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있는 둘레길-1. 벚꽃길 십리 그리고 쌍계사, 국사암, 불일암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십리 벚꽃길에 벚꽃이 만개했다. 벚꽃길 5km를 포함해 불일암까지는 약12km이고,3~4시간이 소요된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걷지 않기 시작했다. 문명의 이기가 걷기를 줄이고 세상과 세상을 좁혔다. 알아야 할 것, 해야 할 것이 많아졌고 걷지 않는 만큼 삶의 속도가 빨라졌다. 그 빠름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졌고, 그로 인해 사색의 시간이 점점 줄고 있다. 주어진 세상의 속도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속도를 잠시 늦춰보는 일도 의미 있지 않을까? 그런의미에서 다시 천천히 걷는 일을 생각해 본다. 잃었던 예전의 속도를 되찾고, 늦춰진 속도로 보아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보기 위해 길을 찾아본다. 이미 제주도의 올레길이 ‘걷기’와 ‘길’을 일으켰다. 절이 담긴 둘레길과 절과 절을 잇는 길을 찾아 ‘걷기’와 ‘길’을 함께 시작한다. 첫 번째로 경남 하동 쌍계사 십리 벚꽃길을 찾았다. 그 길에는 쌍계사와 국사암, 불일암이 있었다.

진감국사가 머물다 입적한 국사암.
온통 꽃 세상이다. 하동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약 5km의 2차선 도로를 따라 벚꽃이 만개해 있다. ‘쌍계사 십리 벚꽃길’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위치한 십리 벚꽃길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 100선’의 최우수에 선정된 우리나라 대표적인 꽃길이다. 마침 하동군에서 개최하는 벚꽃 축제가 열렸다. 꽃길을 보러 온 사람들로 길은 발 디딜 틈이 없다. 꽃이 반, 사람이 반이다.
4월 6일부터 8일까지 열렸는데 축제의 마지막 날에 만개한 벚꽃길에 당도했다. 하동군은 매년 개화시기에 맞춰 화개장터 일대에서 벚꽃 축제를 개최했다. 벚꽃 음악회와 벚꽃 가수왕 선발대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함께 화려한 꽃길의 봄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축제다.
대전서 왔다는 최귀섭(47)씨는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여줄 기회가 별로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 나왔는데 아이들이 자연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아이들과 손을 잡고 꽃길을 걸었다. 쌍계사는 축제기간 중에 벚꽃길 걷기 템플스테이를 진행했다. 가족 단위로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꽃으로 시작해서 꽃으로 끝나는 십리 길을 걷고 나면 쌍계사가 나온다. 지금부터의 길은 코스를 달리 할 수 있다. 쌍계사로 들어가서 국사암으로, 국사암에서 쌍계사 주차장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쌍계사로 들어가지 않고 먼저 국사암으로 가서 국사암에서 쌍계사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또 하나는 국사암에서 불일암과 불일폭포로 갔다가 쌍계사로 오는 길이 있다. 풀코스로 걸을 생각이 아니라면 쌍계사 대형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다녀오는 것도 방법이다. 위에 열거한 코스를 모두 걷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가 약 5km이고, 쌍계사에서 국사암까지는 약 0.5km인데 길이 쉽지만은 않다. 산길이고 곳곳에 경사도 있다. 국사암에서 불일암까지는 약 2km인데 이 길 역시 쉽지만은 않다. 불일암은 쌍계사 뒤 4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보조국사의 시호를 단 불일암은 신라의 원효와 의상, 고려의 보보국사가 머물렀다고 한다. 벚꽃길에서 시작하는 길 전체는 약12km이고, 모두 걷는다면 3~4시간이 소요된다.

육조 혜능의 정상이 모셔져 있는 쌍계사 금당
쌍계사다. 월요일인데도 관람객과 참배객이 많다. 마애불에 동전을 붙이며 기도하는 사람. 엄마 팔에 매달려 천왕문을 겨우 지나가는 아이들. 도량도 시끌시끌하다. 봄인가보다. 말랐던 계곡에 물이 들어차듯이 겨우내 비었던 풍경의 곳곳을 꽃들이 채우고, 고즈넉했던 도량엔 사람들로 넘친다. 쌍계사는 723년(성덕왕 23)에 삼법화상과 대비화상이 창건했다. 두 스님은 당나라에서 육조 혜능의 정상을 모시고 왔다. 금당에 모셔져 있다. 840년(문성왕 2)에 진감국사가 퇴락한 삼법 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했다. 진감국사는 육조 혜능의 남종선을 신라에 최초로 전했으며 우리나라 불교사상 처음으로 범패(梵唄)를 전했다. 옥천사를 중창하고 절 주위에 당에서 가져온 차나무 씨앗을 심었다. 쌍계사는 남종 돈오선의 도량이자 차의 발상지이며 해동범패의 연원이다. 하여 쌍계사는 선(禪), 다(茶), 음(音)의 성지로 불리고 있다. 혜능의 정상이 모셔져 있는 금당으로 오르다보면 국사암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국사암으로 향했다.

쌍계사 오르는 길.
“혜능의 ‘정신’을 가져왔다는 상징적 표현을 그렇게 적어놓은 건 아닐까 싶어요.”
국사암에서 만난 만적 스님은 그렇게 말했다. 우문 현답이다. 기자는 쌍계사 금당에 정말 혜능의 정상을 모셨는지, 정상을 본 사람은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스님은 “문헌에는 분명 그렇게 적고 있지만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겠냐”고 했다. 국사암은 혜능의 맥을 이은 진감국사가 입적한 곳이다. 시끌벅적한 쌍계사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다. 햇살이 반 쯤 들어와 앉은 작은 방 안에서 몇 안 되는 대중이 점심 공양을 하고 있다. 국사의 마지막 거처는 그리 크지 않았다. 작은 마당엔 돌담을 따라 의자 몇 개가 놓여있다. 어쩌다 쌍계사나 불일암 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빈 의자를 잠시 채웠다 갔고, 어쩌다 우는 산새들이 날아와 그 빈 의자를 채웠다. 국사의 마지막 거처에서 듣는 새소리는 범패의 한 소절 같고, 만적 스님의 현답은 분명 그 곳이 혜능의 언저리임을 느끼게 했다. 아직 피지 못한 꽃들이 많다. 앞으로 더 많은 꽃과 녹음이 숲을 채우고 길은 더 짙어질 것이다. 숲길에 들어서는 것이 밟고만 있던 삶의 가속 페달에서 잠시 발을 내려놓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절이 있는 둘레길은 고단한 발길을 받아주는 산사의 마당을 지날 수 있고, 그 마당에서 배운 넉넉함으로 다시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어서 좋다. 다시 벚꽃길이 보인다. 나무가 꽃잎을 달고 있을 날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몇 날 안 되는 그 날들 때문에 나무는 거기 그렇게 있을 수 있다. 짧은 순간의 사색일지라도 그 순간이 있기에 이 급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꽃잎 날리는 봄날이다. 글ㆍ사진=박재완 기자

<가는 길>
대중교통
하동읍 하동터미널이나 구례읍 구례터미널에 도착한 후 군내버스를 이용 화개터미널까지 간다. 서울에서는 화개터미널로 가는 직행버스가 있다. 서울 남부터미널 07:30~19:30(7회 운행) 화개터미널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화개장터다.

승용차
88고속도로 남원IC로 나와 인월 방면, 구례, 순천 방면 19번 국도, 남도대교 앞에서 좌회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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