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화의선원총림을찾아서41- 운수행각(雲水行脚)과 만행(萬行)

▲ 2010 통도사 극락암 하안거 해제
선원총림에는 1년에 두 번 결제와 해제가 있다. ‘결제(結制)’란 ‘안거제도를 묶는다’는 뜻으로, 석 달 동안 한 곳에 정주(定住)하면서 참선 수행하는 것을 말하고, ‘해제(解制)’란 ‘안거제도를 푼다’는 뜻으로 운수 행각하는 기간을 말한다.

총림에서 여름 결제(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7월 14일이고, 겨울 결제(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다음 해 1월 14일이다. 결제가 끝나는 날부터 다음 결제가 시작되기 하루 전까지를 해제(解制), 또는 ‘해제기간(解制期間)’이라고 한다.

선승들은 해제가 되면 석 달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모두 운수(雲水) 행각(行脚)의 길에 오른다. ‘구름(雲)처럼, 흘러가는 물(水)처럼 걸어 다닌다’는 뜻으로, 인도에서는 ‘유행(遊行)’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도 유행 도중 쿠시나가라에서 입멸하시게 되는데 그 과정을 기록한 경전이 장아함경 속에 있는 <유행경(遊行經)>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만행(萬行, 갖가지 선행을 함)’이라고 한다.

만행은 해제 날부터 시작된다. 하안거 해제일은 7월 15일, 동안거 해제일은 1월 15일인데, 이날 선종총림에선 해제의식을 거행한다. 해제의식의 끝맺음이자 정점은 주지(방장)의 상당법어이다. 법어를 끝으로 90일간의 결제가 끝나고 해제가 시작되는데, 점심공양이 끝나면 주지(방장) 이하 수좌, 감원 등 총림의 중요 소임자들은 대중을 위해 차(茶) 공양을 낸다. 덕담이 오가는 차공양이 끝나면 문도와 소임자 등 일부만 남고 모두 행각 길에 오른다. 납자들은 썰물처럼 걸망을 지고 산문을 빠져 나간다. 총림은 잠시 고요 속에 잠긴다.

선승들의 운수행각(만행)은 관광을 위한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저명한 선승을 찾아가 법에 대해 묻는 참선문법(參禪問法)의 하나로 ‘역참(歷參: 찾아 가서 묻다)’이라고도 한다. 즉 안거 3개월 동안 공부한 것을 테스트, 확인해 보는 한편 절차탁마하는 것이 행각의 본의이다.

선승의 행각에는 일정한 규범이 있다. 그것은 선문답(법담, 법거량)이다. 선을 주제로 한 1:1의 토론으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중요한 기연(機緣: 悟道의 계기)에는 행각 중 이루어진 것이 많다. 행각에 대해 <조정사원(祖庭事苑)> 제8권 ‘잡지(雜志)’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행각이란 것은 멀리 고향을 떠나 천하를 다니는 것을 말한다. 정루(情累: 정에 얽힌 것)를 벗어나 사우(師友)를 탐방하며, 법을 찾아 증오(證悟)하기 위함이다. 배움에는 일정한 스승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편력(遍歷: 만행, 행각)을 중(重)히 여긴다. 선재동자는 남쪽으로 가서 법을 구했고, 상제(常啼)는 동쪽으로 가서 청익(請益: 묻는 것)했으니, 이것이 곧 선성(先聖)의 구법방법이다. 영가(永嘉)선사가 말하기를 강산을 다니고 스승을 찾아서 도를 묻고 참선한다 하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行脚者, 謂遠離鄕曲, 脚行天下, 脫情捐累, 尋訪師友, 求法證悟也. 所以, 學無常師, 遍歷爲尙. 善財南求, 常啼東請, 蓋先聖之求法也. 永嘉所謂, 游江海涉山川, 尋師訪道爲參禪, 豈不然邪] <祖庭事苑>8 ‘雜志’”

