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기행7 - 무위사

▲ 무위사

 자연 그대로의 가치, 절대고요의 공간

“하는 것이 없는 절이라. 이름이 좀 독특하다.”

무위사 경내로 들어가는 문은 막돌로 만든 계단 위에 있다. 입을 벌린 쩍 벌린 용이 ‘월출산무위사’라는 현판의 좌우 기둥에서 부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의주를 물지 않은 입으로 “안녕 하슈?” 하고 인사라도 건네는 듯.

문 안에는 사천왕이 모셔져 있는데 울퉁불퉁한 생김새는 여느 절과 다름이 없었다. 각 천왕들의 발아래에 사람과 귀신같은 것들이 밟혀 있었다. 서방광목천왕 발아래 있는 놈은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왕방울 눈을 위로 뜨고 씨익 웃는 모습이다. 나팔수씨의 눈에는 왠지 귀엽게 보였다.

“녀석들, 별로 고통스러운 표정이 아니네. 천왕들과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천왕들도 알고 보면 무서운 존재가 아니지. 죄 많은 사람한테는 무섭겠지만.”

사천왕의 발아래에 사람이나 귀신을 조각해 둔 것을 생령좌(生靈座)라고 한다. 죄를 지어 도량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존재[生靈]들을 힘으로 항복시키는 것이다. 대부분 익살스런 표정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아마 누구나 본심은 착하니까 반성하면 용서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첫 눈에 국보다운 포스가 느껴졌다. 훤하게 트인 절 마당의 정 중앙 막돌로 쌓은 석축 위에 묵직한 중량감으로 앉아 있는 극락보전. 정면에는 4개의 배흘림기둥이 서 있고 빗살무늬의 문살은 수더분했다. 건물이 전체적으로 직선과 단출함의 멋을 추구하므로 문살도 화려함을 피한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기둥 위에만 공포를 얹은 전형적인 주심포 양식이며 경사가 미끈한 맛배지붕은 비에 젖어 방금 세수를 한 것 같았다.

왼쪽 계단 옆에 안내판이 서 있었다.
 

무위사 극락보전

국보 제13호

극락보전은 불교의 이상향인 서방극락정토를 묘사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조선 세종 12년(1430)에 지어진 우리나라 대표적 목조건축 중 하나다.

건물 자체가 국보이지만 내부에는 조선 성종 7년(1476)에 그림을 끝맺었다는 화기가 적혀 있는 아미타후불벽화(보물 제1313호)와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 그림은 토벽에 그려진 가장 오래된 후불벽화로 화려하고 섬세했던 고려불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명작이다.

무위사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건물은 1555년에 건립된 것이나, 극락보전만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세종 12년(1430)에 건립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직선재료를 사용해 간결하면서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조선초기의 건물로 뛰어나다.


극락보전의 왼쪽 출입문 바로 앞에 종이 놓여 있었다. 종 아래는 마루를 깔지 않아 전돌을 깐 바닥이 보였다. 극락보전 바닥은 원래 전돌이었다. 근래 보수를 하면서 전돌을 걷어냈더니 벽화에 습기가 차서 다시 전돌을 깔고 그 위에 마루를 깔았다. 마룻바닥을 뚫어 놓음으로 아침저녁 예불과 각종 의식 때마다 치는 종소리는 땅 속 깊은 세계까지 울려 퍼질 것이다. 종은 지옥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치는 것이니까.

▲ 무위사 내경

“세상에….”

부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건물 자체가 국보이고 두 점의 보물 벽화가 있다고 하여 뭔가 다를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극락보전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콱 막혀 왔다. 중앙의 불단에 모셔진 부처님 보다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반대편 벽의 윗부분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기둥과 기둥사이를 검은 테두리로 하여 화면을 구성하고 그 안에 아미타불과 좌우 협시 보살이 앉아 있는 그림. 자세히 보이지는 않아도 빛바랜 사진이 주는 아슴아슴한 추억 같은 떨림이 가슴을 채웠다.

중앙 수미단 위에는 아미타 부처님, 오른쪽은 관세음보살 왼쪽은 지장보살이 모셔졌다. 이 목조삼존불은 극락보전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후불벽화의 좌대에 맞춰진 크기가 예배하는 사람에 대한 섬세한 배려로 느껴진다. 무작정 큰 부처님을 모셔서 후불벽화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 요즘 법당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아무래도 부부의 눈길은 후불벽화로 더 쏠렸다. 삼배를 하고 나서 합장 한 채 벽화를 찬찬히 보았다. 벽화를 그리기 위해 수미단 뒤로 굵은 기둥 두 개를 세웠고 닫집은 만들지 않았다. 목조 아미타삼존불의 크기나 닫집의 생략은 이 벽화를 통해 극락 세상의 고귀함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전쟁과 가뭄 등으로 많은 인명이 죽음을 당해야 했던 조선시대 무위사는 극락왕생 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외로운 영혼들을 위한 수륙대재를 많이 지냈던 사찰이다. 때문에 이 벽화의 가치는 예술성보다는 신앙적 측면에서 더 강조됐을 것이다.

