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쇼까대왕 유적 답사<2>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의 임무"

사람·동물 위해 약초 재배하라
칙령통해 평화·생명존중 천명

 

답사일행은 부겐빌리아와 빠또리아 꽃들이 만발한 다울리 언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코끼리 바위 주위로 모인다. 코끼리 바위에 아쇼까왕의 담마칙령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바위에 왕명이 새겨져 있다 고해서 ‘바위 담마칙령’ 혹은 일본식 한자어로 ‘마애법칙(磨崖法勅)’이라고 부른다.

인도인 로이 청년이 영자 안내문을 보고 설명하지만 그 자신도 담마칙령(담바삐리)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다. 나중에라도 가방에 챙겨 온 <아쇼까왕 비문>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쇼까왕의 생생한 유적지에서 책을 참고하고 의지하는 것은 고지식한 백면서생에게서나 가능한 일이리라. 추리와 상상력이 발휘되지 않는 답사는 무미건조할 뿐이다.

답사일행은 코끼리 바위 앞에서 탄성을 지른다. 거대한 바위 상단에 머리만 내민 코끼리 조각은 정글에서 통나무나 나르는 순한 짐승이 아니라 깔링가 전장 터를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사자와 같이 용맹한 모습이다. 기원전 3세기 때 조각인데도 동그란 두 눈은 또렷하고, 콧속까지 깊이 판 코에서는 곧바로 다야강의 강물이 뿜어져 나올 듯하다.

아쇼까왕은 왜 이곳 다울리 언덕에 코끼리를, 그것도 머리만 조각하도록 지시했을까? 답사일행은 코끼리 전신이 조각되어 있었다면 한두 번 눈길을 주고 나서는 바로 칙령이 새겨진 바위덩어리 하단으로 내려갔을 터이다. 일행은 코끼리 머리만 조각된 바위 상단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한동안 서성거린다. 아쇼까왕이 던진 화두에 걸린 것처럼 각자 상념에 잠겨 본다. 잠시 후 대요스님이 한 말씀하신다.

“아쇼까대왕이 이곳에 코끼리를 조각하고 바위에 칙령을 새기도록 명령한 것은 어떤 뜻이 있을 겁니다. 왜 머리만 조각하고 몸을 숨겼을까요? 부처를 보는 안목을 가진 자만이 코끼리 몸을 꺼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코끼리 몸까지 꺼내 볼 수 있는 자는 아쇼까대왕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불살생이야말로 부처님 법을 실천하는 첫 번째 수행
이윽고 일행은 바위덩어리 하단으로 내려가 본다. 각문(刻文)을 보호하기 위해 철책으로 막아놓았지만 뒷사람들을 위한 합당한 조치 같다. 아쇼까왕의 사상이 담긴 담마칙령, 즉 각문을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다만, 아쇼까왕의 자비정신이 넘쳐나는 제 1장은 호진스님께서 번역한 그대로 옮겨본다.

‘이 법칙은 천애희견왕(아쇼카대왕)이 새기게 했다. 여기에서는 어떠한 생물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도살되어서는 안 된다. 역시 어떠한 집회도 열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천애희견왕은 집회에서 많은 폐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애희견왕은 어떤 종류의 집회는 좋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천애희견왕의 수라간에서 매일 수백 천 마리의 동물들이 요리를 위해 도살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법칙이 새겨진 때에는 단지 3마리의 동물만이 도살되고 있다. 2마리의 공작과 1마리의 사슴이다. 그렇지만 이 사슴조차도 정기적으로 도살되지는 않는다. 이 3마리의 동물도 앞으로는 도살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21세기 인도사회에서 양이 사람들의 속죄양이 되어 힌두제단에 올려지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기원 전 3세기 때에 제물의 도살을 금지시키는 아쇼까왕의 자비심이 놀랍기만 하다. 인도의 예를 들었지만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고사를 지낼 때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돼지머리를 앞에 놓고 절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으니 말이다.

아쇼까왕이 집회를 금지시킨 것은 향연에서 살생이 관습적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왕의 수라상에 3마리의 동물만 오르게 한 까닭은 일시에 불살생의 계율을 실천하기가 그만큼 어려웠음을 방증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쇼까왕은 3마리의 동물도 앞으로는 도살되지 않을 것이라고 담마칙령을 통해 약속하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또 그 존재들을 돕고 사는 것이 불교의 이상적인 삶이라면 불살생이야말로 부처님 법을 실천하는 첫 번째의 수행이 아닐까 싶다. 제 2장은 사람과 동물이 존귀한 생명체로서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자비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천애희견왕은 영토 도처에 두 종류의 병원 즉 사람을 위한 병원과 동물을 위한 병원을 세웠다. 또 사람에게 효용이 있고 동물에게 효용이 있는 약초를 재배하게 했다. 약초가 없는 곳에는 수입해서 재배하게 했다. 나무뿌리와 열매도 약초와 마찬가지로 재배하게 했다. 도로에는 사람과 동물이 사용할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게 했다.’

서구의 르네쌍스가 신본주의에서 인간중심의 휴머니즘사상을 일으켰다면 부처님 법은 신본주의나 인본주의가 아니라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운 생명중심사상이라고 해야 할 터이다. 아쇼까왕이 동물을 위해 도처에 병원을 짓고 약초를 재배했다는 말에 내 영혼이 정화되는 듯하다. 경전에 따르면, 살생을 저지르면 우리 심성에 갖추어진 자비의 씨앗이 함께 죽어버린다고 했는데, 아쇼까왕의 제 2장 담마칙령이 부처님 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듯하여 새삼 감동스럽다.

