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화의 선원총림을 가다 34- 선승의 장례와 장송

▲ 열반은 번뇌가 소멸돼 평온해진 상태를 말한다. 사진은 무소유를 강조한 법정 스님의 다비식 모습.

선승의 죽음을 높여서 ‘입적’ 혹은 ‘열반’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래 입적(入寂)이나 열반(涅槃)은 ‘적멸(寂滅)’을 뜻하는 말로서, 번뇌가 소멸돼 마음이 고요ㆍ평온해진 상태를 말한다. 즉 탐욕, 증오, 어리석음 등 미혹함이 사라진 상태이다. ‘원적(圓寂, 완전한 적멸의 세계)’도 같은 말이다.

인간은 육체와 마음, 안이비설 등 감각적 기능을 갖고 있는 한, 욕망과 증오, 시기, 질투 등 중생적인 생각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죽는 날까지 항상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육체가 사라지면 존립할 수가 없다. 그래서 후대에는 입적ㆍ열반을 죽음과 동의어로 쓰게 됐다.

선원총림에는 당송시대부터 병승(病僧)을 돌보는 소임과 당우가 있다. 그 당우를 연수당(延壽堂)ㆍ열반당(涅槃堂)ㆍ무상원(無常院, 無常堂)ㆍ중병각(重病閣) 등으로 칭하고, 그 간호 책임자를 연수당주(主)ㆍ열반당주(主)라고 한다. 우리나라 선원에서는 ‘간병(看病)’이라고 하는데, 간병 소임을 맡은 스님은 병승(病僧)이 있으면 먼저 수좌ㆍ감원ㆍ유나 등 상위 소임자들에게 보고한 다음 요양ㆍ치료기관인 연수당(延壽堂, 수명을 연장하는 곳)이나 열반당(涅槃堂, 열반하는 곳)에 입원시킨다. 병승이 일반 환자실인 연수당에 들어온지 3일이 지나도 차도가 없거나 병이 악화되면, 중환자실인 중병각(重病閣)으로 옮겨진다. 이곳은 말 그대로 중병에 든 스님들이 들어오는 곳으로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스님, 곧 입적하게 될 스님이 들어오는 곳이다.

선승이 열반에 든 경우 장송과 다비 등 절차와 격식에도 고승과 일반 승려와는 차이가 있다. 전임 주지(방장)나 현임 주지 또는 고승의 경우는 방장실이나 자신의 거실 등에서 주로 행해진다. 장송법식도 더 많고 장중한데 특히 다른 것은 관청과 인근 타사(他寺), 유력한 신도들에게 부고장을 보내고 상주(喪主)가 있고, 총림 전체가 장례의식에 집중한다. 일반 승려는 모든 것이 연수당이나 중병각에서 이루어지고 법식도 간략하다. 그러나 망승(亡僧)에 대한 문제는 한 선승의 마지막 길이므로 소홀하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다른 것에 비해 규정이 많은 편이다.

장례절차도 두 청규(선원청규, 칙수백장청규) 간에 차이가 있는데, 후대에 편찬된 <칙수백장청규>가 더 자세하다. 이것은 후대로 갈수록 더 부가됐음을 뜻한다. 특히 주지(방장)의 장례는 <선원청규>에는 간략한 반면 <칙수백장청규>는 열배도 넘는다. 주지가 권위적으로 발전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주지의 장례에 대해서는 다음으로 미루고 일반 승려의 간병과 입적, 장송절차, 그리고 의발과 도구 등 소유물 처리 등에 대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선승이 병이 들어 연수당으로 들어가면 가까운 승려나 도반들은 병승의 침상 앞에 향촉을 밝히고 불상을 모신 다음 경전을 염송(念誦)한다. 그리고 청정법신비로자나불 등 10호를 외우면서 쾌유를 빈다. “엎드려 원컨대 일심(一心)이 청정하고 사대가 편안하며 수명과 혜명을 연장해 육체도 법신처럼 견고하소서”라고 기원한다.

