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화의 선원총림을 가다 45회-중국ㆍ한국ㆍ일본의 선원(禪院)의 같은 점과 다른 점

▲ 간화선의 거장 대혜종고가 법을 폈던 향주 경산사

선(禪)의 본고장이자 발상지는 중국이다. 5가(家) 7종(宗)의 다양한 선풍을 비롯하여, <임제록>ㆍ<벽암록>ㆍ<무문관> 등 유명한 선어록과, 그리고 ‘무(無)’ ‘간시궐’ ‘마삼근’ 등 오늘날 우리가 참구하고 있는 화두도 모두가 중국에서 형성된 것이다. 선의 뿌리는 중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근현대 중국불교는 아쉽게도 신해혁명과 문화혁명(1966~1976) 등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인해 고풍 나는 가람은 홍위병들에 의해 90%가 파괴되고 지금은 200년 된 당우(堂宇)도 보기가 쉽지 않다. 사찰은 모두 그들이 점령하여 공장이나 제재소, 혹은 돼지 축사(畜舍) 등으로 사용했고, 스님들은 강제로 환속 당하거나 절에서 쫓겨났다.

문화혁명 기간 불교는 무위도식하는 무산계급(無産階級), 부르주아 계급으로 규정되어 유교와 함께 파괴의 대상이 되었다. 공자의 상(像)이 모셔져 있는 사당은 허물어지고 달마ㆍ육조혜능ㆍ마조ㆍ임제 등 유명한 선승들이 법을 폈던 사찰도 여지없이 파괴됐다. 폐허, 그것이었다. 명청(明淸) 때 당우가 남아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세납 70~80된 몇몇 방장을 제외하면 법랍 30년 이상 된 스님도 드물다. 중국 사찰의 방장 나이가 평균 40대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예로 간화선의 거장 대혜종고가 법을 폈던 항주 경산사(徑山寺) 같은 곳은 남송 당시 5산 가운데 1위로서, 1500명이나 넘는 납자가 수행했던 중국 최대의 총림이었다. 서호(西湖) 옆에 있는 정자사(淨慈寺)도 5산 총림 가운데 4위로서 법안종 도량이었다. 그러나 이 기간  90%가 파괴되어 경작지가 되었다. 최근에 다시 콘크리트로 크게 급조하고 있다. 또 5산의 2위였던 영은사도 현존 건물은 대부분 근래 20~30년 사이에 새로 지은 것이다. 다행히 묵조선의 도량 천동사와 영파 아육왕사는 청대 당우가 남아 있다.

중국불교는 짧게는 문혁을 전후(前後)한 20여 년 동안, 길게는 신해혁명 이후 70여 년 동안 사상 유례 없는 법난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종파를 따질 것 없이 문화와 전통은 물론 수행법도 거의 단절되었다.
최근 중국은 세계제패와 관광수입을 위하여 다시 사찰을 복원하고 있는데, 주로 콘크리트로 짓고 있다. 대신 건물은 입이 벌어질 정도로 크다. 사찰관리도 모두 당(黨)에서 관리, 통제하고 있는데, 근래 하나 둘 씩 단순히 관리권만 스님들에게 맡기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몇 몇 고승들이 전통을 재건하고 있어서 미래를 기대해 볼만하다. 선종사원에 한해서 중요한 몇 가지를 뽑아서 중국과 한국, 일본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

선원총림의 가람: 총림의 가람은 7당가람((七堂伽藍) 구조이다. 남송 때의 정형으로서, 법당(설법당)·불전(佛殿, 대웅전)·고원(庫院, 부엌)·승당(僧堂, 禪堂, 좌선당)·욕실(浴室)·동사(東司, 화장실), 산문(山門, 정문. 三門이라고도 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전을 중심으로 앞에는 산문이 있고 뒤에는 법당, 좌측에는 승당, 우측에는 고원이 있다. 승당 밑에는 동사, 고원 밑에는 욕실, 그리고 법당 위에는 방장(주지실)이 있고 그 밖에 좌우측으로 여러 채의 요사를 배치한다. 현재 7당가람 구조에 맞는 곳은 (필자가 본 곳에 한함) 일본 조동종 영평사이고, 그 밖에 규모가 큰 일본 선종사원은 대부분 7당구조이다. 중국은 천동사가 이 구조이고, 우리나라는 무관하다. 다만 회암사 옛터가 7당 구조이다.

