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과의 대화】지옹스님<화엄사 선덕>

몸과 마음 동요없는 것이 좌선
업장 녹으면 본자성 드러나요

조계종 교육원이 본말사 주지스님 8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종단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응답자의 69.2%가 ‘승려의 자질향상과 수행정신 회복’을 꼽았으며 94.7%가 ‘출가기준이 엄격해야 한다’고 답했다. 승가의 대사회적 위상추락을 절감하며 승가의 자질함양과 승풍진작이 시급함을 절감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또 2월 23일 조계종 교육원, 강원, 중앙승가대, 종회, 선방 등의 대표들은 ‘종단사태의 교훈과 승가의 과제’ 좌담회에서 98년과 99년과 같은 종단사태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스님들의 재교육을 통한 자질향상을 으뜸과제로, 계율교육 등의 제도화가 시급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었다.
19살에 출가한 뒤 말사 주지 한번 맡지 않고 일생을 선방 수좌로 보낸 지옹(智翁)스님을 만나 출가수행자의 자세와 승가의 위상확립, 그리고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지옹스님은 1970년부터 1983년까지 13년동안 해남 대둔사 북암 옆에 토굴을 직접 짓고 손수 밥을 지어먹으며 혹독한 수행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혼자 지냈지만 대중생할과 똑같이 죽비를 쳐 바릿대를 펴고, 입선과 방선을 하는 등 철저하게 고행을 했고, 최근까지도 선방에서 까마득한 후학들과 함께 안거에 드는 등 수행에 귀감을 보여온 선사다.


─스님께서는 1944년에 금강산 마하연에서 출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올해로 출가 56년째인데 그 옛날 하고 요새 스님들 하고 출가 목적이나 출가하는 마음자세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끼시는지요? 세월이 아무리 달라졌어도 ‘도를 깨치겠다’는 근본목적은 변함없을 것 같은데....

▲예전에 스님들은 부모형제조차도 다 버리고 산문에 들 때의 마음이 요즘보다는 확고부동하고 초발심을 견지하는 마음도 보다 철저했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속세를 버렸지만 중생을 부모로 여기고 도를 깨쳐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이 강했지요.
나도 출가한 지 56년이 넘었지만 한번도 집에 안 갔어요. 주지를 하고 가람불사를 하는 등 소임이 있겠지만 수행 잘해서 본 자성을 보고 중생제도하는 근본 목적을 잊으면 안됩니다. 양식 없으면 탁발해서 먹고 옷이 없으면 누더기를 주워 입겠다는 굳건한 마음만 있으면 되지요.
세상연에 연연할 것이 없어요. 일생 수도하다가 죽으면 내생에 또 하고 끊임없이 수행하겠다는 마음을 평생 지속시켜야 합니다.


─지난해와 같은 종단 분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뜻에서 종단사태의 본질을 바로 보고 승가의 바람직한 진로와 승가교육을 어떻게 실시할 것인지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는 좌담회가 개최되는 등 승가의 자질향상과 청정수행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승풍진작을 통한 청정한 승가상의 확립을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되는지요?

▲첫째가 계행입니다. 계행이 없고는 불교가 살아날 수가 없어요. 본래 우리 마음 자성자리가 우주생기기 전에 있어요. 마음자리속에 삼천대천세계가 벌어져 있는 거지. 삼천대천 세계가 마음자리 바깥에 있어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예요.
하늘에 해가 뜨면 나무도 꽃도 피고 습기도 마르고 하는 것처럼 그런 그 본자성자리속에서 전부 화현해 나오는 것이지요. 우리가 세세생생 살생도 많이 하고 도둑질도 많이 하고 거짓말도 많이 하고 술도 많이 먹고 음행도 많이 하고…
그런 업을 지어가지고 중생노릇을 해왔지요, 본 자성은 저버리고. 그러니까 계행을 지키는 것이, 그대로 범하지 않는 것이 토대가 돼야만 닦아나갈 수 있습니다. 허공에 해가 비치면 세상사가 다 밝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업장을 다 소멸하면 본래 있는 자성이 드러납니다. 불교는 어디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예요. 다생겁래 탐진치로 인해 죄를 짓고 또 죄를 짓고 해 사람도 되고 축생도 되고 이렇게 윤회를 하며 고생을 하고 사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별별 동물, 미물이 다 있지요, 우리도 그러한 몸을 겪고 내려온 것입니다. 어쩌다가 마음을 잘 써가지고 금생에 부처님법을 만난 거지. 이러한 귀한 인연을 만났는데 계율을 토대로 수도해야 수도가 제대로 되고 또 본자성을 찾을 수 있어요. 살생하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 하는 자체가 본 마음이기 때문에 계행을 지키는 것이나 수도하는 것이 둘이 아니예요. 계행을 지키는 것이 곧 수도요, 도를 닦는 것이 곧 계행을 지키는 겁니다. 이것만 명심하면 다 해결이 됩니다.


