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쓰는 부산불교 이야기②

“절 밑에 45년을 살았지만 초청을 받아서 스님들과 이렇게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기는 처음입니다. 너무 좋습니다.”

올 2월 범어사에서 열린 사하촌 주민 화합의 장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던 한 주민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찰과 주민의 만남을 준비할 때만 해도 범어사와 사하촌 주민들의 갈등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었다. 그러나 범어사에서 하룻밤을 보낸 주민들의 마음은 어느새 봄 햇살 아래 얼음 녹듯 녹아내렸다. 범어사 연수국장을 맡은 이후 꾸준히 진행해온 템플스테이였지만 그날 주민들과 보낸 시간은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하고 뜻 깊었다는 기억이다.

이처럼 템플스테이는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이 보여준 깨달음의 세계를 지금의 시대에 잘 맞도록 프로그램화 한 것이며 우리 한국의 전통과 사찰 문화,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하게 하는, 둘도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연수국장을 맡은 이후 다양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특화된 템플스테이를 기획하기 위해 고민해왔다. 단 한사람이라도 더 불교를 알기 쉽게 접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깨닫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멀리 외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사찰 고유의 정서를 보여주고, 5천년 역사의 민족성과 기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한국의 정신문화를 알리고자 했다.

또 ‘소년소녀가장 초청’ 템플스테이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 시내에 있는 중, 고등학생들 중 소년소녀가장들을 초청하기 위하여 학교별로 2~3명씩 50명, 구 단위로 2~3명씩 50명으로 나눠 2차례 진행키로 했지만 어쩐 일인지 몇몇 학교와 구청을 제외하곤 마감 날까지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와 구청복지과로 전화를 해 봤더니, 구청 담당자들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나 그 밖의 다른 이유로 소년소녀가장들의 연락처조차 알려주길 꺼려했다. 하소연 끝에 동사무소 연락처를 받아 연락한 끝에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 인원을 모집할 수 있었다.

범어사는 그 외에도 일선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을 초청해서 일상의 스트레스와 복잡한 일상을 툴툴 털고 직장의 동료와 상하간의 불신불만을 해소하게 하는 템플스테이도 진행했다. ‘관과 사찰의 만남’ 이란 주제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부드러운 행정이 될 수 있도록 하는데도 기여를 했다고 본다.

템플스테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효과는 바로 자원봉사자들이 경험하는 변화이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보다 자원봉사자들이 더욱 내실있는 삶을 살아 갈수 있는 방법을 체득한다는 것을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면서 느끼게 됐다.

자원봉사는 이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보살행이다. 만약에 부처님께서 이 시대에 출현하셨더라면 분명히 보살행을 자원봉사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원봉사란 ‘스스로 원해서 다른 사람을 받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다른 사람보다 낮은 곳에서 받들어 모신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자비의 행이었다.

범어사 연수국장을 맡은 이후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 위한 고민을 많이 해봤지만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계나 절망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으로 두고 또 되는 방향을 찾으면 되니까.

여러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면서 가장 넘기 힘든 부분이 공간의 문제다. 프로그램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시설이나 공간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나 생활공간이 주가 된 전통 사찰에서, 일반인들의 템플스테이나 기타 프로그램을 진행할만한 여유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런 공간적 제약 때문에 어떤 프로그램은 생각에만 그쳐야 하는 경우도 있고 절대 부족인 샤워시설이나 낙후된 화장실 등의 문제로 프로그램 진행에 애로를 겪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은 비단 범어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노는 토요일에 ‘염색’ ‘종이접기’ ‘과학교실’ ‘영어 뮤지컬’ ‘선무도’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에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홍법사의 경우도 공간 문제를 피해가지 못한다. ‘놀토’에 절로 몰려드는 아이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어 스님 방까지 내어주고 있다. 이처럼 사찰이 이제 스님들만의 공간이 아니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심지어 외국인들에게조차 개방돼 불교의 가르침을 알려야 한다면 수행공간과 구별되는 수련공간을 별도로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여러 사찰들에서 특색 있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홍법사의 놀토 프로그램은 아이들뿐 아니라 학부모들의 발길도 사찰로 향하게 만들고 있으니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불법과의 인연을 꽃피우게 하는 씨앗이 놀토 프로그램속에 자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음사의 경우 상담과정이나, 호스피스 교육 과정을 개설해 자원봉사자의 자질을 한층 더 전문화하고 있다. 또 용두산 공원 입구에 위치한 미타선원은 시민선방을 24시간 개방해 수행도량의 면모를 갖추는 한편, 다양한 문화 강좌로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매월 한차례 청소년들을 위한 거리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이 모든 노력들은 부처님 가르침의 요체를 현실에서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한 노력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앞으로 범어사도 현 시대의 다양한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산에 위치한 교구본사로서의 역할을 다할 생각이다. 사단법인 동련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연합회의 자문을 구해, 어린이들을 위한 노는 토요일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방학동안 알차게 프로그램을 준비한다면 범어사 곳곳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을 대할 날도 머지않았다.

그 어린이의 웃음이 바로 희망이며 부처님의 본래면목임을 믿으며 더위와 함께 찾아온 여름수련회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사부대중의 마음을 모을 채비를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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