승당(僧堂; 禪堂, 좌선당) : 승당 내부는 가운데가 복도이고 사방 벽 쪽은 마루(즉 長連床)로 되어 있다. 마루에서 취침, 좌선, 공양한다. 현재 중국의 경우 영파 천동사, 아륙왕사의 선당 내부의 구조와 형식이 당송시대의 모습으로서 청규의 설명과 일치한다. 백림선사, 임제선사, 오대산의 현통사, 벽산사도 그와 같다고 하나 사진에서는 좀 차이가 있었다. 약 80%는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영평사의 경우는 현재 90% 이상이 남아 있는데, 과찬한다면 당송시대 모습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약 200명 정도가 여기서 좌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온돌 문화의 영향 탓인지 한 곳도 없다. 다만 지리산 칠불암 아자방이 형식면에서 같다. 아자(亞字) 중앙은 복도이고 단(單) 즉 벽쪽 높은 곳은 취침, 참선하는 곳이다.

승형문수상(僧形文殊像) : 선당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상이나 승형문수상(머리 깎은 사문형)을 모시게 되어 있다(간혹은 달마상, 2조혜가상을 모시기도 함). 지혜가 있어야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수상을 성상(聖像), 성승상(聖僧像)이라고 하는데, 중국 천동사와 아육왕사, 그리고 일본 영평사, 임제종 향악사 등에는 모두 승형문수상을 모시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정하지 않다. 최근에 지은 선원은 불상을 모신 곳도 있다.

발우공양 : 청규에는 4개의 발우를 가지고 승당(선당)이나 중료(衆寮, 대중방)에서 공양하도록 되어 있다. 당대에는 승당, 송대에는 중료에서 공양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전통대로 발우공양을 하고 있으나, 뜻밖에도 중국은 발우공양이 사라진지 오래다. 주발(周鉢) 1개 또는 두 개를 가지고 재당(齋堂, 식당)에서 공양한다. 대만도 같다. 언제 사라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근대 100년 사이가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다.
화두(공안) : 공안은 조사선 시대의 용어이고, 화두는 간화선의 용어이다. 지금 중국에는 ‘무’ ‘간시궐’ ‘마삼근’ 등 전통적인 화두는 사라지고, ‘염불자수(念佛者誰, 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참구하고 있다. 각 선원마다 선당 입구에 ‘조고화두 염불자수(照顧話頭, 念佛者誰)’가 붙어 있다. 명대 이후 선과 정토가 손을 잡은 영향인데, ‘염불자수’로 통일된 것은 청말의 최고의 고승인 허운화상의 영향이다. 우리나라는 주로 무자화두를 참구하고 있고 그 다음이 ‘이뭣고’이다. 일본의 경우 영평사는 묵조선이므로 화두를 참구하지 않는다. 임제종은 ‘화두’라는 말보다는 ‘공안’이라는 말을 쓴다. <벽암록> 100칙과 <무문관> 48칙, 그리고 <갈등집?과 <임제록> 등에서 뽑아서 약 200여 측 이상의 공안을 참구하는데, 하나씩 하나씩 차례대로 모두 참구하고 있다.

상당법어, 조참(朝參), 만참(晩參), 소참(小參) : 방장이나 조실이 법상에 올라가서 행하는 법어를 상당법어라고 하는데, 당대에는 5일마다 한 번씩 있었다. 한 달에 6회(1일, 5일, 10일, 15일 20일 25) 있었는데, 그것을 ‘5참상당(五參上堂)’이라고 한다. 송대에는 15일마다 한 번씩 있었다. 조참은 아침법문이고, 만참(晩參)은 저녁법문이며, 소참(小參)은 필요에 따라 행하는 수시법문인데, 현재 중국 선종사원에는 송대의 회수도 지키는 곳도 거의 없다. 일본의 경우에서는 송대 방법을 거의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실이나 방장이 있는 선원에 한해서 결제, 해제 때만 상당법문을 한다. 그리고 조참, 만참, 소참을 하는 곳은 없다.

