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편안하십니까]수산 스님(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매일 불갑사 마을입구까지 포행하는 수산 스님. 사진=박재완 기자.
호남지방을 강타한 연이은 폭설에 영광 불갑사도 눈폭탄을 맞은 듯하다. 사방이 새하얗고 군데군데 검푸른 것은 전각과 나무뿐이다.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수산지종(壽山知宗)스님을 찾아 나선 발걸음이 눈길에 막혀 연기되었다가, 어렵게 불갑사 무각선원에서 뵙게 됐다.

“눈길에 어려운 걸음 하셨어요. 날씨가 차가우니 어여 들어와 차 한잔 하시게나.”

해를 넘겨 세수 85세의 수산 스님은 갑작스런 방문객에게 따뜻한 차부터 권한다. 스님과의 인터뷰는 2년 전에도 있었다. 스님은 그때보다 더 건강해 보였고, 무엇보다 온화하고 해맑은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불현듯, 노스님에게서는 두 해 동안의 도를 향한 구도행이 그대로 나타나 보이는데 젊은 나는 그동안 무얼 했는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눈이 많아도 사나흘은 쉬었다가 내리는데 보름 넘도록 줄기차게 퍼 부은 것은 평생 처음입니다. 사람들이 편하게 살려는 욕심 때문에 자연이 파괴되고 있어요. 이번 여름엔 가뭄이 심하고 폭서가 오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눈길에도 스님을 찾는 방문객은 여전했다. 새벽 2시에 일어난 스님은 저녁나절까지 잠깐도 짬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스님은 찾는 이가 있으면 언제나 방문을 활짝 열고 손수 맞이한다.

“눈길에 보잘것없는 노승을 찾아오니 고맙죠. 와서 공부도 묻고, 살기가 힘들다고도 하고, 잘사는 방법도 물어봐요. 그런데 이네들 이야기를 듣고 보면 대부분 ‘욕심’이 문제입니다. 공부 잘하겠다는 욕심, 잘 살겠다는 욕심 말입니다.”

대중공양에 나선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왼쪽)을 맞고 있는 수산스님.


그래서 스님은 ‘인연 따라 살라’고 강조한다. 먼저 자기 위치를 알아야 하고 분수에 맞게 살라고 한다. 덧붙여 ‘효도’를 강조하는 것도 빠지지 않는 스님의 가르침이다. 이것은 물론 어린아이도 아는 가르침이지만 실천하지 않기에 자꾸 반복해서 들려주고 있다. 그래야 조금씩이라도 바뀌기 때문이다.

저녁 공양상을 받은 스님은 밥그릇에서 두어 숟가락을 덜어낸다. 스님은 소식(小食)과 함께 손수 개발한 운동으로 몸을 돌본다.
스님은 젊어서 어렵게 공부했다. 힘든 시절에 출가했고, 이미 입적한 법안 스님의 위패상좌가 되어 은사의 사랑도 받지 못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새벽부터 잠자리 들기 전까지 일하며 부전을 살아 강원 이력을 마쳤다. 그러다보니 관절염을 비롯해 디스크, 좌골신경통, 변비에 이름도 생소한 눈머리까지 병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님이 직접 개발한 체조.


“그때는 거지중이었지. 일하다가도 스님들이 경 읽는 소리를 들으면 같이 독송하고 싶어 가슴이 울렁거렸어요. 그렇지만 당시 편하게 지냈거나 호강한 스님들은 대부분 환속했어요. 힘들게 하는 공부에서 도가 나오는 것이니 쉽게 공부하려고 하지 말아야 해요.”

20여 년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근육과 내장을 풀어주는 마사지에서 앉고 서서하는 요가에 이르기까지 혼자서 하는 운동을 개발했다. 발을 180도 펴고, 가슴이 땅에 닿는 스님에게서 85세란 나이는 무색해 진다.

아직도 관절염은 이겨내지 못해 예불은 방안에서 원불을 모시고 한다. 스님이 직접 청수물 갈고 향 사르고 죽비 삼성으로 예를 올린다.

좌선하는 수산 스님.


스님의 일과는 예불에 이어 만암 스님에게 받은 ‘시심마’를 화두로 좌복에 앉으며 시작된다. 두어 시간이 흐른 후에 앉은 자리에서부터 1시간가량 운동을 하고, 낮에는 진입로 마을입구까지 행선(行禪)을 빼놓지 않는다. 여기에 스님이 손수 제조한 차를 수시로 마시고, 찾아오는 이게게 권하는 것도 빠지지 않는 낙이다.
지난 2004년 고불총림 방장으로 추대되고 바뀐 것이라면 백양사 설선당으로 주석처를 옮긴 것뿐이다.

