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에 대한 비판: 무불(無佛)시대의 붓다들

- 강사 : 조성택 (고려대학교 철학과ㆍ불교철학)
- 주최 : 한국학술진흥재단
- 일시 : 2008년 8월 9일
- 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강당
- 후원 : 교육과학기술부

인문학의 위기의식에서 기획된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 시리즈’ 그 아홉 번째 강연을 맡은 조성택 교수(고려대)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청중의 ‘자발성’에 감탄하며, 한국불교계와 인문학계의 밝은 미래를 희망했다. 실제로 매회 강연 현장에서 보여 지는 시민과 관련 전공자들의 참여 열기는 대단하다. 이번 강연은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붓다의 존재 그 세 번째 시간으로 모순어법으로 접근한 ‘무불 시대에 붓다(Buddhaa in Buddhalesstime)’이다. 붓다를 찾음으로서 스스로 붓다의 서원을 세우는 시대를 논한다.

#보살이란 무엇인가?
가장 정확한 정의는 부처님의 전생입니다. 정각을 얻기 전 보살이었을 때입니다. 이 땅에 왕자로 태어나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기 전 존재. 석가모니 붓다 다음의 부처인 미륵 또한 현재 보살로 불려야 옳습니다.
구원자로서 보살이 있습니다. 세상의 중생이 성불을 이룰 때까지 성불을 미룬 보살이 입니다. 이러한 보살들은 대승불교에 등장하며 각각의 영역과 특장이 있습니다. 반면 우리 인간은 깨달음을 미룰 이유가 없습니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즉각 얻어야 할 것입니다. ‘뉴욕타임즈’ 기자가 달라이라마를 인터뷰했습니다. 달라이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신도 깨달음을 미룹니까?”묻자 “깨달음을 목전에 둔 수행자가 깨달음을 미루는 일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깨달음을 미루면 곤란하다는 의미입니다.
문화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해 변화합니다. 문화의 주체적 수용이라고 하죠. 인도의 보살(아발로끼떼슈와라)과 중국의 보살 그리고 한국의 보살이 차이를 지니는 이유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한국만의 보살이 있습니다. 아직 한국불교 학계에서 연구되지 않은 영역입니다. 보살의 용례가 한국에서는 절에 다니는 여성 재가신도를 의미하게 됐는지 그 근거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보살이라는 말이 붓다 살아생전부터 있던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아실 겁니다. 기원전 6~4세기에 활동했던 붓다가 열반하고 기원전 1세기정도 되면 보살의 용어가 등장합니다. 부처님 생애를 그린 불교 경전인 ‘불전문학’으로부터 보살의 어원을 찾는 것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부처님의 출생ㆍ성도ㆍ전법ㆍ열반의 네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붓다의 전생을 전기에 포함시켰습니다. 왜 현생만 다루지 않고 전생을 다루는가? 위대한 붓다의 전생 이야기를 포섭한 불전은 현재 547생으로 전생기가 남아 있습니다.
현재 이르는 일련의 수행 과정에서 붓다의 전생담은 수행의 단계에 따라 재배치되고 윤색됩니다. 대표적인 일화로서 ‘연등불 수기(受記)’가 있습니다. 기원 년 전후에 성립된 ‘마하바스투(Mahāvastu(大事))’에는 보살 이전의 예비 단계로 보통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시기인 자성행(自性行)ㆍ서원의 시기인 원성행(願性行)ㆍ열심히 정진하는 순성행(順性行)의 세 단계를 거쳐 연등불(Dīpankara Buddha)로부터 최종 수기를 받아 불퇴전행을 성취하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용례는 훨씬 다채롭고 복잡합니다. 단순히 붓다의 과거 전생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중생구제를 위해 스스로 깨달음을 미룬 존재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이 바로 범부(凡夫)보살입니다. 재가자와 출가자를 동시에 함의하고 있죠. 보살의 기준은 다만 ‘붓다가 되기로 원을 세웠는가’입니다.
여기서 풀리지 않는 의문은 ‘붓다의 전생을 의미하던 보살 개념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확대 됐는가’입니다. 현생의 수행모델을 통칭하는 범부보살을 통해 붓다는 숭배와 존경의 대상일 뿐 아니라 수행의 이상적 모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문헌 혹은 사상적 과정을 통해 붓다의 전생이 보통 사람들 현생의 수행 모델이 되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마하바스투’에서 확대된 보살 개념이 어느 정도 이론적 입지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연결 고리가 빠져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승과 보살시대