입실(入室), 독참(獨參) : 입실, 독참은 개인지도, 개인 상담이다. 자신의 참구한 공안이나 화두를 가지고 방장실에 들어가서 개별적으로 점검 및 지도 받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중국은 잘 알 수 없으나 단절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일본은 청규대로 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지금 독참이 없어졌다. 상당법어 등 법문과 독참은 좌선과 함께 성불(成佛) 작조(作祖) 중요한 시스템이다. 속히 복원해야 한다.

제창(提唱) : 조사어록이나 고칙, 공안을 제기(提起), 거량, 강독하는 것임. 중국은 임제선사(臨濟禪寺)는 임제록을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당송시대처럼 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책은 금물이라고 하여 경전은 물론 조사어록도 강의, 제창하지 않는다. 잘못된 것으로서 조사어록, 고칙, 공안은 제창해야 한다.

기상시간 : 청규에는 5경(更)종이 울리면 일어난다고 하여 4시 기상이다. 지금 중국은 4시이고, 일본 영평사도 여름엔 4시, 겨울엔 4시 30분이다. 임제종은 3시 30분임. 우리나라는 3시 기상. 저녁예불 : 예불은 저녁 공양 전에 한다. 청규에는 포시(哺時)에 만과(晩課, 저녁예불)한다. 지금 중국은 오후 4시 혹은 4시 30으로 거의 같음. 일본도 같음. 한국만 저녁 공양 후에 예불하고 있다.

좌선 회수와 시간 : 당대(唐代)에는 입실(즉 독참, 개인 지도), 청익(추가 문의)만 규정하고, 좌선회수와 앉아 있는 시간에 대해서는 개인의 능력 여부에 맡겼다(除入室請益, 任學者倦怠, 或上或下, 不拘常準). 남송 때부터 이른바 ‘사시좌선(四時坐禪)’이라고 하여 하루 4차례 좌선했다. 즉 후야좌선(後夜坐禪, 새벽 4시40분 경부터 공양(6시) 직전까지), 조신좌선(早晨坐禪, 오전 9시경부터 점심공양 직전까지), 포시좌선(哺時坐禪, 포시는 辛時로서 오후 3시에서 5시를 가리키지만, 실제 포시좌선은 오후 2시경부터 4시 예불 전까지임), 황혼좌선(黃昏坐禪, 저녁 좌선으로서 ‘초야좌선’이라고도 함. 대략 저녁 7시부터 8시 40분 경까지). 1회 좌선 시간은 일주향(一炷香) 1개 타는 시간으로서 약 40분임. 상당법어, 독참, 보청(울력), 행사 등이 있는 날에는 좌선을 생략한다. 따라서 실제 하루 좌선 시간은 6시간을 넘지 않는다.

선원에서 쓰는 일상용어와 소임 명칭 : 현재 중국 선종사원에서 쓰고 있는 용어 가운데, 당송 시대 때 청규의 용어는 약 50% 정도가 되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 원대와 명대 이후의 명칭이다. 일본 임제종과 조동종은 당송시대 명칭을 70% 이상 사용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30% 정도에 불과하다. 용상방, 장군 죽비, 용맹정진, 간병, 천수물, 방부, 입방, 큰방 등은 모두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말로서 청규에는 없는 말이다.

원래 용상방은 집사단(執事單), 장군죽비는 경책(警策), 7일 용맹정진은 선칠(禪七) 혹은 타선칠(打禪七), 간병은 열반당주(主) 혹은 연수당주(延壽堂主), 천수물은 절수(折水), 천수통은 절수통(折水桶)이라고 한다, 방부는 괘탑(掛塔), 큰방은 중료(衆寮), 다각은 다두(茶頭), 해우소(화장실)는 동사(東司), 객승(客僧)은 잠도(暫倒, 잠시 온 스님), 객실(客室)은 단과료(旦過寮, 하루 묵고 가는 집), 선방은 선당(禪堂), 좌선당이고, 울력은 보청(普請), 작무(作務)라 하고, 새벽예불은 조과(朝課)라 하고, 취침은 개침(開枕, 잘 때 벼개함을 열고 벼개를 꺼내기 때문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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