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찰 만들기

▲ 익산 미륵사지 연지

연지(하)

우리나라 사찰에 조성된 못 가운데에서는 불국사 구품연지(九品蓮池)가 가장 대표적이다. 구품연지의 존재는 불국사 창건 이후 중창과 중수의 역사를 연대기식으로 서술한 <불국사고금역대제현계창기(佛國寺古今歷代諸賢繼?記)>를 통해서 전해진다. 물론 구품연지가 불국사를 창건하면서 만든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불국사고금역대제현계창기>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정도면 사중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 강진 백련사 연지

구품연지는 정토신앙에서 말하는 구품연대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정토에 왕생하는 이가 앉는 9종의 연화대가 구품연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품연지라는 명칭을 보면 이 못은 <관무량수경>에서 볼 수 있는 극락정토의 연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불국사고금창기>에 “가경(嘉慶)삼년(정조 3년) 무오년에 연못의 연잎을 뒤집다”라는 기록이 있어 단지 명칭만 붙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연을 심어 연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연지였다.
구품연지와 더불어 불교전래 초기에 백제 땅에 창건된 부여의 정림사지와 익산의 미륵사지에서도 연지를 볼 수 있다. 이 두 사찰의 연지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동서양측에 조성됐다. 발굴조사과정에서 연줄기와 연꽃이 탄화된 흔적들이 발견되어,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연이 전해져 식재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인가 고려시대의 연꽃 씨를 처리하여 꽃을 피운 것을 보면서 연꽃이야말로 불법처럼 영원히 멸하지 않는 진리의 상징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고 환희심을 가졌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 부안 내소사 연지

고려ㆍ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연지는 지속적으로 조성됐다. 우리나라 사찰에 만들어진 지당가운데에서 연지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는 백련사 연지, 선암사 연지, 송광사 연지, 내소사 연지, 개심사 연지, 통도사 구룡지, 건봉사 쌍지 등이 대표적이다. 심지어는 평양의 광법사에도 일주문 좌측에 연지가 조성돼 있어 부처님의 향기가 온 세계에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전래 초기에 조성된 연지는 절에 들어가는 남문이나 중문 앞에 조성된다. 정림사지나 미륵사지 혹은 불국사 구품연지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연지가 성속을 구분하는 기능을 가졌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연지는 사찰을 장엄하는 기능이 주가 된다. 그러니까 사부대중으로부터 가장 쉽게 인식될 수 있는 곳에 연지를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고려시대 이후에 조성된 사찰의 연지가 위치적으로 공통성을 갖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 부여 정림사지 연지

연지의 형태는 대부분 방형이다. 정림사지와 미륵사지의 연지가 방형이고,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방형지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불국사 구품연지는 타원형에 가까운 곡지(曲池)이다.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조성된 안압지, 구황동원지(九皇洞園池), 용강동원지(龍江洞園池) 역시 곡지인 것을 보면, 아마도 그 당시 경주 땅에서는 곡지가 유행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는 우리 땅에서 곡지형 연지의 모습을 찾기 어려워진다. 곡지의 소멸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뚜렷한 연구성과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볼 수 있었던 곡지가 일본정원에서는 전통적인 양식으로 정착하여 지금도 꾸준히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 순천 선암사 연지

최근 여러 사찰에서 플라스틱 함지에 연꽃을 심어 사찰을 장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보면 연꽃은 꼭 연지에 심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마당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는 도심사찰의 경우에는 연지를 만들 수가 없으므로 이러한 방법을 도입하는 것을 권장할만하다. 신촌 봉원사의 경우 매년 함지에 연꽃을 심어 연꽃축제를 연다. 서울 한복판에서 연꽃축제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운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량을 아름답게 장엄하는 것은 꼭 형식을 제대로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적은 예산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사찰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 서울 봉원사 연꽃축제

 

 

▲ 인도 엘로라 석굴의 연지

 

 

▲ 평양 광법사 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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