─요새는 스님들도 선방에서 수행하기보다는 주지로 가고 싶어하고 포교·복지로 나가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일생 수좌로만 살아오셨는데요. 이런 경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생활방편으로 하는 일이 아닌가, 명예 때문이 아닌가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수행부터 든든하게 바로 되어 있어야 되고, 모든것을 수행방편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새 풍토가 수행에만 전념하는 사람들을 훌륭하다 말로는 하지만 일생동안 여법하게 걸망지고 수도하는 사람들을 진실로 위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돈 많이 생기는 절에는 서로 주지를 하려고 싸워요.
그건 수행이 아니라 욕심입니다. 가람을 수호하려면 돈이 좀 있어야 되지만 돈 때문에 싸울 정도가 되면 안 되지요. 현재 수행풍토가 희박해져 가 정말 걱정입니다.
나 같은 이는 절도 안 맡고 수좌로만 떠돌다보니 어느 절에도 마음놓고 있지를 못해요. 요새 문중의식이 너무 강해 다른 사람들은 발붙일 수도 없어요. 지금과 같은 편협된 문중의식을 타파해야 한국불교가 발전합니다.
어른을 모시는 풍토가 다시 자리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입만 가지고 수행회복하자 떠들어봤자 소용없어요. 공부가 투철한 어떤 스님이 한군데 자리를 잡고 진짜로 수행하고 싶은 사람 오라 해서 속인이든 중이든, 그래서 한명이든 두명이든 철두철미 가르치면 될까. ‘일생동안 수도만 하다 죽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많이 나와야지.

─노스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행자때 평생의 수행지침이 세워진다’고 하십니다. 출가자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지금의 행자교육 제도로는 미흡하다는 것이지요. 철저하게 수행가풍을 들이기 위한. 행자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자교육원을 별도로 만들어 최소 6개월~1년 교육을 시키고 승가고시도 철저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절에서의 규율이 엄했지요. 술을 한잔 먹든지 담배를 피우든지 하면 그대로 내쫓았어요. 계행에 어긋나면 바로 옷 벗기고 속복을 입혀서 내쫓았지요. 또 여자는 절에 절대 못 들어왔어요. 요새는 너무 무뎌졌지요.
예전에 수좌들은 음식을 여자가 만들었다면 먹지도 않고 내버렸지요. 그만큼 계행에 철저했다는 얘기지요. 그 정신을 지켜야 합니다. 그게 풀어진 것이 일제시대부터지요.

─최근 들어 참선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어렵다고도 하고, 수행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지레 고개를 흔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보다는 기복에 빠지기 쉬운데 불교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요.

▲불교를 소극적으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우선 우리 마음자리가 우주 생기기 전에 본래 있는데 그 마음자리에서 한생각 일어나는데서 시방세계가 벌어졌으니 우주 만물이 다 청정한 마음이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방속에 들앉아 있으면 방안에 있는 것을 모를게 없는 것처럼 본래 마음자리를 알게되면 우주진리를 자연히 깨치게 되는 것이지요. 불교는 그만큼 스케일이 큽니다. 일체 모든 것이 불교 안에 안들어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바로 중생에게 교화해서 끝이 없고 시작도 없는 안락생활, 참말로 자유자재한 근본도리를 바로 가르치고 바로 참구해서 바로 보게 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우주라는 것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무한히 크지만 그것이 이처럼, 내 손바닥안에 있는 컵을 보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깨치는 것이 불교입니다. 기독교는 하늘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이 제일이라 하지만 불교에서는 삼천대천세계를 말하지요.
수억만개의 세계가 있지만 중생들이 마음먹는 것, 움직이는 것을 마음 하나로 다 보아버립니다. 우주 전체가 내 마음 자성자리와 같다는 이치를 체득하는 것이 부처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눈을 가지고 보듯이 우주 전체가 전부 다 봐버려져요.
우리 몸뚱이가 눈이 있으면 눈으로 보고 입이 있으면 입으로 말하듯 그때가서는 우주 전체가 내 눈 내 입이 되는 것이지요. 상대가 없어요. 부처님 같은 큰 도인들은 중생들이 보기엔 몸이 있는 것 같지만 우주 전체가 몸이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시방세계 이대로가 내 몸이요, 이대로가 내 눈이지요.
팔만사천 법문이 있지만 그 핵심은 근본 마음자성자리를 들고 업장을 녹이는 바른 길로 들어가 부처가 되라는 것이지요.