“500년 넘은 벽화가 이렇게 섬세한 선과 아름다운 색상을 간직하고 있다니 정말 놀라운 작품이다.”

“아마 벽화를 조성하는 전통 기법에 따라 최고의 정성을 들여서 그렸을 거야.”

벽화는 흙벽에 그리는 토(土)벽화와 돌판 벽의 석(石)벽화 나무판에 그려 붙이는 판(板)벽화 등으로 나뉘지만 우리나라 사찰 벽화는 대부분 흙벽에 그려졌다. 벽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벽체를 만든다. 벽체는 나무를 엮어 세운 벽심(壁心)에 짚과 진흙을 섞은 반죽을 두 세 겹 바르고 편편하게 한 뒤 회토를 칠해 완성한다. 다음 가칠(假漆)의 단계는 화면의 기초를 이루는 작업으로 아교를 비롯한 여러 재료가 쓰이고 이 작업만을 담당하는 가칠장이 따로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화면이 완성되면 타초(打草)의 단계로 넘어가는데, 타초란 미리 먹선으로 디자인 한 그림의 선을 따라 작은 구멍을 뚫어 만든 화본지를 벽면에 대고 호분을 넣은 주머니로 두드린다. 그러면 하얀 가루가 구멍을 따라 벽면에 선을 나타내며 그림의 윤곽을 드러낸다. 그 다음 단계는 점선의 윤곽을 따라 붓으로 먹선을 그리고 채색해 벽화를 완성한다.

“구석구석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곳이 없었나 봐.”

“정말 대단해. 천정 좀 봐. 지금 빛바랜 이 모습도 아름답지만 처음 이 그림들이 완성 됐을 때는 어땠을까? 보는 사람들이 저절로 환희심에 눈물을 흘렸을 것 같아. 지금 빈 공간의 그림들을 그대로 떼어서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대. 보존이 잘 되어 모든 그림이 처음처럼 이 법당에 모여 있다면 세계적 법당이 되고도 남을 텐데.”

부부는 법당 뒤로 돌아가 후불벽의 뒷면에 그려진 수월관음벽화를 친견했다. 앞쪽의 아미타극락회도의 화기(畵記)에는 1476년 아산 현감을 지냈던 강노지(姜老至)와 수십 명의 시주로 해련(海蓮) 대선사 등이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수월관음벽화 역시 그 때 그려진 벽화다.

수월관음도의 관세음 보살님은 하얀 옷을 입고 있다. 그래서 백의관음(白衣觀音)이라고도 한다. 바람에 살포시 날리는 옷깃이 섬세하게 묘사됐고 오른손에는 버들가지를 왼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버들가지는 중생의 각종 병을 치유해 주고 고통을 없애주고 정병의 물은 중생들이 갖는 욕망의 갈증을 없애준다.

▲ 무위사 일주문

세월을 뛰어넘은 찬란한 색채의 향기

아침 이른 시간이라 성보박물관은 조용했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유리로 된 진열대 속 벽화들이 시간을 멈춰 놓고 부부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한참 입을 다물고 그림들을 들여다보던 나팔수씨가 말했다.

“고구려 스님 담징이 그렸다는 일본 나라현의 호오류지(法隆寺) 금당벽화 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렸었지? 이 대목에서 그 소설이 생각나네.”

“그래 정한숙의 소설 ‘금당벽화’. 요즘도 교과서에 실리는지 모르겠지만.”

부부는 관음보살을 친견하는 마음으로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삼존불화 아미타내영도 오불도 2점, 관음보살도를 비롯한 보살도 5점, 주악비천도 6점, 연화당초향로도 7점, 보상모란문도 5점, 당초문도 1점, 입불도 1점 등을 감상했다.

“자, 이 벅찬 감동이 식기 전에 천불전에 가서 108배나 할까요?”

“아침 운동은 혼자 하세요. 나는 이 벅찬 감동으로 3배만 할 테니.”

부부는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아줌마 파마를 한 미륵보살이 계시는 미륵전과 샛별처럼 빛나는 눈이 오금을 저리게 하는 호랑이가 그려진 월출산산신각 문 앞에서 꾸벅꾸벅 절을 하고 나한전을 지나 개울을 건너 천불전으로 갔다.

대흥사 천불전처럼 법당의 3분의 2정도를 차지하는 불단에 금빛 부처님 천분이 앉아 불두화 향기에 코가 간지럽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위사의 아침풍경이 극락의 한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울건너 무위사 경내가 극락이면 천분의 부처님이 계시는 여기도 극락일 것이다. 문득 의심 한 덩어리가 해처럼 떠올랐다.  

“그렇다면, 하얀 티셔츠를 입고 108배를 하고 있는 이 여자는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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