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최고 최초 수식 붙으며 고창 선운사 변모…“아직 할 일 많아”

전북 최대의 복지관 운영, 교계 최초의 승려노후수행관 설립, 전국 최고 수준의 지역사회와의 연대 등.

고창 선운사에 최대ㆍ최초ㆍ최고의 수식어를 붙게 한 주지 법만 스님. 스님 역시 주지선출 당시 세랍 45세로 최연소 교구본사주지였다. 최연소로 당선된 것 만큼이나 법만 스님의 경력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스님은 30여 년 승랍 중 산중에서 25년, 선방에서 30안거를 성만한 수좌다. 20여 년 전 선운사 총무직과 산내 암자 참당암 선원장을 역임했을 뿐 그 흔한 말사 주지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선운사는 가장 낙후된(?) 조계종 교구본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00년대 서해안고속도로로 길이 뚫리면서 외지였던 전북 고창에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오가며 활기를 더한 선운사에 2007년 법만 스님이 제15대 주지로 취임한 이래 크고 작은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진정성 바탕, 수행과 포교에 매진

취임 2주년을 맞아 스님은 6월 16일 경내 만세루에서 교계 기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보왕삼매론>에 ‘일이 잘 풀릴수록 항상 경계하라’는 말씀을 늘 새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터뷰 요청이 더러 있었지만 사양했습니다. 넘치고 쌓여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간담회가 열린 만세루도 법만 스님의 말처럼 저절로 드러난 공간. 만세루는 그동안 창고처럼 쓰이던 공간이었다. 법만 스님은 취임 후 만세루를 비우고 다탁을 놓았다. 창고로 쓰이던 만세루가 지금은 누구나 차담을 나누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주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스님의 본사운영 기조는 ‘강학(講學)과 수선(修禪)의 도량’이라는 슬로건으로 대변된다.

출가자로, 무엇보다 20여년을 선방에서 수행한 수좌인 본분을 잊지 않고 수행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선운사를 이끌어왔다. 넉넉하지 않은 절 살림에 여러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승가대학과 내소사, 월명암, 참당암 등 교구 내 선원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법만 스님은 “제방선원과 각 교육기관에서 수행정진 중인 문도들에게 장학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해 문도로서의 자긍심과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수행에만 치우치지도 않았다. 스님은 “포교는 불자의 당연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법만 스님은 취임 후 만세루를 개방해 신행 상담과 불교문화 체험 공간으로 확보했다. 다도 등 선운사만의 독특한 소재로 템플스테이를 운영해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계간지 <선운> 등을 통해 문서포교에 힘쓰는 한편, 신도회 및 공무원 불자회 등 신행단체를 구성ㆍ복원했다.

#지역사회 선도하는 교구본사
특히 올해 중 고창 읍내에 불교회관 및 체육시설이 착공되면 선운사는 고창지역 복지는 물론 사회체육까지도 선도하게 된다.

선운사는 고창군종합사회복지관 등 4곳의 복지시설을 운영 중이다. 고창군종합사회복지관은 예산만 40억 종사자 120여 명 전북지역 최대 복지관으로 농촌지역의 지역복지 모델로 평가 받는다.

복지관장 무공 스님은 “매일 300여 어르신이 이용할 정도로 지역민들의 성원이 크다”며 “소박하게 운영을 시작했는데 복지관을 통해 선운사 위상이 높아진 것은 물론 지역 어르신 행복지수도 함께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선운사는 2010년 고창군종합복지관을 통해 전통음식체험관을 건립한다. 전통음식체험관은 전라도 손맛과 사찰음식의 장점을 살려 폐백ㆍ잔치 음식을 갖고 어르신 일자리 창출 및 온-오프라인 판매를 통한 수익 확보에 나설 예정이다.

교계 최초의 승려노후수행관 석상마을은 법만 스님이 남은 임기 동안 주력할 사업이다.

스님은 “평생을 수행과 교화에만 전념하더라도 노후 걱정이 없도록 하겠다”며 “노스님들이 반농반선(半農半禪)의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하도록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운사만의 문화콘텐츠 강화

이와 함께 법만 스님은 문화와 생명 환경 등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선운사만의 문화 아이콘을 고민했던 스님은 보은염 이운과 석전 스님에 주목했다.

“선운사 하면 동백숲이나 가을 단풍을 떠올립니다. 수동적 볼거리를 탈피해 선운사 역사와 인물을 홍보하고 선양하기 위해 문화사업을 적극적으로 실시할 것입니다.”

1500년 전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 스님에서 비롯된 보은염 설화를 재현해 정기적으로 보은염제를 열었다. 또 근현대 불교선구자 석전 박한영 스님의 기념사업을 연차적으로 확대된다.

석전 스님 기념사업은 자료집 발간과 9월 20일 열릴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다. 이에 앞서 7월 중에는 석전 스님이 한성임시정부 수립에 도움을 주는 등 독립유공자로서 선정될 예정이다.