그런가 하면 제 3장 담마칙령은 제 1장과 제 2장의 담마칙령이 실천되고 있는지 관리들은 순찰을 떠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 4장은 담마칙령을 실천한 결과 ‘전쟁의 북소리는 법을 알리는 소리가 되었다’고 평하고 있다. 제 5장은 법대관은 죄수나 노인 등 약자를 위해 종사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바로 이 점이 복지를 부르짖는 요즘이라서 그런지 더욱 눈에 띈다. 한편, 제 6장은 왕의 의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나의 노력이나 백성들 일에 대한 나의 처리를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을 오직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중략) 내가 노력하는 것은 모든 유정(有情)에게 내가 지고 있는 빚을 갚기 위해서이고, 이 세상에서 그들을 행복하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다음 세상에서 그들이 천상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이다.>

물론 나는 담마칙령이 아쇼까왕의 독창적인 통치철학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쇼까왕 곁에서 왕사 역할을 한 목갈리뿟따띳사 같은 장로 등이 설한 법문이 근간을 이루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비록 장로들의 법문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 지혜로 체화하여 다스렸던 통치행위는 위대함, 그 이상인 것이다.
다울리 언덕을 떠나려는데 자꾸 코끼리의 부릅뜬 두 눈이 머릿속을 맴돈다. 아쇼까왕의 눈이 저와 같이 왕방울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자꾸 드는 것이다. 버스가 다울리 언덕을 지나쳐 ‘평화의 탑’ 앞에 정차하자 그제야 머릿속의 상념이 바뀐다. 답사일행은 버스에서 하차한 뒤, 오이를 하나씩 사서 목을 축인다. 우리나라 시장에 있는 오이와 똑같은 모습이다. 장기를 인도에서는 상희(象戱)라고 하는데,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왔듯 오이도 인도에서 온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일본인이 후원한 평화의 탑과 4대 힌두사원 중 하나인 자가나스 사원
다야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평화의 탑은 1973년에 일본의 불교종파인 남묘호랑교에서 성금을 보내 조성했다고 하는데, 불상이나 사자상을 시멘트로 조상(造像)하여 하나같이 조악하다. 그러나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하여 인도인들의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이 자리가 바로 깔링가 전투 때 아쇼까왕이 전투를 지휘했던 곳이었을 것이다.

문득 아쇼까왕이 다야강을 공격하기 전에 마하다니강을 건너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쇼카왕이 강을 건너면서 칼을 빠뜨렸는데, 장수들은 불길하니 퇴각하자고 했고 아쇼까왕은 북을 쳐 ‘공격 앞으로’를 명령했다고 한다. 하필이면 왜 강에서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빠뜨렸을까. 무력을 버리고 부처님 법을 받들게 하라는 상징처럼 받아들여진다.

아쇼까왕의 운명은 이미 그렇게 정해진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이 되는 것이다. 비록 전생담이지만 소년 아쇼까는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가 부처님이 다가오자 자기 신발에 모래밥을 담아 공양한 공덕으로 부처님으로부터 ‘훗날 국왕이 되고 삼보에 귀의할 것’이라는 수기를 받았던 것이다.

답사일행은 부바네스와르 시내로 돌아와 힌두스탄호텔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힌두사원을 방문하자고 의견을 모은다. 이미 예약을 한 듯 릭샤꾼들이 호텔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릭샤란 사람이 바퀴를 굴려서 움직이는 전근대적인 탈것인데, 자전거를 변형시킨 삼륜차라고 보면 된다.

자가나스(Jaganath) 힌두사원 광장에는 힌두신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때마침 두 마리 황소가 흥분한 채 영역싸움을 하고 있다. 검은 뿔과 흰 뿔이 부딪치는 소리가 우지직 기둥 부러지는 소리와 흡사하다. 날벼락이 치는 것처럼 두려움이 느껴지는데도 인도인들은 천연덕스럽게 광장을 오가고 있다.

답사일행은 힌두사원 입구에서 돌아서고 만다. 소고기를 먹는 타종교인들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이래저래 소가 문제다. 할 수 없이 일행은 힌두사원을 볼 수 있는 광장 출입도로 옆에 선 건물로 올라간다. 힌두 사두나 예비수행자들이 기거하는 승방 건물이라고 한다. 옥상에 오르니 비로소 12세기 때부터 조성해온 장엄한 자가나스 사원 안이 보인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힌두신자들의 기도가 빛에너지로 바뀐 것인지 나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방광(放光)이 보인다. 우윳빛 아치가 첫 번째 탑과 두 번째 탑 사이의 허공에 한동안 나타난 것이다. 빛의 굴절현상이나 무슨 반사광이 아닌가 싶어 도리질을 하며 다시 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윳빛 아치가 무지개처럼 떠 있다.

강행군하여 헛것을 본 것이 아니가 싶기도 하지만 답사를 축하하는 서기(瑞氣) 같다는 생각이 들자 신비로움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일체유심조의 도리를 다시 헤아려보는 방광이 아닐 수 없다. 아쇼까왕의 담마칙령이 새겨진 바위, 머리만 조각된 코끼리의 인상이 강렬했던 탓이 아닐까도 싶다.    
글ㆍ정찬주, 사진ㆍ아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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