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을 찾아서]-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

선지식을 찾아서 -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추대된 설정 스님

해발 495.2의 크지는 않지만 위엄이 있는 덕숭산 정상 부근에 자리잡은 수덕사 산내 암자 정혜사 능인선원. 사하촌과 주변의 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이 곳은 100여년 전 만공 선사가 금선대(金仙臺)라는 초가를 지으며 비롯됐다. 근대 한국 선종의 중흥조인 경허ㆍ만공 선사와 선농일여(禪農一如)의 선맥을 잇는 ‘선지종찰’의 대표적인 이 곳에는 최근 혜암-벽초-원담 스님에 이어 덕숭총림 수덕사의 제4대 방장에 추대된 설정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정혜사로 올라가는 산길은 쏟아지는 봄비에 그리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선원 객실에 들어서니 빗줄기는 아름다운 선율 처럼 정겹고 운무에 가려진 산 아래 경치는 산수화를 그려놓은듯 아름답다. 산색을 연두빛으로 물들인 나뭇잎들은 봄비를 맞고 더욱 푸르러질 기세다.
객실에 들어선 설정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차부터 권한다. 서울에서 빗길을 뚫고 달려온 나그네의 어수선한 마음을 다향으로 가라앉히고, 먼저 부처님오신날을 맞은 불자들에게 들려줄 덕담을 청했다.
“부처님오신날은 부처님이 살아가셨던 발자취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서로에게 다짐하는 날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는 어떠한가, 제대로 정진하고 있는가 반성해 보고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수행인으로서의 새롭게 원력을 세우는 때입니다.”
“국내외의 경제적인 위기로 사림들의 삶이 그만큼 고단해진 것 같습니다.”
“세상이 상당히 어려워졌고 불교계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우리 신앙인으로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현실적인 면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질곡의 세월을 보냈고 일제 36년간 왜정에 의해서 불교가 원래의 모습을 잃으며 크나 큰 시련을 겪었고 해방 후에는 정화운동으로 갈등과 시비가 일었습니다. 불교가 스스로 서지 못하고 발전에 저해 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불교의 정화를 달성했습니다만, 그 반면 많은 부작용이 있었고 그 부작용이 지금도 조금씩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 그러나 위기는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려울 때 절망하지 않고 부단한 인내로 노력할 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는 스님의 말은 요즘 처럼 편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믿고 받아지녀서 더욱 열심히 살아가는 힘과 용기가 되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무려 54년의 출가생활을 통해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의 수행현장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이사무애(理事無碍)한 지도자의 길을 걸어온 경험에서 묻어나온 말이기도 하다. 지난 4월 2일 산중총회에서 방장에 추대된 것도 오랜 출가생활의 큰 이정표가 아닐 수 없다. 스님은 추대를 수락하며 “방장이 아니라 방장 행자로서, 정진하는 사람으로 또 대중과 산중을 위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겠다”며 “함께 탁마하자”고 말한 바 있다. 아직 조계종 중앙종회의 추대 절차가 남아있지만, 스님께 방장 추대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큰 돌덩어리를 짊어진 듯 무한한 책임과 의무, 사명감을 느낍니다. 덕숭산은 근대 불교사에서 선종을 중흥했던 곳이고 경허 만공 수월 해월 한암 혜암 벽초 스님 등 수많은 선사들을 배출한 곳입니다. 제가 방장수락사에서 ‘방장행자로 살겠다’라는 말을 했습니다만, 그것은 제가 만든 말이 아니라 옛 스님들의 말씀입니다.”
5대 총림 가운데 한 곳이자 선의 종갓집의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스님의 어깨가 무겁다는 말은 한 총림을 초월해 조게종 전체를 염려하는 뜻을 담고 있었다. 한 마디로 ‘오늘의 한국불교는 위기’라는 것이 스님의 진단이다.
“한국불교는 머리는 큰 데 가슴과 팔 다리는 허약합니다. 말로는 수미산을 깨부술 듯 하지만 실제의 행이 거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대승을 지향하면서도 소승보다도 실천이 부족합니다. 언행일치와 지행합일. 실질 수행이 필요한 것이지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21세기 민중의 지도자가 되고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더 철저히 수행해야 합니다.”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한 설정 스님의 진단은 냉정했고 그 해법은 단호했다. 수행인이 아닌 생활인이 되어버린 승단에서는 더 이상 불교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불교계에 시비와 난장판이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님들은 생활인으로서 절에 살아선 안됩니다. 수행인으로 살아야지 생활인으로 살다보니까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고 그것에 급급하다 보니까 가지각색의 추문과 비리와 주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려 각자가 승관(僧觀)이 확립돼야 합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고 사찰 경제가 넉넉하다 하더라도 승관이 확립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승권(僧權)과 직책이 쥐어진다면 그것은 속물들이 사는 집단이지 수행집단이 사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철저한 신심과 원력, 공심, 양심과 인격이 갖춰진 사람들로 승단이 구성될 때 비로소 불교의 앞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집단만이 민중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지, 어떤 속물 근성을 가진, 명리를 추구하는 그런 자들에 의해서는 승단이 바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에 따르면 신심, 원력, 공심은 솥의 세 발과 같아서 하나라도 무너지면 끝장이다. 불조(佛祖)의 가르침에 대한 정견과 확고한 신심, 나도 깨닫고 중생도 제도하겠다는 보살심과 원력, 나를 버리고 모두를 위해 살겠다는 공심(公心)이 있어야만 참된 출가생활이란 게 스님의 지론이다. 그러나 “요즘 스님들은 풍요로운 세상에서 자라나 물질의 소중함을 잘 모르다 보니 인내력과 같은 정신자세가 나약하고 인과에 대한 믿음도 약한 편”이어서 스님의 걱정이 적지 않다.
