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의 장송(葬送)과 다비(茶毘) 그리고 의발(衣鉢) 경매(競賣)

▲ 법정 스님이 ‘신문을 전해주던 꼬마’에게 남긴 유품인 6권의 책

 

‘총림(叢林)’이라는 말은 선종사원(禪宗寺院)을 지칭하는 말이다. ‘선림(禪林)’이라고도 하는데, 큰 규모의 총림은 보통 500명 이상 수행했으므로 열반(입적)하는 스님도 종종 있었을 것이다. 선승이 입적하면 모든 장송의식은 총림에서 치룬다. 장례의식의 정점은 다비(茶毘, 火葬)이다. 다비의식은 무상(無常)의 끝을 보여준다.

총림의 다비장(茶毘場)은 지정돼 있는데, 위치는 가람과 좀 떨어진 넓은 곳에 설치한다. 먼저 참나무 장작을 높이 쌓은 다음 망승(亡僧)의 시신이 들어 있는 감(龕, 棺)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그런 다음 다시 장작을 높이 쌓아 올린다. 불길이 높이 올라가고 불꽃이 튀게 되므로 다비장이 넓어야 한다. 자칫 산불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넓은 곳이 없을 경우는 ‘약식 다비’라고 해서 땅 밑을 좀 파고 장작을 1미터 이상 쌓은 다음 관을 올려놓고 그 위에 또 장작을 올린다. 그런 다음 물에 젖은 볏짚으로 영을 이어서 여러 겹으로 두른다. 이렇게 하면 고요하게 연기만 올라올 뿐 불꽃은 튀지 않는다.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는 것을 ‘하화(下火, 點火)’ 또는 ‘병거(秉炬, 횃불을 잡다)’라고 한다. 준비가 완료되면 장송의식을 총괄하고 있는 유나스님은 주지화상 앞으로 가서 하화(下火)를 청한다. 하화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소임자가 할 수 없다. 이어 유나가 “오늘 신원적(新圓寂, 새로 입적한) ○○상좌가 연(緣)이 다해 순적(順寂, 입적에 순응함)했나이다. 이에 법에 의해 다비하나이다. 백년 홍도(弘道)의 몸을 태워 열반의 길에 들었나이다(…) 운정(雲程)을 봉송하나이다”라고 고하면 주지화상은 점화한다.

다비의식이 끝나면 대중들은 모두 승당으로 돌아간다. 이어 점심 공양 후 망승의 가사와 발우ㆍ옷 등 소유물 일체를 모두 경매하게 되는데, 그것을 ‘창의(唱衣)’라고 한다. ‘옷의 값을 부르다’는 뜻이다.

경매는 총림의 규율담당인 유나(維那)가 주관한다. 주지나 감원 등은 일체 관여할 수 없다. 경매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 값을 정하는 것을 고의(估衣)ㆍ고직(估直) 또는 고가(估價)라고 하는데, 고의(估衣)는 주지ㆍ수좌ㆍ감원 등 6지사와 6두수 등이 참여해 적정가를 정한다. 한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면 유나는 종두 소임자로 하여금 종과 북을 쳐서 대중들을 법당 안이나 승당 앞으로 모이게 한다. 물론 관심이 없는 이는 오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경매는 구경하는 재미도 적지 않다. 경매에 응하고자 하는 이들이 다 모이면 유나는 인경(印磬, 경쇄의 일종)을 한번 치고 나서 게송을 읊는다.

“뜬 구름 흩어져 그림자마저 남기지 않았네/ 남은 촛불 다해 그 빛 절로 사라졌네/ 지금 여기에 고창(估唱, 경매)하나니 그것은 무상을 나타내기 위함이네/ 대중을 의탁해 ○○상좌를 위해 받드나니/ 각영(覺靈, 영가)은 정토에 왕생하사이다./ 염(念)하나이다.”

그림자마저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허공을 날으는 새가 발자국을 남기지 않듯이, 몰종적(沒蹤迹) 즉, 공(空)ㆍ무집착을 뜻한다.

망승의 물건을 경매하는 것에 대해 청규에서는 “제행무상을 깨닫게 하고 간심(慳心 아낌, 인색함)을 없애며, 망승과 인연을 맺기 위한 것이다”라고 경매의 의미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사후 곧바로 대중 앞에서 낱낱이 경매해 망자나 생자(生者) 모두로 하여금 탐착심을 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유나는 다시 한번 인경을 치고 나서 대중들에게 창의(唱衣, 경매) 방법에 대해 고지(告知)한다. 유나는 “이 창의(唱衣)의 법은 오래 전부터 상규(常規)로서 이어온 것입니다. 물건이 새 것인지, 옛 것인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잘 파악해야 합니다. 창의가 결정돼 인경을 치면 다시는 번복할 수 없습니다. 삼가 아룁니다”라고 말한다.

이어 경매가 시작된다. 유나는 경매할 물건에 대해 천자문(千字文) 순서대로(즉 天地玄黃 순서) 낱낱이 번호를 매겨서 대중 앞에 나열한다. 예컨대 첫 물건의 경우는 ‘천자일호(天字一號)’가 되고, 다음 물건은 ‘지자이호(地字二號)’가 된다. 이렇게 번호를 매기는 것은 원활한 경매를 위해서다.

유나는 경매할 물건을 들어서 대중에게 보인 다음 새 것이면 ‘신(新)’ 헌 것이면 ‘구(舊)’ 좀 찢어지거나 손상된 것이면 ‘파(破)’라고 한다. 그런 다음 “천자일호(天字一號) ○○물건 값 ○○요”라고 부르면(唱), 유나실의 행자는 다시 큰 소리로 대중을 향해 복창한다. 응찰자가 많으면 다시 값을 올리고 적으면 값을 내린다. 낙찰을 받고자 하는 이는 “○○(자기 이름) 청수(請受, 매수)요”라고 한다. 다른 응찰자가 없으면 유나(維那)는 “천자일호(天字一號)의 ○○물건은 값 ○○에 ○○상좌 청수(請受, 매수)요. (혹은 打與합니다)”라고 결정한 다음 인경을 한번 친다. 그러면 낙찰이 결정된 것이다.

