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시대 선원에서는 경전공부를 했다
당송시대 선원에서는 경전공부를 했다
  • 윤창화 민족사 대표
  • 승인 2011.08.3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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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총림을 찾아서40- 좌선과 간경(看經)의 병행

▲ 2006년 남양주 봉선사 능엄학림
1000년 전 당송시대 선원총림에서는 경전을 보았을까? 우리나라 전통 선원에서는 대부분 ‘불립문자’를 내세워 경전이나 책은 일체 보지 말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책은 독약”이라고 까지 매도한다. 혹독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선불교가 정점에 달했던 당송 시대에도 과연 오늘날 한국 선불교처럼 간경(看經: 경전 공부)을 독약으로 여겼던가? 송대(宋代) 초후기 무렵 장로 종색 선사가 편찬한 <선원청규>(1103년)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당송시대에도 선당(禪堂) 밖, 좌선시간과 맡은 소임 외에는 <대승경전>과 <조사어록>을 많이 보았던 것이다.

장로 종색의 <선원청규> 4권 ‘장주(藏主)’ 장(章)에는 장주(藏主: 장경각 담당)의 임무와 책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장주(藏主)는 금문(金文: 경전)을 관장한다. 장주는 궤안(几案, 책상)과 차(茶)ㆍ기름(油)ㆍ불(火)ㆍ향촉(香燭)을 준비해(…) 간경(看經)하고자 하는 대중에게 제공해야 한다. 대중으로서 책상을 청할 때는 먼저 간경당 수좌(장주)에게 아뢰어 간경할 좌석이 있는지 물은 다음 청한다.”

현존하는 여러 청규 가운데 가장 자료적 가치가 높은 청규가 <선원청규>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이 단락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당송시대 선원에서 분명히 경전을 봤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또 장경각 개폐(開閉) 시간에 대해 “(장주는) 조신(早晨: 새벽)에 대중이 기상한 이후부터, 저녁 방참(放參) 전까지 개폐의 종을 쳐서 경전을 열람케 하되 장부에 기록한 다음 출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새벽부터 대중들이 기상하면 장경각 문을 열고, 저녁에는 방참(4~5시경)하기 전 종을 쳐서 장경각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물론 대출도 했다.

또 <선원청규> ‘장주(藏主)’ 장(章)에는 간경당(장경각)이나 중료(衆寮: 대중방)에서 경전을 읽을 때 주의 사항을 나열하고 있다.

“경전을 받은 사람은 장경각 내에서 향을 사루고 예배하라. 노중(路中)에서 받쳐 들고 말장난이나 농담을 하지 말라. 책상에 경을 쌓아두고 그 위에 붓이나 벼루, 잡물, 선책(禪策: 좌선 때 졸음을 쫓는 막대기), 경전 이외의 책을 두지 말라. 불을 켜고 기름을 붓고 소등(消燈)하는 것은 모름지기 직접 하라. 성교(聖敎: 경전)가 훼오(毁汚)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간경당 안에서 빈객을 접대하지 말라. 간경당 창밖에서 남과 이야기하지 말라. 대중을 시끄럽게 할까 염려스럽다(…) 몸으로 책상에 기대에 경을 누르는 일 말라. 읽는 소리를 내지 말라. 경전과 책상 주변에서 의복을 벗어 걸지 말라. 만약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편운(篇韻: 字典)을 검색하되 그러고도 알 수 없으면 묻는 것이 가(可)하다. 묻는 일이 잦으면 타인의 간경을 발해할 수 있다. 잠시 책상을 떠날 때는 모름지기 경전을 덮도록 하라. 가사를 개어 경전 위에 얹지 말라. 간경 때에는 단정히 앉아 간경하되 소리를 내거나 입술을 달싹거리지 말라. 경전의 출납(出納)은 분명하게 장부에 적어야 한다. 등등.”

중요한 것만 간추린 것인데, 이 밖에도 주의 사항이 대단히 많다.

또 <선원청규> 10권 ‘백장규승송’에는 간경을 하되, 다음과 같이 고성(高聲)으로 독송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모든 요사에서는 고성(高聲)으로 경전을 독송하지 말라. 자기 책상 자리를 항상 가지런히 정돈하라. 궤안(几案: 책상)은 모름지기 깨끗이 하라. 간경독서는 항상 초연(悄然: 조용함)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말은 삼가되 말하지 아니함과 같이 하며, 대중에 처하기를 산에 거(居)함과 같이 하라.”

이 정도라면 선원에서 경전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거의 일과 가운데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즉 좌선과 간경공부를 병행하는 선교일치의 교육 시스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선원에서 경전이나 조사어록을 일절 보지 말라고 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선원에서 경전을 보지 않았다면 일자무식이었다고 하는 육조 혜능은 그렇다 치고, 마조 도일, 백장 회해, 운문 문언, 조주 종심, 임제 의현 등 박식한 선사는 어디서 경전을 공부한 것일까? 특히 선어록의 백미로서 유명한 공안집인 <벽암록>에는 고금의 지식이 총 동원되고 있는데, 찬자 원오 극근은 이런 지식들을 어디서 배우고 어디서 익혔는가? 그리고 간화선을 제창한 대혜(大慧) 종고의 경우 <서장(書狀)>을 보면 <능엄경>과 <화엄경> 등 대승경전의 구절 등이 매우 많이 인용되고 있다. 또 근래 우리나라의 대표적 선승인 성철선사(性徹禪師)의 경우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백일법문>과 <선문정로(禪門正路)>에는 경전이나 조사어록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말 그대로 “책은 독약”이라고 한다면 선승들은 어디서 어떤 경로로 경전이나 조사어록 등을 봤으며, 박학다식은 어떻게 얻어진 것일까? 밤에 남몰래 나가서 보고 온 것인가? 아니면 태어나면서부터 대승경전을 외웠다는 것인가?