“출가생활을 잘 하려면 중(僧)의 생명인 신심, 원력, 공심을 확고히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설정 스님은 스님들이 바른 승관을 갖기 위해서는 수덕사의 가풍처럼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는 정신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님들이 신도들이나 사회에 의지하는 것을 줄여야 합니다. 내성을 기르고 자주력을 길러야지 국가의 보조금으로, 신자의 돈으로 사는 것은 안됩니다. 수덕사에서는 가능하다면 하나씩 해 나갈 것입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실의와 좌절을 느낄 수 없습니다.”
설정 스님은“절에서 채소 등 먹거리를 직접 키우는 것은 잡념을 버리는 수행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시주 은혜의 지중함을 느끼고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유지할 수도 있다. 힘든 일 하는 신도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기에, 먹고 쓰고 입는 모든 것에 여러 사람의 피와 땀이 묻어있음을 절감하게 된다는 것.
사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고 하는 선농일치(禪農一致), 노선(勞禪)일치의 가풍은 간화선의 전통이기도 하다. 일삼매를 통한 몰입이 가능하다면. 구지 좌복위에만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울력하면서 선문답을 즐겨한 마조, 백장, 황벽, 임제 선사와 같은 조사들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중에 화두를 들고 공부할 수 있음을 어록을 통해 남기고 있다.
위기의 한국 불교,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승관의 확립 외에 또 하나의 방법은 종무행정을 통한 제도적ㆍ행정적 개혁이 있다. 덕숭문중 스님들을 비롯해 종단 전체의 광범위한 지지와 존경을 받아온 설정 스님이 총무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여론도 이 때문에 나왔다. 지난해 말부터 차기 총무원장 후보로 하마평에 오른 사실과 관련, 설정 스님은 “전혀 출마의향이 없다”며 솔직담백한 생각을 풀어놓았다.
“작년 금년 초까지 많은 분들이 총무원장 선거에 나서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농담조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10년이고 15년이고 승단을 모두 나에게 맡겨라. 그러면 생각해보겠다.’라고요. (웃음) 방장 문제도 이렇게 결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자꾸 말이 많아집디다. ‘아무개라는 사람이 영순위다, 어디 다니면서 (총무원장) 선거운동을 조금씩 하고 있다, 안 나온다고는 하지만 언제 나올지 모른다’ 이런 소리가 들리고 해서 우선 이런 생각만이라도 줄여주어야겠다고 생각해 방장 추대를 수락했습니다. 아시다시피 5년 동안 서울 총무원에 있었습니다. (94~99년 제11대 중앙종회 의장, 중앙종회의원 역임) 그때는 원장을 하려고도 생각했습니다. 원장을 해서 내 나름대로 종단을 변화시켜보자고 생각했고, 또 많은 지지자들과 후원자들이 본사단위로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판에 뛰어들어 종단을 개혁하겠다는 생각은 ‘진정한 수행자로 살겠다’는 서원으로 180도 바뀌었다. 발상의 전환은 죽음과의 정면 대결을 통해서 이뤄졌다.
“1998~99년도에 제가 죽을병(췌장암)이 들어서 총무원장 선거에 뛰어들지 못했습니다. 미국 병원에서 CNN으로 조계사를 포클레인으로 찍어내리고, 돌을 던지고 각목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상당한 충격과 자괴심을 느꼈습니다. 내가 종단에 5년 동안 있으면서 나를 지지했던 사람이 원장에 나가보라 그렇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병 때문에 못 나갔고, 종단이 저렇게까지 간다고 하면 앞으로 수십 년간 후퇴하겠구나 하는 안타까움으로 상당히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병이 났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선가의 중이 됐으면서 수행을 잘 못해서 병이 생겼다. 쓸데없이 총무원에 가서 천방지축으로 뭘 하겠다고 설치고 다녀서 병이 생겼다. 내가 죽지 않고 살면 꼭 진정한 수행자로 살겠다. 그리고 절대 쉽고 편케는 살지 않겠다’고 저와 약속했습니다. 선배 후배되는 많은 분들이 와서 ‘종단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데 스님 혼자 편하자고 이렇게 사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지만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설정 스님은 미국에서 돌아와 봉암사 선원에 들어갈 때 체중이 51kg이었다. 병이 회복 되지 않아 약을 한 주먹씩 먹을 정도였다. 그때 ‘좌복 위에서 그냥 정진하다 죽겠다’ 하고 갔는데 3년 후에 몸이 57kg으로 늘어났고 또 상원사에서 정진할 때 몸이 회복의 단계까지 갔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 곳(정혜사)에 와서 10년째 살면서 나름대로 진단을 내리면, 이제 내가 제자리에 잘 왔구나, 방황하지 않고 허덕이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그런 상황에 왔습니다.”
