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시니카

새해 들어 팍스 시니카(Pax Sinica)란 말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대칭어이다. 과거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이제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로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는 뜻이겠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G2, 즉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된 중국은 빠른 산업발전과 군사력 신장을 통해 새로운 패권국가(覇權國家)로 부상하고 있다. 더욱이 복지에만 몰두하다 경제가 거덜난 EU와 월가의 탐욕으로 침체한 경제를 아직도 안고 허덕이는 미국 때문에 세계는 중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제 경제든 군사든 지구촌의 풍향은 미국보다 중국에 먼저 물어봐야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태평양 건너 미국만 바라보고 산 우리로서는 이제 새삼 중국의 패권시대에 대비해야 할 국가적 전략도 필요하게 되었다.

 

왕도와 패도

패권이란 힘으로써 사람이나 국가를 복속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전국시대의 맹자(孟子)다. 맹자는 “무력으로 인정(仁政)을 가장하는 자는 패자(覇者)다. 패자는 반드시 큰 나라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도덕으로 인정(仁政)을 실천 하는 자는 왕자(王者)다. 왕자는 큰 나라를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탕임금은 70리로서 왕자가 되었고 문왕은 100리로서 왕자가 될 수 있었다”(공손추). 맹자의 이 말에서 이른바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란 말이 생겼다. 왕도란 이덕복인(以德服人), 즉 덕으로써 사람을 복속 시키는 것이고, 패도란 이력복인(以力服人) 즉 힘으로써 억지로 사람을 복속시키는 것이다. 덕으로 사람을 복속시키면 그것은 마음으로 열복하여 따르는 것이니 이것이 심복이요, 힘으로 사람을 복속시키면 마지 못해 따르는 것이니 이것은 일종의 가복(假服)이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계승했다. 그리고 이후 유교의 이상정치는 왕도에 있었다.

그런데 중국 역사상 맹자가 말한대로 탕임금이나 문왕이후 왕도정치를 제대로 실행한 제왕은 없다. 전국시대는 물론 진, 한, 당, 송, 명, 청에 이르기까지 역대 제왕들은 힘으로 제국을 건설하고 또 그 힘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중국과 이웃한 약소국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패도정치로 일관했던 것이다. 무력으로 상대방 나라들을 제압하는 패도정치는 필연적으로 『기미』정책을 수반했다. ‘기’는 말의 굴레이고 ‘미’는 소의 고삐다. 교묘한 명분을 내세워 이웃 소국들에게 굴레를 씌우고 고삐를 매어서 자기들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이 기미정책이었다. 중국 역대 제왕들은 다른 민족에 대하여 이러한 통제정책을 썼던 것이다. 그들의 너그러운 듯한 미소 속에는 언제나 ‘기미’의 무서운 속내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대국 중국 역시 그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이이제이와 도광양회

그런데 패권주의란 말은 모택동 중국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60년대말부터 모택동은 미국과 구소련이 세계를 무력으로 지배하려한다는 뜻에서 양국을 패권주의(hegemony)자들이라고 맹비난하였다. 그러나 이런 말로 미, 소를 맹공한 중국이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서 패권국가란 말을 듣게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모택동은 미, 소를 패권주의자들로 몰면서 자신은 이이제이(以夷制夷)정책을 썼다. 소련으로 하여금 미국을 견제케 하고 또 미국으로 하여금 소련을 역시 견제케 하면서 중국은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애서 다치지 않고 균형자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이후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은 묘한 4자성어를 통하여 대내외정책의 방향을 나타냈다. 도광양회(韜光養晦)는 잘 아는대로 덩샤오핑의 정책용어. 칼집에다 칼날의 빛을 감추고 은밀히 어둠속에서 힘을 기르는 것이 도광양회다.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때 세계는 중국의 속내를 잘 몰랐다. 덩샤오핑은 또 주변국을 중국의 세력범위 안에 묶어두고 통제하는 기미정책을 달성하기 위해 도광양회를 외교노선으로 삼았다고도 한다. 실로 무서운 패도(覇道)이다. 장쩌민은 해야할 일은 꼭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 또 지금의 후진타오는 평화로운 가운데 일어선다는 화평굴기(和平堀起)다. 그리고 화해(和諧)사회 건설이다.

 

대국굴기와 패권주의

2012년 중국은 대변란이 없는 한 시진핑(習近平)의 시대를 열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시진핑은 10월에 제18대 당대회를 거쳐 총서기에 오르고, 2013년 3월 국가 주석에 취임 할 것이다. 1953년생인 시진핑은 2008년부터 국가 부주석, 2010년부터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맡고 있다. 그는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시중쉰(習仲勳)의 아들로 제5세대 지도자가 된다. 시진핑은 “일반 대중은 역사를 만드는 원동력이다”라고 할 만큼 자유주의자로 알려졌다. 그리고 2009년 티벳트 반정부 시위때 인권문제가 국제적으로 불거지자 “배부르고 할 일 없는 서양 사람들이 간섭을 한다”고 직격탄을 날릴만큼 과감하고 직선적이다. 젊고 패기있는 그의 이런 면모로 보아 시진핑 시대는 중국 대외정책에 큰 변화를 예고한다. 지금 중국의 경제력 군사력 등 국력과 새로운 지도자의 리더십으로 보아 앞으로 중국은 그들이 흔히 쓰는 대국굴기(大國堀起)로 나아 갈 것이 분명하다. 중국이 큰 나라로 우뚝선다는 것은 지난날 역사로 보아 패권주의로 나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패권은 힘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자의 권력이다.

모든 권력은 총구(銃口)로부터 나온다고 한 공산중국 제1세대 지도자 모택동의 말을 상기하면, 중국 공산주의에서 덕치의 왕도(王道)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월 이명박 대통령은 한,중 FTA를 합의 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저들의 패권주의를 극복하려면 어떠한 방법이든 양국이 서로 윈윈(wln-win)하는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길은 바로 불교의 자리이타(自利利他)에 있다고 믿는다. 다행이 한.중 양국은 정치제도는 서로 다르더라도 종교문화적 측면에서는 불교를 통하여 상당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 66년부터 76년 모택동이 죽기까지 진행된 문화대혁명 기간에 있어 그때 홍위병들은 자기들 조상 공자를 비판하고 그 문화를 때려 부셨지만 불교의 자비신앙에 대해서는 손상을 입히지 않았다. 그래서 관음성지나 그 도량은 훼손을 면했다. 자리이타는 대승의 근본으로 자비행에 든다. 양국이 장차 이와 같은 자리이타의 대승정신으로 정치 경제면에서 서로 윈윈하는 길을 찾는다면 한ㆍ중은 다같이 우열(優劣)없는 평등관계에서 가장 성실하고 내실 있는 동반자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자리이타, 이것이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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