선승의 지견(知見)과 정법에 대한 안목을 일컬어 ‘행각안(行脚眼)’이라 한다. ‘행각에서 얻어진 안목’이라는 말이다. 당 중기의 선승 약산유엄(藥山惟儼; 745~828)은 <전등록> 제14권에서 “반드시 행각안을 갖추어야만 된다[須具行脚眼始得, 약산유엄장]”고 하여 행각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많은 선지식을 만나야만 정법을 보는 안목과 지혜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선어록(禪語錄)에는 종종 ‘갱참삼십년(更參三十年)’이라는 말이 나온다. ‘다시 30년을 더 참구하라’는 뜻으로, 여기서 ‘30년’이란 선승으로서 수행해야할 최소한의 시간 단위이다. 적어도 그 정도는 참선 수행해야 조실이나 방장 자리에 올라 납자들을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후반 10여년은 운수행각에 치중하는데, 내로라하는 유명한 선승들을 찾아가서[歷參] 법담, 선문답을 나눈다. 고수(高手)들로부터는 한 수를 배우고 하수들에게는 한 수를 가르쳐 주기도 하지만, 목적은 일사일지(一事一知), 일기일회(一機一會)이다. 곧 객관적인 검증으로 적지 않은 수행승들이 상사각(相似覺: 혼자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것)을 가지고 깨달았다고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송대를 대표하는 선승 대혜종고(大慧宗?; 1089~1163) 선사도 17세에 입산해 30여년만인 46세 때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묵조선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이른바 화두참구의 간화선이다. 그리고 남송 최대의 선종총림인 항주 경산사(徑山寺) 방장(주지)의 자리에 올라 개당설법(開堂說法: 방장 취임 법어)을 하는 것은 그의 나이 49세 때이다. ‘개당설법’이란 한 선승에게 있어서는 곧 선불교의 전면에 서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운수행각(만행)이 곧 보임이다. 참선수행의 제1의 과정이 좌선이라면 제2의 과정은 간경과 조사어록 탐독이다. 그리고 제3의 과정이 운수행각이다. 만행은 내로라하는 수많은 선승들과의 만남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를 더욱 원숙, 탄탄하게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겪지 않고는 몇백 명이 수행하는 총림에서 납자들을 제대로 지도를 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화살보다 빠르고, 칼날보다 예리한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만행을 떠날 때 반드시 준비해야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가사와 발우는 물론이지만 그 밖에도 도첩(度牒), 계첩(수계첩), 면정유(免丁由), 그리고 좌하유(坐夏由)를 넣은 사부통(祠部筒)은 꼭 갖고 다녀야 한다. 도첩은 국가에서 발행하는 승려증이고, 계첩은 수계증명서이고, 면정유는 병역 및 노역면제증이고, 좌하유(坐夏由)는 전년도 하안거 증명서이다. 이 네 가지가 없으면 다른 총림에 가서 괘탑(掛塔: 입방)을 할 수 없음은 물론, 각 도읍의 성문(城門)도 통과할 수 없다. 만일 가짜임이 드러날 때는 곤장을 얻어맞고 퇴출된다. 각종 증명서를 넣는 통을 ‘사부통(祠部筒)’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당송 때 행정적으로 불교에 관한 것은 예부(禮部) 밑의 사부(祠部)에서 관장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운수행각하는 스님은 산립(山笠: 삿갓)ㆍ주장자(柱杖子)ㆍ계도(戒刀: 작은 칼)발낭(鉢囊)ㆍ양지(楊枝: 버드나무를 이겨서 만든 칫솔. 齒木이라고도 함)ㆍ조두(?豆: 세정제로서 녹두 등 콩으로 만든 가루 비누)ㆍ정병(淨甁: 물병)ㆍ좌구(坐具: 앉거나 누울 때 까는 깔개)ㆍ여수낭(濾水囊: 물을 거르는 주머니. 여수라, 녹수낭라고도 함) 등 20여 종이 넘는다.

