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알게 모르게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당산철교 보수 공사 당시 을지로3가에서 홍대입구까지 한동안 지하철을 무임승차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하철에 걸린 ‘자비의 말씀’을 읽고 저의 업을 알게 됐습니다. 용서를 구하고 싶어 무임승차비를 포함한 얼마간의 돈을 보냅니다….”
지난 2002년, 한 시민의 참회편지가 서울지하철 을지로3가 역장에게 배달됐다. 편지봉투 안에는 그동안 무임승차한 비용을 내고 남을 돈도 들어있었다. “여분의 돈은 ‘자비의 말씀’ 게시판을 더 붙이는데 써 달라”는 말과 함께….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사)한국불교종단협의회 부설 비영리 포교단체 ‘법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모임’ 풍경소리(대표이사 혜자). ‘자비의 말씀’을 도심 지하철 역사에 설치해 일반 대중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쉽고도 재미있게 전하려고 지난 1999년 창립했다.
풍경소리는 초창기에 서울지하철공사 115개 역사를 시작으로 불과 2년 만에 전국의 모든 지하철 역사에 부처님 말씀이 담긴 게시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전국 639개의 지하철과 철도역에서 1915개에 이르는 ‘자비의 말씀’ 게시판을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군부대와 사찰, 학교 등의 공공기관에서도 점차 ‘자비의 말씀’ 게시판을 설치하고 있다.
이처럼 빠른 시간에 ‘지하철 포교’를 회향한 풍경소리. 하지만 그간 걸어온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자비의 말씀’ 사업을 시작한 지 수 개월만에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 게시판이 늘어나자 게시판 운영비도 덩달아 늘어났다. 1개 게시판을 관리하는 비용은 다달이 2만원에 불과하지만, 관리비를 후원하겠다는 사찰이 없어 매달 400여만원의 적자가 쌓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지방철도청 소속 역사에 설치할 게시판 200개를 제작할 돈도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2000년의 일이다.
이용성 사무총장은 “지하철 포교를 통해 나날이 부처님 말씀이 널리 퍼져가는 일에 환희심을 느꼈는데 뜻밖의 난관에 부딪혀 앞이 깜깜했다”면서도 “‘자비의 말씀’에 목마를 시민들을 생각하니 지하철포교의 원력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포교기금 마련 모금행사와 전시회 등으로 어렵게 위기를 넘긴 풍경소리는 2001년 세계최초로 지하철에 ‘봉축열차’를 운행하고 매년 소아암환우들을 후원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포교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포교를 원력삼아 꾸준히 실천해온 단체들은 풍경소리 뿐만이 아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18년째 장애인포교를 펼치고 있는 ‘원심회’, 한자가 생소한 오늘날의 불자들을 위해 42년째 역경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동국역경원’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원력을 키우고 있는 단체들이 있다.
원심회(회장 김장경)는 서울 조계사 교육관 지하에서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법회’를 봉행한다. 빛조차 잘 들지 않는 지하공간이지만, 장애인불자들에게는 그 어느 곳보다도 소중한 법당이다.
1988년 수화교육을 받던 불자들이 모여 ‘장애인에게도 불법을 널리 알리자’는 원력으로 자원봉사단체를 발족한 원심회. 당시 이웃 종교계는 장애인 성직자를 배출하고 장애인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 등 장애인 선교에 열심이었으나 불교계에는 장애인 포교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
이런 현실을 개탄한 원심회는 연중 내내 수화교육을 지도하고 수화강사를 파견하면서 불교계의 유일무이한 봉사단체로 성장했다. 1997년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불교자막 비디오테이프 600개를 제작해 무료 보급했으며 1998년에는 <법화경> 점자도서 및 녹음도서도 발간하는 등 장애인에게 불법을 전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한자를 한글로 번역하는 역경사업에만 꼬박 42년 한 길을 걸어온 동국역경원(원장 월운)도 포교원력을 실천해 온 단체. 그야말로 우리시대의 구마라집이라 부를 만하다.
1964년 운허 스님을 주축으로 출범한 이후 2001년에 이르러서야 한글대장경 318권을 책으로 완역해냈다. 1권의 한글대장경 제작비에 3천만원 이상의 경비가 소요되고 연평균 10억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사업이었다. 전체 경비 가운데 60%를 국고지원으로 충당하며 힘겹게 역경사업을 마친 동국역경원 사람들은 오는 2009년 완료를 목표로 현재 개정판 작업과 인터넷 대장경 만드는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최철환 편찬부장은 “역경사업은 그야말로 ‘역경’이었다”며 “개원 초기부터 내내 재정과 인력이 부족해 한 때는 ‘완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위기까지 느꼈지만 많은 사람들의 원력과 믿음 덕택에 대사업을 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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