보살시대는 대승불교의 시작과 완성을 아우릅니다. 대승경전이 성립된 시기는 기원전 1세기이며 대승의 명칭이 나온 때는 2세기 무렵입니다. 저는 그 사이의 4~500년을 보살 시대라고 통칭하고자 합니다. 길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봄에 그 길이 있는 것입니다. 보살시대 또한 후대의 재구성으로 탄생된 것입니다.
폴 윌리엄스(영국 브리스톨대학 종교학)는 대승불교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결론내립니다. ‘대승은 지금도 그리고 과거에도 결코 하나의 단일한 현상이 아니었다. 학파도 종파도 아니며 오히려 하나의 정신적 운동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정체성을 획득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다른 정신적 운동들과 구별하여 대승의 정체성을 획득했다.’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사상적 내용을 실천하는 주체가 범부보살이라는 점에서 대승은 보살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보살시대란 대승을 지향하지만 대승이라는 용어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시기입니다. 정신적 운동의 다양한 주체들, 그러나 아직 그 지향점이 무엇인지 모색하던 다양한 실험 운동의 시기를 특별히 보살시대라 하며 일반적 의미의 대승 보살의 시대와 구분하고자 합니다. 보살 시대에 태어나 보살시대의 정점인 대승을 완성한 시기까지 살아 간 인물, 범부보살의 기원과 발전의 역사 ‘상제보살(常啼菩薩ㆍSadāpararudita)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보살시대를 살아간 상제보살(상비(常悲)보살).
상제보살은 무불시대에 붓다를 찾아서 ‘늘 울고 다니는’ 보살입니다. 울음의 은유 이상으로 의미심장한 캐릭터입니다. 이 인물은 기원 년 전후로부터 약 4~5세기에 걸쳐 여러 다른 문헌에 등장하면서 계속 진화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두 종류의 문헌 자료를 소개합니다. 하나는 <육도집경>에 제 81번째 일화로 소개되었고, 다른 하나는 ‘팔천송반야’계통의 <소품반야경>에 등장합니다. 지루가참이 2세기 번역한 <도행반야경>ㆍ3세기 지겸 번역의 <대명도경>ㆍ5세기 구마라집역의 <소품반야바라밀경>이 있습니다. 같은 내용의 이본들이지만 내용이 조금씩 다릅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다른 까닭입니다.
<육도집경>에서 상비보살은 무불시대에 정법을 찾아 헤매는 대승의 보살이 아니라 석가모니붓다의 한 전생 삶입니다. 붓다의 전생이었던 상비보살이 대승의 핵심 경전 중 하나인 <반야경>에서 범부보살로 전환되는 것은 붓다의 전생보살이 범부보살의 원형이었다는 가설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곧 수행의 주체가 계속 변화되는 종교 환경에서 스스로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중심 모티브는 무불시대의 좌절 가운데서 붓다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 모순은 위기의 상황에서 다시 붓다를 살려내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빚어진 것입니다. 육신의 소멸과 함께 영원히 사라진 붓다를 다시 살려내고자 하는 것은 아라한의 수명 연장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아라한의 수명연장이 법의 쇠퇴 관념과 관련한 소극적인 대응이라면 붓다의 수명연장은 적극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붓다의 현현(顯現)은 대승불교의 점진적인 전개 과정에서 ‘붓다의 수명연장’이 중요한 문제의식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 이면에는 아쇼카왕 이후 당시 불교인들이 직면했던 위기적 시대상황을 대변합니다. 상비보살은 울면서 질문합니다. “ 모든 부처님의 신령스런 빛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간 것인가?” 이 질문은 바로 무불 시대의 고난에 대해 불교인들이 던진 한 목소리입니다. 상비보살의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이 없었고 대승불교의 <법화경>에 이르러 붓다의 영원한 수명으로, <반주삼매경>에서 붓다에 대한 끊임없는 회상을 통해 붓다를 대면함으로써 그 답을 찾습니다. <화엄경>에 이르면 붓다의 영원한 우주적인 몸, 법신을 통해 해답을 찾지요.
무불시대의 붓다를 만나고저 끊임없이 울었던 보살은 아마도 대승불교가 시작된 시기의 전형적인 불교인의 모습이었을 겁니다. 타락한 사회와 정신의 시대적 혼란을 극복하고자 한 구도자. 내러티브를 통한 상제보살의 진화 과정은 붓다의 전생이 나의 현생이 되는 과정이며 대승불교의 연장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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