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만해 기념관, ‘설중매, 만해 한용운 특별기획전’

만행을 떠나며
길을 떠납니다. ‘기룬 님’을 찾아 가는 만행(萬行)입니다. ‘기룬 님’은 나의 님, 당신의 님, 우리 모두의 님 입니다. 이생에서 반드시 만나야 할 님 입니다. 일찍이 만해(萬海) 선사께서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말한 바로 그 님을 찾아 천 갈래 만 굽이 길을 갑니다.
만행이라고 하여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떠도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방황일 뿐입니다. 만행은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하고 선명한 행로를 밟아야 합니다. 보고 느끼는 그 모든 것을 ‘님의 손길’ ‘님의 숨결’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만행입니다.
중생의 고뇌가 끝이 없어 여래의 서원이 무량하고, 중생이 병고에 시달리므로 보살도 아픈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고뇌에 차 있어 님도 고뇌의 불덩이를 이고 서 있을 것입니다. 님은 우리의 삶 어느 한 곳도 외면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사는 이곳이 님의 땅입니다. 그곳은 바로 팔만사천 법문의 현장이기에 님의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믿음과 희망이 행자(行者)가 만행을 떠나는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심우장산시 / 무곡 최석화 작
한시 설후만금/창석 김창동 작

 

 

 

 

 

 

 

 

 

 

 

 

 

 

 

봄비 그리고 남한산성
자분자분 비가 내립니다. 한껏 피었던 꽃잎들이 지는 동안, 연둣빛 잎들이 자라는 소리가 두런두런 숲을 흔듭니다. 산성마을로 올라가는 굽잇길에 이렇게 봄비가 내린 날이야 무수하겠지만, 오늘 행자의 몸을 적시는 비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이 인연(因緣)이어서 한 나절 내리는 비도 어디서 맞느냐에 따라 감회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5월의 남한산성은 그야말로 꽃대궐입니다. 개나리 진달래의 원색에 벚꽃과 목련의 화사함이 마을을 극락으로 장엄하고 있습니다. 성곽과 문화유산들이 정비되고 길이 넓어지며 산성마을은 유래 없이 정갈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유네스코가 정하는 ‘세계의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입니다.
한반도의 역사가 그러하듯, 산성마을을 지나간 시간도 영광과 저항으로 직조(織造)되어 있습니다. 남한산성은 백제 온조왕의 비원과 푸른 기상이 부풀었던 곳, 신라 문무왕의 통일 의지가 견고한 성으로 쌓아졌던 곳,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거센 광풍을 온 몸으로 막아섰던 곳입니다. 성불(成佛)보다 구국(救國)이 우선이었던 시절, 목탁과 염주 대신 곡괭이를 든 스님들이 성을 쌓았습니다. 남한산성은 사명대사와 벽암 각성 스님의 자비와 지혜가 스민 곳입니다. 1919년에는 만세 소리가 성곽을 뒤흔들기도 했습니다. 저항의 인자(因子)는 시간을 초월해 전승되는 겁니다.
병자호란의 굴욕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나 강한 탓인지, 자칫 남한산성을 치욕과 비운의 공간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목숨을 던져 국운을 지킨 곳이고, 지키고자 저항한 곳이고, 지켜서 영광스런 곳이 남한산성입니다.

만해기념관의 황매 향기
남한산성에 만해(萬海) 스님이 있습니다. 성불의 님, 독립의 님, 평화의 님을 향해 침묵의 웅변으로 살았던 선각자의 체취가 있습니다. 고찰을 찾아가는 고즈넉한 마음으로 만해기념관을 찾아 갑니다. 5월 한 달 만해기념관은 매화향기의 극락입니다. 마당 가득 핀 황매는 봄꽃들을 숨죽이게 하는데, 전시관 안에도 온통 매화입니다.
‘설중매, 만해 한용운 특별기획전’
만해 스님이 남긴 시와 논설에 매화가 주제나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모두 26편. 그 구절들이 서화(書畵)로 구현되어 만해 스님의 정신을 새롭게 느끼도록 하는 전시입니다. 1998년 개관한 만해기념관은 수시로 기획전을 열어 왔지만, 이토록 신선한 향기로 만해 스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처음일 것입니다. 이번 기획전에는 모두 54점의 서화가 선보입니다. 제1부 ‘만해와 매화’에서는 만해 스님의 글을 제재로 한 문인화와 서예 작품들이, 제2부 ‘선비와 매화’에서는 조선 중 후기에 그려진 매화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기념관은 5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내내 작품들을 바꿔가며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만해 스님의 매화는 한글로 쓴 시와 논설, 한시와 선시 등에 다양한 향기로 피어 있습니다. 한 겨울의 고난 속에서도 만리향을 피워내는 매화는 만해 스님의 삶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석전 박한영 스님은 만해 스님이 지나가면 “어이, 저기 설중매가 지나가네”라고 말하곤 했답니다.
전시실을 가득 채운 매화도에서는 마당에 핀 황매만큼이나 진한 향이 느껴집니다. 활달한 필법으로 구현된 시편들에서도 서권기가 넘치니, 만해 스님의 우렁찬 웅변을 듣는 것 같습니다. 만해 스님의 생애는 아직도 진하디 진한 향기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음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자리입니다.