설정 스님은 ‘승격(僧格)은 인격(人格)의 위에 있다’고 말한다. 승격을 갖추려면 거기에는 철저한 자기희생과 봉사와 끝없는 하심, 아상(我相)을 사정없이 내려 팽개치는 그러한 사람이 되야 한다고 말한다. 아상이 없는 사람들, 하심으로 다져진 사람들로 절집이 만들어졌을 때 절집안의 감투싸움과 온갖 시비 갈등이 종식될 것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승격이 갖춰졌더라도 제도가 개선되지 않고선 한계에 직면하기 마련. 설정 스님은 ‘선거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불교는 망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부정한 일이 일어나도 즉각 처리가 되지 않습니다. 절집안에서는 대중공사를 통해 하루아침에 절에서 쫓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호계원에서 초심, 재심을 하는 동안 로비를 통해서 살아나기도 합니다. 선거제도도 큰 문제입니다. 개선하지 않으면 불교가 망합니다. 종회의원 선거에 수천만 원이 들고, 총무원장 선거에 수억, 수십억 원을 씁니다. 국회의원도 100만원 받으면 모가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절집안에서 어떻게 삼보정재가 좋지 않은 곳에 쓰입니까. 서산 스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중 된 것이 그게 간단한 일이냐. 먹고 살기 위해서도 아니요, 편안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다. 불조의 혜명을 이어서 도탄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출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이런 병폐를 쓸어버리지 않고서는, 지금 이런 구태의연한 선거 방법에 의해서 계속 나간다는 것은 불교를 스스로 멸망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병든 수좌들, 돈 없어 공부 못하는 수좌들, 또 신도 자제들 끝도 없이 많은데 어쩌자고 자기의 일신의 명예를 위해서 돈을 물 쓰듯 합니까. 이는 시정을 해야 합니다. 이런 짓을 반복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설정 스님의 애종심과 불교 사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방장 추대사에서 덕숭총림의 수행가풍 확립과 국제포교를 강조한 스님은 현재 국제포교의 중심인 서울 화계사 회주를 겸임하면서 해외포교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불교를 세계화 하려면 외국인 스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사미율의나 비구계는 물론 수계의식조차 영어로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교재도 만들지 않고 국제포교, 세계포교 한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문신(文身)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서구에서는 문화적으로 문신은 흔한 일이지만, 외국인 출가자가 수차례 지우는 수술을 해도 계를 주지 않습니다. 스님들의 삭발을 해형(解形: 형상을 무너뜨림)이라고 합니다. 문신의 흔적에 매달려 계를 주지 않는 것은 문제입니다. 수행 공간도 부족하고 지원도 부족합니다. 무상사의 경우 화계사의 지원이 있어 외국인에게 오고 가는 비행기 삯 외에는 받지 않지만 여전히 예산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종단차원의 깊은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설정 스님은 기회가 되면 국내 외국인 스님들은 물론 해외 불자들이 영어나 스페인어 등으로 들을 수 있는 선어록 강좌를 열 계획이다. 국ㆍ내외 선사의 어록을 우리 시대에 맞는 언어로 설법함으로써 간화선에 대한 이해를 돕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숭산 스님 입적이후 공허감을 느끼고 있는 외국인 제자들을 한마음으로 연결하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참선 공부법은 물론 한국불교의 역사와 특성, 의례, 승단의 조직운영과 교육단계 등을 익힐 수 있게 해 한국 선에 대한 이해를 높이도록 할 생각이다. 이는 결국 외국인들이 스스로 한국 불교를 배우고 귀국해서도 스스로 포교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열세살 어린 나이에 출가해 벽초, 금봉, 원담 스님 등 고승들로부터 담금질을 받으며 일과 수행이 둘이 아닌 공부를 해 온 설정 스님. ‘불교계에 어른이 없다’는 소리가 들리는 요즘, 스님의 사자후(獅子吼)는 더욱 아프고도 통쾌했다. 번뇌망상을 죽이는 살인검(殺人劍)이자 본래부터 밝고 청정한 본성을 드러내는 활인검(活人劍)이 바로 스님의 직심(直心)에서 나온 직언(直言)이 아닐까.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라 하지 않습니까. 함께 부처님이 돼야 합니다. 오늘 싫은 소리를 많이 해서 아파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번 부처님오신날 덕담은 어느 해보다 아픈 할(喝: 고함치기)과 방(棒: 몽둥이질)이 쏟아졌다. 할과 방을 맞고 죽었다 살아날 수만 있다면, 그 경책은 수천만 인을 살리는 약값을 할 터이다. 부처님오신날은 형상에 치우친 행사에 치중하기 보다는 잊고 살았던 저마다의 본심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간과 출세간의 사부대중은 부처님 법 그대로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덕숭산의 봄비는 그동안 물든 우리 언행을 청정하게 씻어내리는 법비가 되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