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승화강(水升火降)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개막식의 화려한 쇼이다.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단연 ‘성화 점화’다. 역사상 가장 멋진 성화 장면으로는 지난 2000년도 시드니 올림픽이 손꼽힌다. 오케스트라의 협연 속에 ‘물(水)’과 ‘불(火)’이 만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환상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높은 계단에서 물이 흐르고 그 물이 폭포가 돼 떨어지고 마지막 성화주자가 나지막하게 잠긴 물의 한가운데에 서서 성화대에 불을 붙이자 어느 틈에 빨갛게 타오르는 불이 물속에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이 장면은 동양철학의 근간인 ‘물과 불의 조화’를 나타낸 것으로, 짧은 역사에다 서양 문화 일색인 호주에서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물과 불은 우주는 물론이고 인체를 구성하는 양대 요소로서 물은 음(陰), 불은 양(陽)에 속한다. 물과 불이 화합을 이뤄 음양이 조화돼야 우주나 인체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물과 불이 조화를 이루는 데는 우선 비율 면에서 물이 넘치거나 혹은 불기운이 왕성하지 않고 균형을 이뤄야 한다. 아울러 위치 면에서 물과 불이 어디에 머무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연계에서는 물이 아래로 흐르고 불이 위로 타오르는 것이 순리지만, 만약 사람의 몸 안에서도 그렇게 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은 물대로, 불은 불대로 분리돼 서로 화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를 물과 불이 교류되지 않는 ‘수화불교(水火不交)’, 혹은 ‘수화부제(水火不濟)’라고 한다.

몸속에서 불기운[陽氣]이 내려가지 못하고 물기운[陰氣]은 올라가지 못한다면, 혹은 불기운은 올라가고 물기운이 내려간다면 어떤 상태가 될까? 머리가 뜨겁고 발이 차가운 ‘두열족한(頭熱足寒)’이 된다. 음양의 기가 조화되지 못해 상하 교류가 되지 않아 상부에는 양기가 왕성하고 하부에는 음기가 왕성해진 탓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두통, 어지럼증이 오기 쉽고 중풍(中風)이 올 위험이 크다. 또한 침[唾液]이 올라오지 못해 입이 마르고 목이 따가우며 심할 경우 누런 가래 혹은 피가 섞인 가래가 나오며, 가슴이 답답하면서 뛰고 불면증에다 꿈도 많아진다. 그리고 경락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배와 허리, 다리도 차가워서 배가 아프고 소화가 잘되지 않으며 대변이 묽어지거나 설사가 나오고 허리가 아프기 쉽다. 당연히 성욕과 성기능도 떨어지게 된다.

인체에서는 물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불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수승화강’이 돼야 한다. 그래야 머리가 서늘하고 발이 따뜻한 ‘두한족열(頭寒足熱)’이 되면서 물과 불이 화합이 되는 ‘수화교류(水火交流)’, 혹은 ‘수화상제(水火相濟)’가 되어 정상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은 물을 주관하는 신(腎)과 불을 주관하는 심(心)이 조화를 이룬 ‘심신상교(心腎相交)’이기도 하다. 아기를 잘 기르는 방법인 ‘양자십법(養子十法)’에도 두한족열이 나온다.

근대 임상의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헤르만 부르하페(1668~1738)가 죽은 뒤 ‘의학사상 최고 비밀’이라고 쓰인 두툼한 노트 한 권이 경매에 붙여졌다.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날렸던 유명 의사였고, ‘최고의 비밀’이 담겼기에 낙찰가가 엄청났다. 이를 구입한 사람이 노트를 열어보았더니 맨 뒷장에 단 한 줄이 기록돼 있을 뿐이었다. “머리는 차갑게 하고, 발을 뜨겁게 하며, 몸속에는 찌꺼기를 남겨 주지마라. 그러면 당신은 세상의 모든 의사를 비웃게 될 것이다.”

수승화강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로 앉아서 머리를 많이 쓰고 차를 타고 다니기에 다리를 쓰는 활동이 적으므로 상하 교류가 되지 못하는 탓이다. 게다가 술과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고 스트레스가 많아 열은 자꾸만 생겨나는데 걷기는 적게 하니 열이 내려오기는커녕 오르기만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머리는 서늘하고 발이 따뜻하고 아울러 배가 따뜻하다면 건강장수의 기본은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머리는 차가워서 아픈 경우가 없고 배는 따뜻해서 아픈 경우가 없다(頭無冷痛, 腹無熱痛)’는 말을 잊지 말자. 실제로 냉두통과 열복통은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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