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도심 속 불교문화

고즈넉한 산사, 참선에 든 스님들…. 일반적으로 불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적인 것이 많다.
그러나 알고보면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도심에서도 의외로 불교문화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도심 곳곳에 불교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늘고 있는 것.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서울 조계사 부근은 불교문화를 생산하고 향유할 수 있는 핵심 클러스터(비슷한 업종의 다른 기능을 가진 단체들이 일정지역에 모여 네트워크를 형성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것) 지역이다. 불교미술 전시관, 공연장을 비롯해 장례문화, 복지, 강좌 등 불교의 과거·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문화공연장, 불교중앙박물관, 법련사 불일미술관, 한국불교미술박물관 등 불교문화를 맛볼 수 있는 기반 시설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 또한 불교문화 콘텐츠 생산자들도 함께 공존하고 있다.
특히 한국불교 1번지로 통하는 조계사는 그 자체가 바로 박물관이다. 대웅전만 보더라도 단청을 비롯한 건축 양식, 상단에 모셔진 삼존불과 탱화 등 다양한 불교문화를 한눈에 접할 수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가끔씩 조계사를 찾는다는 곽성배(34·예금보험공사)씨는 “도심 한가운데 전통이 숨쉬고 신앙심을 키우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이라며 “조계사에 오면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도심속 불교문화의 저변은 넓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의 도심 사찰을 중심으로 그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지만 많은 불자들이나 일반인들에게 도심 속의 불교문화는 낮설기만 하다.
성공회의 경우 서울 성공회대성당에서 수요일 점심 시간을 이용해 주먹밥 콘서트를 열고 있다. 명동성당 등에서도 짧은 공연이나 전시회를 꾸준히 개최한다. 성당이나 교회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심속 사찰이나 포교당에서는 이같은 시도가 거의 없다. 한국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불교문화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문화가 곧 포교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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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처음으로 문화조례를 채택한 순천, 부천영화제, 전주 한옥마을, 대구 담 허물기 운동 등의 성공이 대표적인 마인드 변화에서 가져온 결과다. 참여정부는 2004년 이후 부산, 광주, 전주, 경주를 문화 거점도시로 육성, 막대한 국비를 지원하고 있다. 타종교의 경우 이같은 정책에 따라 정부 지원으로 문화공간을 만드는 경우가 늘고 있다. 불교계에서도 사찰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거나, 도심속 전통·불교문화를 함께 소개하는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정부지원금 확보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홍정의 팀장은 “불교계에서도 문화마인드만 있다면 강좌와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역량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인드의 변화와 함께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다. 전시·연주 공간을 확보하고 그림이나 음악, 무용 등에 녹아든 불교문화를 일반인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문화는 사상이 담긴 예술을 접하고 그 체험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불교문화 역시 불자 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불교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불교문화 공간의 설립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매일 전시와 공연이 이루어진다면 스님 법문 못지 않게 포교 효과가 있을 것이다.
서울 조계사 인근, 부산 시청역 부산불교회관 인근, 대구 봉산문화거리 등을 불교문화 클러스터로 종단에서 지정해 집중적인 연구·투자로 문화 인프라를 구축해 불교의 생활화 현대화를 이끌어가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윤태석 불일미술관 큐레이터는 “불교 정신을 표현한 예술 작품이 공연되고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교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며 “종단이나 스님들이 훌륭한 작가 발굴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프라를 구축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구축된 전시·공연 공간에 채워 넣을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 개발이 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재 발굴과 양성이 병행돼야 한다. 동국대를 비롯한 불교계 교육기관에서 불교문화기획 또는 불교문화콘텐츠 학과를 개설해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불자 예술단체, 예술가 등이 만든 창조적인 문화콘텐츠도 불교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큰 요인이 될 수 있다.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 제 11조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건축하고자 할 때 건축비용의 100분의 1 이하의 범위 내에서 회화, 공예, 조각 등 미술 장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법’이라 불리는 이 법을 근거로 최근 도심에서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게 됐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흥국생명 빌딩 로비에는 재미설치미술가 강익중씨의 ‘아름다운 강산’이 전면에 설치되어 있다. ‘아름다운 강산’은 가로 세로 3인치의 채색 목판 7500개를 배열해 완성한 대작. 조그마한 목판 위에 그려진 작품 하나하나는 우리나라의 자연과 문화, 불교, 일상에서 뽑아낸 각기 다른 이미지들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종각역에 위치한 종로타워 뒤에는 국보 제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모형이 세워져 일반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윤범모 경원대 교수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에는 불교 용어가 하나도 없지만 불교 정신과 상징성을 모두 드러내며 일반인에게도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며 “굳이 불교라는 용어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불교정신을 담은 예술활동은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불교문화의 대중화에 힘쓸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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