일본 조동종의 개조로서 영평사를 개창한 도겐(道元, 1200~1253)은 24세부터 28세(1224~1228)까지 약 3~4년 동안 남송 5산 가운데 하나인 천동사(天童寺)에 유학했다. 거기서 굉지정각(1091~1157)의 4대 법손인 천동여정(1163~1228)으로부터 각별한 가르침을 받고 돌아왔다. 도겐은 저서 <판도법(辦道法)>에서 다음과 같이 선승들이 경전을 봤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중들이 운당(雲堂: 승당, 선당)에서 점심 공양을 마친 후 포단(蒲團: 방석)을 들고 중료(衆寮: 큰방, 대중방)로 가서 쉬는데, 간독상(看讀床: 앉은뱅이책상)을 펴고 경을 보다가 포시(哺時)가 되면 운당으로 돌아와 좌선한다.”

점심 공양 후부터 포시(哺時)까지는 경전이나 조사어록을 보았다는 것이다. 포시(哺時)는 오후 4시를 가리키지만, 포시 좌선은 2시 30분 경에 시작해 4시에 마쳤으므로 점심 공양 후 2시 30분 경까지는 경전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장십경(張十慶)이 지은 <중국강남선종사원건축>(2002, 湖北교육출판사) ‘중료(衆寮)’ 장에는 중료의 용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중료는 선종사원에서 대중들이 경전과 조사어록을 보는 곳이다. 이른바 학문의 도량이다. 건축 형제상(形制上)에서 본다면 중료는 기본적으로 승당에 준한다. 중료 안에 장련상(長連床: 길게 연결된 상. 즉 마루) 위에 설치한 것은 경궤(經櫃: 경전을 두는 函)이고 도구를 두는 함궤(函櫃)는 아니다.”

또 그는 영평사 도겐(道元)의 <길상산 영평사 중료잠규(衆寮箴規)>의 내용을 바탕으로 “중료 내(內)의 모든 것은 한결같이 <백장청규>와 같다. 중료 안에서는 <대승경전>과 <조사어록>을 보았다[寮中之儀, 一如百丈淸規. 寮中, 應看大乘經典 幷 祖宗之語句]”고 말하고 있다. 또 그는 남송 당시의 <오산십찰도>를 바탕으로 “중료 사방에는 경전을 보는 간독상(看讀床)이 배치돼 있고, 경전과 조사어록, 차를 마실 수 있는 도구가 갖춰져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선승들은 일과 가운데 언제 경전을 보았을까? 오늘날 우리나라 선원의 경우 하루에 10~12시간씩 좌선하므로, 경전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소임도 간단한 소임 외에는 맡기 어렵다.

당송시대 선원에서는 하루 좌선시간이 많아야 6시간을 넘지 않았다. 나머지 시간은 맡은 소임과 경전을 보았던 것이다. 10시간 이상씩 좌선해서는 소임은 물론이고 보청(普請: 울력)을 통한 자급자족은 불가능했다. 남악마전(南嶽磨磚)의 공안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루 종일 앉아 있다고 불(佛)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선당(禪堂: 좌선당) 내에서는 경전을 보거나 갖고 다닐 수 없다. 경전은 주로 장경각(간경당)이나 대중방인 중료에서 봤다.

동양 덕휘 선사가 편찬한 <칙수백장청규> ‘지장(知藏, 藏主)’ 장(章)에는 간경(看經)의 의미와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본래 선종이 나아가고자 하는 바는 교외별전이다. 그럼에도 장전(藏殿: 장경각)을 관리하는 지장을 두는 것은 불(佛)이 하신 말씀을 가지고 교율(敎律)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할진대 어찌 승(僧)으로서 부처님의 언행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사의 뜻은 두루 경전을 열람해 외모(外侮: 외부의 경멸과 비난 등)에 대응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부즉불리(不卽不離)라는 것이다. 나중에는 간경하는 대중이 많아서 (지장의 소임을) 동장(東藏)과 서장(西藏)으로 소임을 나누었다.”

<칙수백장청규>는 선이 지리멸렬해지던 원나라 때 편찬된 청규이다. 따라서 선의 정신이 많이 쇠퇘해진 상황에서 편찬된 것이기는 해도 앞의 자각 종색의 <선원청규>의 내용과 비교하면 총림에서도 경전을 봤다고 하는 간경의 기조(基調)에는 큰 변화가 없다. 우리나라 선승들이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워 경전이나 조사어록은 일체 보지 말라고 하는 것과는 정 반대이다.

또 외모(外侮), 즉 타종교인들의 불교비판과 경멸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경교(經敎)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모(外侮)란 한마디로 ‘선승은 무식하다’는 경멸로부터 벗어나, 논리적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경전과 교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같이 불교가 일반 대중에게서 점차 멀어지고 타종교의 불교폄훼가 심한 시대에 선승들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할 말이 아닌가?

이상과 같이 <선원청규>와 <칙수백장청규>, 기타 문헌 등 종합적인 고찰을 통해 요즘 우리나라 선원과는 달리 당송시대 선원총림에서는 좌선 시간 외에는 간경당과 장경각, 중료 등 요사에서 대승경전과 조사어록을 봤다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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