선종총림에서는 해제 후 운수행각(만행)을 떠나는 납자(객승)들에게 약간의 노자(路資: 여비)를 준다. 액수는 보통 짚신 2~3켤레 값 정도로 오늘날로 치면 고무신 2~3켤레 값이다. 그것을 총림에서는 ‘초혜전(草鞋錢: 짚신 값)’이라고 하는데, 두 세 켤레면 걸어서 다른 절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선원이든 객승이 오면 통상적으로 짚신 두세 켤레 값만 준다. 

초혜전과 관련해 <임제록> 13~24단에는 의미심장한 법문이 나온다. 임제 선사는 법어를 통해 납자들에게 “천하를 운수행각하면서 허송세월한다면 받았던 짚신 값을 내 놓으라”고 다그친다.

“여러분! 진실로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오. 매우 심오하지만 나는 그 경지를 간파하고 있소. 산승은 종일토록 매일 같이 그대들을 위해 설파해 주지만 학인들(수행자)은 관심이 없소. 천 번 만 번 밟고 다니면서도 도무지 깜깜하오. 아무런 형체도 없으면서 밝고 뚜렷한 이것을 학인들은 믿지 못하고 언어문자(사량분별) 위에서 이해하려 하오. 나이 50이 넘도록 단지 송장을 짊어지고 여기 저기 천하를 허송세월하고 있오. 이렇게 짐을 지고 천하를 돌아다녔으니 반드시 짚신 값(草鞋錢)을 갚아야 할 날이 오게 될 것이오.[道流…擔却擔子天下走, 索草鞋錢有日在]”

임제 선사의 준엄한 일갈(一喝)이다. 진정으로 수행하지 않고 이 절 저 절 다니면서 시간을 죽인다면 짚신 값만이 아니라, 무노동으로 공양한 밥값도 내 놓아야 하리라. 염라대왕에게.

초혜전(草鞋錢)을 ‘양문전(兩文錢)’이라고도 한다. ‘동전 두 닢’이라는 뜻인데, 근래 우리나라 선원의 해제비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다.

운수행각을 한답시고 헛걸음이나 하는 납자를 칭해 ‘백답승(白?僧)’이라고 한다. 백답(白?)은 ‘헛된 걸음’을 뜻하는데, 여행을 위한 행각을 할 뿐, 깨달음에는 별 뜻이 없는 납자를 일컫는 말이다. 반대로 산이나 들녘에서 노숙하는 납자, 진정으로 운수행각하는 납자를 ‘야반승(野盤僧)’이라고 한다.

행각승(객승)의 예의범절에 대해 <선원청규> 1권 ‘단과(旦過)’ 장(章)에는 “산문에 들어서면 먼저 단과료(旦過寮, 客室)의 소재를 묻되, 단과료에 들어가면 짐을 풀어 놓은 다음 위의(威儀)를 갖추어 지객료(知客寮)에 가서, ‘잠도(暫到: 객승) 상간(相看: 문안)이오’ 라고 말하라. 지객스님이 나오면 3배하고 나서 하루저녁 묵고 갈 것인지, 괘탑(입방)하러 온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생략)”고 말하고 있다.

총림에서는 하루 밤 묵고 가는 객승(客僧: 행각승)은 ‘잠도(暫到: 잠시 온 스님)’라고 부르고, 새로 입방하고자 온 객승은 ‘신도(新到: 새로 온 스님)’라고 부른다. 그리고 객승이 묵는 객실(客室)을 ‘단과료’라고 부른다. ‘단과료(旦過寮)’란 ‘하루 묵고 가는 집’이라는 뜻인데, 원래는 저녁에 와서 아침이 되면 가야했기 때문이다.

청규에서는 “신도(新到)나 잠도(暫到)는 단과료에서 3일 이상 묵을 수 없다. 괘탑(입방)자는 괘탑하고 잠도는 다른 절로 가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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