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력수생 해동불일 보조국사 진영

사진설명 : 동화사성보박물관 보조국사 진영
송광사 진영과 복식 ‘차이’

당초화문으로 정교함 더해

 

전남 순천 송광사(松廣寺)에는 불교사(佛敎史)를 빛낸 보물 제 1043호로 지정된 십육조사진영(十六祖師眞影)의 진영이 있다. 이 고승들의 진영은 가로 77.4㎝, 세로 134.8㎝ 로 제작기법이나 크기가 같아서 어떤 한 금어(金魚, 승려 불화승)스님의 작품들로 보여진다.

이들 중 특히 보조국사의 진영은 녹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입고, 오른 손에 길고 가는 석장(錫杖)을 쥐고, 날카로운 선기(禪氣)를 지닌 눈매로 전면(前面)을 바라보고 있다. 이 16점의 진영(眞影)들은 모두 정조(正祖) 4년(1780년)에 안치되었다고 전한다. 모두 상태가 매우 양호해서 조선중기의 고승영정들의 기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보물들이다.

팔공산 동화사(桐華寺)에도 역시 보조국사 지눌(知訥)큰스님의 영정이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한 동안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53호로 지정되어 있다가, 2010년에 보물 제1639호로 지정되었다. 비단에 석채와 당채로 그려진 이 진영은 크기가 147.5㎝×79.3㎝ 로 송광사의 보조국사진영보다 약간 더 큰 영정이다.

송광사의 진영과 특히 의상(衣裳)의 복식(服飾)채색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동일한 초본(抄本)을 기본으로 제작되었지만 매우 섬세하면서도 정교한 필치의 인물묘사와 담담한 채색의 옷의 색깔 등을 볼 때 훨씬 연대가 올라가는 시기의 작품으로 보조국사 진영들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오랜 것이다. 특히 채색의 질감(質感)이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특히 동화사 사명당대장 진영(보물 제1505호)과 세부적인 표현감각과 필치가 가장 유사하여 동일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다른 고승들의 영정들과는 다르게 보조국사가 앉아계신 의자는 나전칠기(螺鈿漆器) 공예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의자다.

우리나라의 다른 영정들이나 고승진영들을 찾아봐도 나전칠기의자에 앉은 분은 보조국사가 거의 유일하다. 송광사 영정의 나전칠기 의자가 오로지 의자 판목(板木)의 넓은 부분에만 대충 목단문(牧丹紋)이 묘사되어 있는 것에 비해 동화사 영정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모란문이 판목전체를 꽉 채운 정성이 많이 들어간 작업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의자가 특별히 보조국사를 위해 만들어진 의자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하단에 다시 당초화문(唐草花紋)으로 정교함을 더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문양은 앉아계신 등쪽의 판목에는 구갑문(龜甲紋)을 넣었다.

그렇다면 왜 구갑문을 넣었을까? 여기에서 의자를 만든 장인이 보조국사를 위해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또 보조국사 주변의 사람들이 보조국사께서 오래 오래 사셔서 불일(佛日)을 증휘(增輝)하시기를 바란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보조국사는 태어날 때부터 허약하고 병이 많아서 여러 가지로 약을 썼으나 낫지 않아, 부친은 부처님 전에 기도했다. “병만 나으면 자식을 부처님께 바치겠사오니 제발 병만 낫게 해주소서” 라고 말이다. 이후 국사의 병이 깨끗이 낫자 겨우 여덟 살에 종휘(宗暉)선사에게 출가하신 분이 바로 목우자(牧牛子) 지눌 스님인 것이다.

왜소한 모습의 보조 국사께서 커다란 나전칠기의자에 앉아 계신 모습의 배경 구갑문에서 스님의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빌었던 제자들과 불자들의 간곡한 기원(祈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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