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어릴 때부터 ‘깨달은 사람’이 되겠다는 거창하고도 야무진 꿈을 꾸고 나서 칠십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해놓은 일이라곤 원효의 저술 세 가지를 역주한 것이 전부다. 물론 지금도 원효의 <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를 몇이서 역주하고 있지만.

어릴 적 꿈인 ‘깨달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던 것일까. 우리 한국불교사상의 특징을 가장 잘 대표한다고 평가되는 원효를 만나 그의 저술을 판독하는 일은 깨닫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됐고, 그래서 원효에 매달린 지 20여 년 만에 <대승기신론소별기 (大乘起信論疏別記)>의 역주서를 내었다. 또 10년 간격으로 <금강삼매경론 (金剛三昧經論), <이장의 (二章義)> 등의 역주서가 차례로 나왔다.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은 보다 훌륭한 작업을 위해 원문 이해에 필요한 한문ㆍ논리학ㆍ유식ㆍ구사ㆍ중관 등의 공부도 병행했기 때문이다. 또 팀을 만들어 몇 차례(보통 3~4회)나 절차탁마를 하느라 시일이 더 소요됐다.

40여 년 전 한국의 불교사상가들을 섭렵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이들에 대한 정확한 번역서 내지 역주서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원효(元曉)를, 의상(義湘)을, 지눌(知訥)을, 기화(己和)를, 휴정(休靜)을 제대로 알고 이들의 사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 저술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역주서가 선행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불교사상사 전반을 개괄하고, 번역하려는 저술의 언어(한문 경전인 경우) 즉, 한문을 독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10년 이상 공부해야 하며, 번역 대상서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유식이면 유식, 구사면 구사, 중관이면 중관 그 밖의 논리적인 사고방식 등을 정확하게 학습해야 한다.

불경의 번역은 하루아침에 뚝딱 일본의 <국역일체경(國譯一切經)>이나 재번역하는 수준이어서는 훌륭한 번역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동국역경원의 <한글대장경>은 주석이 거의 없다. 있다 하더라도 하나마나한 주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십수년 전 두어 차례 동국역경원의 <한글대장경> 완간에 대한 축하 및 반성의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역경원의 번역서를 재검토해야 하며, 그러려면 일종의 도제양성소 같은 것을 만들어서 한문ㆍ철학ㆍ논리학ㆍ구사ㆍ유식ㆍ화엄 등의 과목을 학습시키고, 나아가 어떤 하나의 저술을 역주하기 위해 팀을 만들어 철저히 토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러나 마이동풍으로 끝나 버린 것 같았다. 그 뒤 불교신문 등에 수차례 이런 내용을 역설했으나, 역시 무반응이었다. 오역이라도 완간된 것만으로 장한 일을 한 것이라며, 거기에 안주하는 태도들이었다. 불교 전적의 훌륭한 번역을 위한 나의 비원은 이렇게 무참히 묵살되어 버렸다.

국립고전국역원에서는 국역사 양성을 위해 국역원 자체뿐 아니라 국역사 석ㆍ박사 과정을 성균관대와 제휴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도 <승정원일기 (承政院日記)> <일성록 (日省錄)> 등 기타 중요 문집의 초역에만도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를 30년으로 단축하기 위해 국역원 자체뿐 아니라 지방대학 또는 연구기관에 용역을 주어 국역사업을 재촉하고 있다. 우리 불교 전적들의 보다 철저한 역주를 위해 우리 불교계에도 도제양성까지 염두에 둔 또 하나의 독립된 고전국역원의 성립을 제창을 바라 마지않는다.

이는 대학과 종단에서 다 같이 힘을 합해 국가의 지원까지 끌어내는 힘든 작업이 될 것이다.

앞으로 사는 날까지는 일단 원효에 매달려 보겠지만, 우리 불교사상가들에 대한 보다 빠른, 보다 많은 역주서가 나올 수 있도록 후학 양성을 포함한 종단 내지 국가 차원의 지원을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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