만일 최종 응찰자가 두 명 이상일 경우에는 누구에게도 낙찰시킬 수 없으므로 유찰시켜 버리는데, 이것을 ‘쌍파(雙破)’라고 한다. 양쪽 모두 낙찰을 파(破)해 버린다는 뜻이다. 유찰된 물건은 처음부터 다시 경매를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옷ㆍ발우ㆍ가사 등 망자가 남긴 물건을 모두 경매하는데, 응찰자가 적으면 값을 내려서 예정가에 못 미치더라도 경매한다. 응찰자가 많아서 예정가보다 너무 높아지면 유나는 응찰자들에게 “다시 모름지기 자세히 살피시오. 뒤쫓아 후회한들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며 응찰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낙찰이 확정되면 유나실의 행자는 전표를 끊어 낙찰 받은 스님에게 전한다. 지객은 그 스님의 이름과 물건, 값 등을 장부에 기록한다. 행자는 물건을 다시 바구니에 담아서 전표와 교환한다. 낙찰은 번복할 수 없다.

<칙수백장청규> 창의(唱衣) 부분에 “3일이 지나도 찾아가지 않으면 가격을 참조하여 내다 판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아 후대에는 규정이 완화돼 낙찰 받은 물건을 찾아가지 않는 경우도 허용됐던 듯하다.

경매가 끝나면 다음날(열반 3일재) 바로 경매와 관련된 수지(收支) 명세서를 방(榜)에 붙여 공개한다. 그것을 ‘판장식(板帳式)’이라고 하는데, 경매 명세서를 판(板)에 적어서 붙인다는 뜻이다. 양식은 품명과 낙찰가를 쓰는데 절대 위조해서는 안 된다. 다만 매수자의 이름은 적지 않는다. 장례비용 등도 모두 공개한다. 말썽을 없애기 위한 조치인 듯하다.

경매에는 특혜가 없다. 설사 주지나 수좌 등 상위소임자라 해도 망승의 유물을 취득하고자 할 경우 반드시 경매를 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창의(唱衣)에서 얻어진 수입금은 장례비용으로 쓰고, 남을 경우에는 영가 앞에서 독경한 스님들과 장례식 동참자, 창의 주관자들에게 나누어 보시한다. 그러고도 남는 것은 사중(寺中) 수입으로 계정(計定)한다.

창의에 대해 장로 종색의 <선원청규>에는 병승이 숨을 거두면 즉시 창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중의 재정을 아끼는 한편, 경매 수입금으로 장례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이다. 후대 문헌인 <칙수백장청규>에서는 다비가 끝난 후에 창의하는 것으로 돼있다. 다비식 후에 하는 것이 덜 복잡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원청규>는 당대 이후 북송 때까지의 장례법이고, <칙수백장청규>는 남송 말기 이후에서 원대까지의 장례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망승이 6지사(知事) 등 총림의 요직을 역임해 의발 등 개인 소유물이 꽤 있으면 경매한 돈으로 특별 공양을 낸다거나 그 지역에 이름 있는 고승을 초청하기도 한다.

도첩 처리에 대해서도 <선원청규>(1103년 편찬)에서는 3일 이내에 국가에 반납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후대 문헌인 <칙수백장청규>(1338년 편찬)에서는 경매를 시작할 때 “망승의 도첩 한 통을 대중 앞에서 잘라서 파(破)합니다”라고 하여, 대중 앞에서 가위로 잘라 버린다고 설명하고 있다. 북송 이전에는 도첩을 국가에 반납했다. 원대(元代)에는 총림에서 파(破)하는 것으로 바뀐 것 같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망승의 유물을 나누는 것에 대해 청규에서는 “부처님 제도에 옷을 나누어 주는 것은 남아 있는 이로 하여금 저 망승의 물건이 뭇 대중에게 나누어지는 것을 보게 하여 무상을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다…. 나에게 돌아와도 이와 같이 되리라. 저것으로 인하여 탐구(貪求, 탐욕)를 끊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창의(唱衣)의 기원이 부처님 당시 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당시에도 경매를 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세속에서는 망자의 개인적인 물건, 특히 입던 옷 등은 모두 태워버린다. 그런데 총림에서는 대중들을 상대로 경매해 처리한다. 말하자면 일체개공과 무상을 여실하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인데, 살아 있는 자가 이 광경을 본다면 탐착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조금은 느끼게 될 것 같다.

총림에서 망승의 물건을 경매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매우 체계적이다. 오늘날 경매방법과 별 차이가 없는데, 아마 당시 세속의 경매방법을 참고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경매과정에서 잡음이 꽤 있었던 것인지, <칙수백장청규>에서는 “창의(唱衣, 경매)할 때 시끄럽게 값을 다툰다. 어리석음도 심하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칙수백장청규> 시대(1338년 무렵)에는 구염법(鬮拈法)을 택했는데, 구염법이란 ‘제비뽑기’ 방법으로서 천자문 순서대로 전표를 두 장 만들어서 하나는 응찰하고자 하는 이에게 주고, 하나는 경매 주관자(유나)가 받아서 모두 모아 통 속에 넣고 섞어서 추첨하는 방식인데, 자기 번호가 나왔을 경우 낙찰에 응할지 여부는 응찰자 마음이다. 낙찰받기 싫으면 응찰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다시 추첨한다. 구염법을 도입한 이후에는 잡음이 적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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