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차명상을 시작한지 6년의 시간이 흘렀다. 6년이라는 시간은 지금 이순간도 마찬가지지만 지속적인 변화의 시간이었다. 어차피 세상과 우리 자신은 가만히 있어도 변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평소 나 자신이 꿈꾸던 방향으로 그 변화의 흐름을 바꾸어보고 싶어 무던히도 몸부림을 쳐왔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씩이나마 그동안의 변화의 흔적을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앞으로 어떻게 변화를 해나가야 할지 예상되는 변화의 밑그림을 새롭게 그려나가고 있다.

차명상이라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나름 어떤 계기가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실질적인 변화에 대한 갈망이었던 것 같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고 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 출가수행자라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였다. 사실 수행의 길은 깨어 있는 삶의 과정이어야 한다. 그런데 제대로 깨어있는 삶을 살지 못해 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나 자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고 살았다. 제대로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어느 정도 변화했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그냥 살아지는 대로, 혹은 습관적으로 때로는 남들이 바라는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결국 어느 순간 방황이라는 만나고 싶지 않은 상황에 봉착하게 되고 말았다. 막연하게 동경해왔던 이상적 삶과 나의 현실적 삶과의 괴리감이 좁혀지지 않자 답답함과 불안, 막막함 등이 휘몰아쳐 온 것이다. 그 방황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정신 차려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동안 나 자신이 크게 변화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이는 먹어가고 경력은 늘어갔지만 실질적인 인격의 변화, 인성의 변화는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겉은 그럴싸하게 나이나 세상 경력에 걸맞게 꾸며지고 습관 들어져 있을 뿐 이었다. 그런데 속의 정신 상태는 살아온 시간에 비례하여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여러 가지 가치를 부여하고 산다. 사람마다 그 우선순위는 다 다를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이 가장 우선일 수도 있고 승진이나 출세가 우선일 수도 있고 뜻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 우선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이 아마도 행복 혹은 만족감을 가져오는 요소일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나 자신의 경우 방황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외형적인 활동이나 업적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 즉 실질적인 인격의 변화에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두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런 인격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결국 언젠가는 허탈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인격의 변화는 그 자체가 우리가 살면서 추구해야할 가장 바람직한 변화의 내용이다. 삶의 목표이면서 동시에 행복해지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인 것이다.

인격의 변화라는 것에 삶의 가치를 두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인격을 유익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원리와 방법을 찾게 되었다. 전에 공부해왔던 것을 다시 기초부터 착실히 더듬어 보기도 했고, 다른 종교나 명상 혹은 자기변화 프로그램 등을 눈여겨보기도 했다. 인격의 변화라는 모토를 가지고 공부하니 전에 알지 못했던, 또 보지 못했던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무언가 서서히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보다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수행하고 싶어 외국의 수행센터에도 가서 살아보았다. 그러면서 결국 어떤 원리를 통해 인격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대략적으로나마 그 핵심을 알게 되었다. 알고 나니 그것은 평소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 가까이 있었던 것이었지만 단지 그 의미나 실천방법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원리를 알았다고 해서 곧바로 어떤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 원리를 실천하게 하는 전략과 방법이 있어야 하고 다시 그것들을 지속적으로 실천해야만‘ 유익한 변화’는 현실화 될 수 있다.

나름 유익한 변화의 원리를 현대적인 콘셉트로 실천하고자 차명상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막상 좋은 취지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현실은 예상과는 달랐다. 충분히 준비가 안 된 탓도 있었지만 주위의 걱정과 실망스런 시선들이 가는 길을 더욱 힘들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때 법산 스님이 떠올랐다. 오디오 불교 대장경을 만들겠다는 원력을 세운시고 열심히 활동하셨던 스님은 안타깝게도 불의의 사고로 원적에 들었다. 옆에서 그 스님 일을 잠시 도와 드린 적인 있었다. 여러 가지로 힘들어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역력하다. 하지만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본인의 일에 열정을 쏟는 장면을 떠올리면 고단함에 빠져 있는 나의 마음에 큰 위안이 되곤 했다. 아마도 지금 시대에 그 일을 하셨다면 고생하지 않고 뜻을 성취하실 수 있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개척해 나갈 때는 생각지도 못한 많은 시련과 갈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런 시련을 극복하고 본인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만이 이끌어 가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아직 시련의 길이 끝나지 않는 나로서는 시련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예전 이와 같은 번민과 고민을 했었을 법산 스님의 심정이 뼛속 깊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옆에 계시다면 참으로 할 말이 많은데…. 오늘도 그리움을 차와 함께 우려 마시면서 할 말을 대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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