─요새 도시에 있는 선방에서는 생활 가운데 틈틈히 시간을 내어 좌선을 하려는 재가자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현상인데요, 참선을 하는 불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지요.

▲부처님 당시에 사리불이 고요한 숲속 나무밑에서 많아 좌선을 하고 있는 것을 유마거사가 보고 타이른 말이 있습니다.
“앉아만 있다고 해서 그것을 좌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실속에 살면서도 몸과 마음이 동요가 없는 것이 좌선이다. 생각을 쉬어버린 무심한 경지에 있으면서도 온갖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좌선이다. 마음이 고요에 빠지지 않고 또 밖으로 흩어지지 않는 것이 좌선이다. 번뇌를 끊지않고 열반에 드는 것이 좌선이다.”
장사를 하든지 밥을 먹든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거기에 끄달리지 않으면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뭘 하더라도 선이 될 수 있습니다. 선방에 들어앉아 하는 것은 그것에서 힘을 양성해 가지고 이 세상에서 뭘 하더라도 여여하게 하자는 뜻이니까 초보자들은 선방에 가서 하면 힘이 생기지요.
그러나 꼭 선방에 들어앉아 있어야만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도리라는 것은 한생각 일어나기 전때, 한생각도 안 일어나는, 말 안하고 생각 안 일어날때 오는 당처, 가만 있을때 오는 근본당처를 들고나가는 것이 선입니다.
우주생기기 전때 근본당처를 들고나가는 것이 선입니다.


─망상때문에 진척이 안된다는 사람들이 꽤 됩니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망상이 태산같이 오더라도 망상이 왔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지요. 가만 놔두고 화두에 집중하세요. 본자성 들고나가는 것이 힘이 세지면 번뇌망상이 점점 녹습니다.
힘을 얻으면 새로 든다는 생각도 없고 망상이 일어난다는 생각도 없고 저절로 죽 나가게 되지요.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 언제라도 똑같이 되고. 또 밤에 누워자면서 꿈을 꾸더라도 화두가 들리지요.
그 다음단계로 넘어가면 누워 자 코를 골더라도 화두가 들려. 남들이 보면 누워 자는 것 같지만 정신상으로는 자는 것이 없으니까 저절로 화두가 들리는 경지에 간다면 깨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염불수행은 일반적으로 쉬운 수행법으로 알고있고 요새 부쩍 많이들 하고 있습니다. 염불수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아미타불 부르든지 관세음보살 또는 지장보살 부르든지 뭘 하더라도 조금도 차별이 없어요. 첫번에는 고성지(高聲持)로 하세요. 큰소리로 부르는 것이지요.
그렇게 익혀서 조금 힘을 얻게되면 옆에 사람이 들을까 말까 하는 미성지(微聲持)로 하고, 그래서 힘을 얻어 나가면 혓바닥을 놀리지 않아도 되는 ‘비동설지(非動舌持), 즉 혓바닥을 놀리지 않아도 저절로 염불이 나간다는 경지지요. 자꾸 그렇게 해 나가다 보면 힘이 생깁니다.
그렇게 힘을 얻으면 금강지(金綱持)로 들어갑니다. 금강지로 들어간다는 것은 염불할 것도 없고 선정할 것도 없고 하려고 할 것도 없이 자연적으로 저절로 되는 경지지요. 그게 염불선입니다.
그렇게 익고 익고 더 익히면 바닷물에 달이 비추는데 파도가 쳐도 조금치도 동하지 않고 등대가 비추거나 배가 오거나 조금도 동요함이 없는 달과 같은 경지에 이릅니다. 염불선으로 해서 금강지에 드는 것이나 꿈속에서 조차도 화두에 드는 것이나 한가지예요.
우리가 성불한다는 것이 뭐 될것을 찾아가지고 되나보다 이렇게 아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세요. 견성성불은 이미 돼가지고 있는데 허공의 해와 같이 본 당체를 들고나가면 다생겁래 익힌 업장이 녹아빠지면서 본자성이 드러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상좌들이나 후학들에게 평소 강조하시는 점은.

▲하나입니다, 청정계행으로 공부 잘하라고 합니다. 불교 살리고 죽이는 것이 다 계행 지키기에 달려있어요. 계행이 없는 데서 공부는 발전못합니다.
계행이 근본이 되면서 공부를 하면 계행과 선이 둘 아닌 지경에 들어가고 그래야 진짜 공부가 되는 것이지요.

대담=이경숙 부장
(gslee@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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