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淸凉)은 부처님의 지혜가 맑고 시원한 것이 찬물과 같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찬탄의 말이다. 그래서 경북 봉화의 청량산에는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께서 상주하시므로 온 산이 불교이름이었다. 1544년 봄, 이 산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당도하여 “불경의 말과 음란한 이름은 청량산 선경에 대한 모독”이라는 이유로 청량산 열두 봉우리가운데 열 개의 이름을 바꾸었다. 그래서 주봉인 의상봉은 장인봉으로, 보살봉은 자소봉, 치원봉은 금탑봉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숭유배불의 시대라도 예전부터 사람이 살아오던 땅이름은 함부로 바꾸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지명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비들은 꾀를 내어 지명에 나타난 불교 색을 지웠다. 이를테면, 절을 뜻하는 寺(사)를 沙나 舍․泗․巳․蓑 따위로 쓰던가, 寺에 言(언)을 더해 詩(시)로 바꾼 것이다. 또 미륵(彌勒)을 미력(彌力)이라 하거나 용화(龍華)를 龍化로 썼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행정개편이라는 미명하에 엄청난 불교지명이 사라졌다. 전라도 익산군과 광산군에 있던 제석면(帝釋面), 미륵면(彌勒面), 극락면(極樂面)이 없어진 것이 바로 이때다.

불교를 국교로 했던 삼국과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온 나라는 이름만으로도 불국토였다. 조선조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난 불교관련 지명을 보면 불타․불암․불견․불족․불대․불정․불명․불모․불용․천불․미타․문수․관음․미륵․지장․나한․가섭․화엄․도솔․반야․보리 따위로, 웬만한 불교 말이 다 등장한다. 그리고 필자가 조사한 바로도 현존하는 지명가운데 불교 말이 500여 가지에 달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1960년대에 조사된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의 지명에서 ‘절골’이 무려 80여 곳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진 바가 있다.

불교의 암흑기라 할 수 있는 조선 500년 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명의 훼손과 왜곡이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버텨온 것은 지명이 가지는 강인한 생명력 때문이었다. 지명은 자신이 태어난 유래와 그 지역의 역사와 풍속을 고스란히 이름 속에 담고 살아온 생명체이다. 그래서 불교나 유교의 지명이라고 함부로 그 생명을 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유형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면면히 이어온 지명도 소중히 간직하고 보전해야만 하는 문화유산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런 유산을, 수백 년 아니 천 년을 넘게 지키고 써온 지명을 하루아침에 생매장하는 일을 지금 이 정부가 하고 있다. 그것이 종교 편향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2001년에 인류최고의 문화재인 바비안 석불을 폭파한 탈레반 정권과 다를 바 없는 폭거이고, 그런 동기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무지몽매하고 한심한 정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결과는 종교편향이 유독 심한 이 정부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점에서 의혹의 눈길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어떻게 수백 년 써온 보현리와 관음리를 팽개치고 ‘가마들길’ ‘갈올길’로 바꿀수 있는가? 어떻게 천년을 써온 가야면의 이름이 시장길에 의탁해서 목숨을 부지한단 말인가? 해당 지역의 수많은 길 이름을 숫자로 대신하면서 그 가운데 하나라도 본래의 지명을 부여하면 될 것을 왜 깡그리 없애려 하는가?

정부당국은 새로 바꾸려 하는 도로명주소의 시행을 즉각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 세대를 역사와 전통을 말살한 죄인이 되게 해서는 아니 된다. 확정된 새 주소는 3년 이내에는 수정이 불가능하고, 3년 이후라도 사용자의 동의가 있어야 수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새주소체계의 시행 이후의 혼선을 막기 위한 조치일 것으로 이해는 되지만 이는 행정폭력이 아닐 수 없다. 정부당국이 이런 입장을 풀지 않고 시행을 강행한다면 우리는 그 길에 나가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우리 국민의 열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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