병이 점점 깊어지면 대중들은 다시 그를 위해 아미타불 100번,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청정대해중보살을 각각 10번 부른다. 그리고는 “엎드려 원컨대 지금 병에 든 비구 ○○는 인연이 아직 다하지 아니했다면 속히 쾌유하게 하여 주사이다. 만일 대명(大命, 죽음)을 벗어나기 어렵다면 속히 안양국(정토)에 태어나게 하사이다”라고 쾌유를 비는 축원문을 읽고 염불한다. 장로종색이 편찬한 <선원청규> 6권 ‘망승(亡僧)’ 장에는 그 대략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만약 스님의 병세가 점점 더 깊어지면 연수당주(간병)는 수좌ㆍ감원ㆍ유나ㆍ서기ㆍ지객과 상의해 병승으로 부터 유언 등을 받아쓰고, 도첩과 수계첩, 그리고 의발 등 도구를 거둬 유나실에 보관한다. 수좌는 의발 등 도구가 보관돼 있는 함(函)에 봉인(封印)하고 자물쇠로 잠근 다음 관청에 신고해야 한다. 만약 병세가 위독하면 다시 신고하고, 천화(遷化, 입적)하면 신고한 다음 장송(葬送) 행함을 청한다. (국가로부터 받은) 자의(紫衣, 자색 가사. 즉 僧官服), 도첩(度牒), 사호첩(師號牒) 등은 3일 안에 반납해야 한다.”

병승을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별도로 죽을 끊이든가 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심하면 소대변도 받아내는 등 그야말로 보살심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청규에는 간병 소임을 가리켜 “8복전(八福田) 가운데 제일로 삼는다. 하물며 출가한 사람이 질병에 걸리면 누가 돌보리오. 다만 동지들의 자비와 안양에 의지할 뿐이니 진실로 중요한 소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소홀하게 하리오”라며 간병 소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병세가 위독해지면 직병자(直病者, 당직 행자, 당번)는 연수 당주에게 고하고, 연수 당주는 수좌와 감원, 유나 등에게 알린 다음 함께 병승 앞에 와서 유언을 받아 적는다. 유언을 구사(口詞)라고 하는데 정해진 양식은 다음과 같다.

구사(口詞)=유언

“병을 지닌 승(僧) ○○는 본관은 ○○주(州)이고, 성(姓)은 ○○인데, ○○해(年)에 ○○곳에서 도첩을 받고 승려가 됐습니다. ○○년에 ○○사(寺)에 괘탑(掛塔, 입방)했으나, 지금 와서 포병(抱病, 병에 걸림)하니 지수화풍 부정(不定)할까 염려됩니다. 몸에 소유하고 있는 행리(行李, 의발과 도구 등 소지품)를 기록해 주시고 사후문제는 모두 총림의 청규에 의해 장송(葬送)해 주시기 바랍니다. ○○년 ○월 ○일 포병승(抱病僧) ○○는 유언하나이다.”

요점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행리(行李, 의발과 도구 등 소유물)를 장부에 기록해 달라는 것이고 사후문제는 모두 총림의 청규에 의해 장송(葬送)해 주기 바란다”는 것인데, 유언의 내용으로 보아 사후 개인적인 물건이나 혹은 사유물 처리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던 듯하다. 유언을 받은 다음에는 그 스님이 가지고 있던 물건은 모두 함궤 속에 넣고는 봉인(封印)한다. 가사와 발우 등 밀봉한 개인 소유물은 장례 후에 대중들에게 경매했다. 경매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자세하게 서술하고자 한다. 다만 상하복(上下服, 즉 直裰)과 괘락(掛絡, 5조 가사)ㆍ속옷ㆍ염주ㆍ행전ㆍ신발ㆍ수건 등은 시신을 염할 때 필요하므로 남겨 둔다.