우주의 크나큰 조화로 하여(宇宙百年大活計)
선원(禪院) 가득 예전대로 매화가 벌어(寒梅依舊滿禪家)
머리 돌려 삼생(三生)의 일 물으렸더니(回頭欲問三生事)
한 가을 유마(維摩)네 집 반은 꽃 졌네.(一秋維摩半落花)

‘관락매유감(觀落梅有感, 매화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이라는 시 앞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만해 스님은 선원 가득 핀 매화를 유마 거사의 뜰에 핀 꽃, 그러니까 ‘불이(不二)의 가르침’으로 보았던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 꽃이 반은 져버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거기다가 삼생의 일을 묻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때라니, 성불의 님도, 독립의 님도 아득히 멀기만 했든가 봅니다. 아니면, 지친 영혼을 일깨우는 찬물 같은 역설(逆說)이겠지요.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님은 언제나 먼 곳에 있고, 나는 언제나 초라합니다. 내가 나의 초라함을 보는 순간부터 님은 그리워지고, 그렇게 ‘기룬 님’은 유마네 집 반은 져버린 꽃으로 다가오는 것이려니….
전시실은 넓지 않으나 한 편 한 편 서화를 감상하는 시간은 알뜰합니다. 그림 속의 글을 찬찬히 읽고, 글씨 속의 문자향을 깊이 되새깁니다. 귀가 먹먹하도록 만해 스님의 법문이 들려옵니다. 그리하여, 이 전시회는 독립된 민족 그러나 분단의 조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무릇 망매지갈(望梅止渴) 하는 것도 또한 양생(養生)의 한 방법이긴 할 것인 바, 이 논설(論說)은 진실로 매화나무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목마름의 불꽃이 전신을 이렇게 태우는 바에는, 부득불 이 한 그루 매화나무의 그림자로 만석(萬石)의 맑은 샘 구실을 시킬 수밖에 없다. (‘조선불교유신론’ 서문 중에서)

쌓인 눈 찬 바람에 아름다운 향기를 토하는 것이 매화라면 거친 세상 괴로운 지경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는 것이 용자(勇者)니라. 꽃으로서 매화가 된다면 서리와 눈을 원망할 것이 없느니라. 사람으로서 용자가 된다면 행운의 기회를 기다릴 것이 없느니라. 무서운 겨울의 뒤에서 오는 새봄은 향기로운 매화에게 첫 키스를 주느니라. (논설 ‘용자가 되라’ 중에서)

“아직 배울 것 많으니 할 일도 많아”
만해기념관 전보삼 관장은 중학생 때부터 불교에 심취했습니다. 사춘기 때 읽은 만해 스님의 글이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은 것인지, 평생 만해 스님 연구와 유품을 모으고 정리하는 낙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오랜 바람이었던 <만해매화첩>도 제작했습니다. 문인화의 대가 무곡(戊谷) 최석화(崔錫和) 선생이 26편의 매화관련 글을 쓰고 매화도를 그려 넣은 화첩은 ‘상 하’ 두 권으로 엮었는데, 기회가 되면 영인본으로도 제작해 보급하고 싶다는 것이 전보삼 관장의 소망입니다.
“만해 스님의 품은 우주의 넓이입니다. 우리가 스님에게 배울 것이 아직 무궁무진 하니 저의 할 일도 많습니다. 보다 다양한 기획전으로 그 가르침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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