꽃이다. 날마다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길.

‘이 땅이 근래에 와서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성찰을 잊은 개발 때문에 온땅이 피흘리고 신음하고 있다’며 가슴 아파하시던 법정 스님을 떠올리는 김선우 시인. 한번도 뵌적 없는 스님을 꼭 뵙고 싶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 귀한 분이 어느곳에 계시다는 것으로 충분했다.

‘어떻게 하면 세상에 이로운 향기를 퍼뜨릴수 있을까’ 생각한 김선우 시인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자’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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