일반 승려의 장례는 며칠 장(葬)으로 했는지 나와 있지 않으나 도첩은 3일 안에 반납해야 한다. 또 <선원청규>에는 “이 밤에 법사(法事)와 송계(誦戒, 염불, 독경)해 회향한다. 다음날 아침이나 점심 공양 후 바로 진송(津送, 葬送)한다”라는 문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장송은 사후 다음날, 길어도 3일은 넘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병승이 운명하면 연수 당주는 유나와 수좌에게 알리고 행자에게 목욕물을 준비하게 한 다음, 사람을 시켜 감(龕, 棺)과 욕선(浴船, 시신을 물위에 놓고 목욕시키는 배)을 가져오게 한 다음 망자를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는데 조두(澡豆, 녹두로 만든 비누)를 사용한다. 목욕이 끝나면 삭발을 시키고 속옷과 상하의 그리고 오조가사를 입혀서 가부좌 자세로 통(桶) 안에 앉힌다(눕히는 것이 아님). 그런 다음 다시 감(龕, 棺)에 넣어서 연수당 내에 안치하고 위패를 써서 관 앞의 탁자 위에 놓는다.

위패를 쓰는 방식에 대해 <선원청규>에는 “歿故(몰고) ○○上座之靈”이라 쓴다고 하고, 후대에 편찬된 <칙수백장청규>에는 “新圓寂 ○○上座 覺靈”이라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찰의 위패 쓰는 양식은 <칙수백장청규>의 양식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몰(歿)은 평민의 죽음을 뜻하고, 고(故)는 고인, 신원적(新圓寂)이란 새로 입적했다는 뜻이고, 상좌(上座)는 존칭이고 각영(覺靈)은 영가와 같은 말인데 그냥 영가가 아니라, 깨달은 영가인 것이다. 전임 주지면 “전(前) ○○사 주지 ○○선사지영(禪師之靈)”이라고 쓰고, 나머지는 직함에 따라 쓴다.

위패를 지키는 행자를 ‘직영(直靈)행자’라고 하는데, 직영행자는 총림의 공양법에 따라 출상 때까지 아침에는 죽, 점심 때는 밥을 영단에 올린다. 유나와 수좌 등은 하루 3번 차(茶)를 올리고 향을 사룬다.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경명일(景命日, 천자 즉위일)에는 출상(出喪)하지 아니한다. 초하루와 보름엔 총림에 정기적인 상당법어 등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욕시킬 때 사용한 천은 목욕시킨 사람에게 주고 수건은 삭발시킨 사람에게 준다.

출상(出喪), 다비(茶毘, 화장)하는 날이 되면, 유나스님은 아침 공양이 끝나자 마자 백퇴(白槌, 백추라고도 발음함. 망치의 일종)를 한 번 치고 나서 대중에게 알린다.

“대중스님들께서는 죽후(粥後, 선원에는 아침은 죽. 만일 점심공양 후에 다비를 할 경우는 ‘齊後’라고 함)에 종을 치면 각기 가사를 수하고 망승을 보내는 법사(法事)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 요사의 책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제히 나와 주십시오. 삼가 아룁니다.”

곧이어 종과 북이 울리면 연수당 앞에서 망승(亡僧)을 보내는 장송의식이 거행된다. 대중들이 모두 모이고 주지화상 이하는 모두 차례대로 향을 사루고 합장한다. 이어 유나가 장중한 음성으로 염송(念誦, 독경, 염불)을 마치면 이어 북을 친다. 대중들은 북 소리와 함께 감(龕) 즉 관(棺)을 들어서 다비장으로 이운(移運)한다. 나머지 대중들은 번(幡)과 향로 등을 들고 뒤를 따른다.

운구(運柩)가 다비장에 도착하면 관을 장작더미 위에 얹어 놓고 다시 염불 등 법식을 행한다. 주지 이하 중요 소임자들은 마지막으로 망승(亡僧)의 왕생정토를 위해 향을 사루고 합장한다. 이어 주지가 횃불을 잡고서 관(棺)이 올려져 있는 장작더미에 밑에다가 점화(點火)를 한다. 점화 후 주지화상은 무상법문을 한다. 대중들은 모두 함께 아미타불을 십념(十念)하면서 다비식을 마친다. 다음 날 아침에 연수 당주와 유나는 다비장으로 가서 유골을 수습하여 물에 뿌리든가 아니면 보동탑(普同塔)에 안치한다. 보동탑은 대중 모두의 유골을 안치하는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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