법만 스님은 “금년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2010년에는 백파사상연구소 설립과 조사전을 준공하고, 2011년에는 석전 스님의 저술을 한글화 하고 생가 복원 및 기념관을 건립하겠다”라고 말했다.

법만 스님의 실용적인 사고는 소비지향적인 행사로 변질됐던 산사음악회를 불교와 대중이 불교예술과 사상으로 만나는 소통의 자리로 탈바꿈시켰다.

9월 19~20일 선운사가 ‘선운사 1500년, 그 역사의 향기를 말하다’를 주제로 개최하는 제2회 선운문화제는 지역민들과 어우러진 축제의 한마당이 될 예정이다.

#주민 외면하면 사찰도 외면 받아
선운문화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선운사 행사에는 지역주민 직거래장터가 마련돼 고창특산물과 친환경 먹거리 등이 판매된다.

이는 “주민을 외면하면 사찰도 외면 받는다”는 법만 스님의 마인드 때문.

스님은 절집 안 행사였던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를 지역어울림마당으로 확 바꿨다, 또 정기적으로 선운사 인근 마을 이장들을 초청해 이장단 회의를 열고 주민의견을 수렴했다.

주민들의 요구를 수렴하고 애로사항을 직접 해소하는데 힘써 온 법만 스님은 지역주민을 위한 무료의료봉사 및 문화공연과 어르신들을 위한 게이트볼 대회를 개최햇다. 2000여 전북지역 청소년이 함께 하는 동백연 축제를 진행해 지역사회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미당시문학관 이사장인 스님은 선운사와 시문학관을 연결하는 문화벨트를 구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스님은 지역민과 함께하는 선운사를 만들고자 선운문화공동체를 건립할 예정이다. 선운문화공동체에는 웰빙 사찰음식 체험관과 차문화체험관, 근대문학기념관 등이 갖춰지게 된다.

법만 스님은 “당대도 아니고 언제일지 모를 후손을 위해 바닷가에 향을 묻는 침향제를 복원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열린 경영, 투명한 재정 공개가 믿음의 시작
법만 스님이 지난 2년 여 동안 선운사에 몰고 온 변화가 있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스님은 “주지 취임부터 지금까지 문중 어른스님들이 걱정하는 것은 사실이다. 선운사를 투명하고 열린 구조로 운영하고 싶다는 원력에 주지 소임을 맡은 이래 지금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종무행정의 시스템화에 주력했다. 교구 스님이 174명에 불과한 작은 본사인 까닭에 7직 중 교무국장과 호법국장도 비어있다. 법만 스님은 부족한 출가자를 23명의 재가종무원으로 대신했다.

매주 종무회의를 통해 좀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하고자 노력했고, 시간을 내 말사를 돌며 교구본사 곳곳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노력했다.

스님은 취임 후 종무원 수를 7명 늘리는 한편, 종무원들의 급여를 50% 가까이 올렸다. 재가종무원을 ‘신심으로 일해 주는 사람’이 아닌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 여긴 법만 스님의 마인드 때문이었다.

말사주지 인사도 계파나 계열을 초월해 포교와 불사, 복지, 문화, 지역사회와의 연대 등에 능력과 원력을 가진 스님들을 기준으로 단행했다.

#취임시 초심 안잊으려 취임사 베고 자
법만 스님은 취임사를 머리맡에 두고 산다. “원융살림으로 부처님 정법이 살아 숨쉬는 수행과 교화의 도량을 가꾸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스님은 “수좌의 삶에 있어 주지 소임은 외도 중이다. 지금 행복한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있다”라며 “4년 임기 동안 열심히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만 스님은 “선운사 변화를 위해 노력하지만 혼자 단시간에는 어렵다. 사부대중이 하나로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라며 “주지로서 선운사를 대중과 함께 하는 열린 운영을 했다는, 선운사의 틀과 흐름을 바꿨다는 소리만 듣는다면 내 역할을 충분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섭 기자

#고창 선운사는 조선 후기 화엄학자 설파상언 스님과 선의 중흥조 백파긍선 스님을 비롯해 구한말의 청정율사 환응탄영 스님, 근대 불교의 선구자 박한영 스님 등 걸출한 선지식을 배출한 도량이다.
백제 제27대 위덕왕 24년(577)에 검단 스님이 창건했다. 통일신라기의 역사는 전하지 않고 고려 공민왕 3년(1354)에 효정 스님이 퇴락한 법당과 요사를 중수했다. 조선시대에 극유 스님이 중창해 숭유억불의 조선사회에서도 왕실의 원찰로 법등을 밝혔다. 정유재란 때 어실만 남겨두고 소실된 것을 1608년부터 다시 중수를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보물 제290호로 지정된 대웅보전과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79호)을 비롯해 영산전목조삼존불상, 6층석탑, 범종, 만세루, 백파율사비 등이 문화재로 지정됐다.
대웅전 뒤로 펼쳐진 동백나무숲과 장사송 등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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