지난 12월26일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고불총림 선원대중을 위해 공양 올리겠다는 전갈이 왔다.

백양사 설선당으로 자리를 옮겨 지관 스님 일행을 맞이한 방장스님은 “종단 업무로 바쁜 중에도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와 수행납자들을 격려해 주어 고맙다”며 치하했다.

방장스님은 지관 스님 일행을 접견하고 진입로 초입에 있는 가인마을까지 산책에 나섰다.

철저한 소식을 실천하는 수산 스님.



“늙은이 사는 모습 옆에서 본다고 특별한 게 있겠어요? 마음을 보아야지. 화두라는 놈은 희유해서 잠을 자거나 일을 할 때도 함께 해야 편합니다.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겁니다. 겉모습 보려하지 말고 속을 봐요.”

결국 노스님의 겉모습만 보며 하루를 보내다가 한방 맞고 부끄러움에 도망치듯 길을 나섰다.


수산 스님은
80 평생 무소유 실천


수산지종 스님은 1922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삼년상을 마친 열아홉(1940년)에 백양사를 찾았다. 이듬해 법안 스님의 위패상좌가 되어 부전을 살며 강원을 이수하고, 1943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오랫동안 만암 스님을 시봉하고 전법게를 받았다.
1957년부터 완도 신흥사, 부안 개암사, 백양사 주지를 역임했다. 1975년부터 불갑사에 주석하고 있으며 1992년 학교법인 정광학원 8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때 스님이 가지고 있던 소장품을 정리해 정광학원에 기증했다.
가진 것이 있으면 공부가 되지 않는다며 평생 은행통장을 가지지 않았다. 1986년 조계종 원로의원과 2004년 3월 백양사 고불총림 방장에 추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산 스님의 가르침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듣지 않는 부처님에게서 ‘참사람’ 찾아보라

이번 안거기간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립니다. 눈 빗자루 들랴, 화두 들랴 여느 때보다 바쁜 때입니다. 몸이 부산하다고 마음까지 덩달아 날뛰어서는 안됩니다. 눈을 치우는 순간에도 화두를 놓지 않았을 때 공부는 다른 철보다 크게 진전될 것입니다.
공부는 안거에 들어간 수좌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가불자뿐 아니라 인류가 다같이 자기 자성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공부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알고, 옷(육신)을 벗어 버릴줄 아는 공부입니다. 이것을 일러 부처님은 ‘일대사 인연’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심코 태어난 것이 아니고 인연따라 온 것입니다. ‘밝게 태어나서 밝게 살다가 밝게 가는 것’이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전생에 오욕이 뚝 떨어져 밝게 살았기에 인간으로 나왔습니다. 그 인연으로 밝게 닦고 살다가 좋게 가야하는데 사람 몸을 받고서는 삼독에 빠져 버리곤 합니다. 밝게 왔건만 어둡게 살다가 어둡게 가는 것입니다. 공부는 어둡게 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채 가지 않도록 하기위해 하는 것입니다. 바로 ‘자성을 돌이켜 보는 공부’입니다.

삼한 사온이 없어지고 연이어 내리는 폭설이나, 쓰나미 같은 환경재앙은 자연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편해지고자 하는 욕심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욕심은 자연뿐 아니라 정신까지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선방과 세속에서 불법을 아는 이가 공부하는 것은 오염된 것을 정화시키는 작업입니다. ‘회광반조(回光返照)’로 자기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예부터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고 고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누구 하나 이에 대한 해답을 말하지 못합니다. 문자나 논리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물건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물건인가?’ 이 자리에 있는 ‘나’라는 물건을 제대로 안다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행락주의와 거짓된 알음알이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밝은 사람이 유식해야 금상첨화지 마음이 어두운 자가 문자만 밝으면 사기꾼이 됩니다.

언젠가 어느 노스님이 부처님 세 분을 보내오셨습니다. 부처님 한 분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 한 분은 귀를 덮고, 한 분은 입을 막고 계십니다. 그 모양새가 웃음을 자아내고 정감이 가서 방에서 잘 보이는 곳에 모셔두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저를 찾아와 묻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러면 저는 그 세 분의 부처님을 가리킵니다.
요즘 수행자나 재가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처님이 몸으로 보여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서옹 큰스님 2주기를 맞아 백양사에서 부도와 사리탑비를 제막했습니다. 서옹 스님은 후학들에게 임제선사의 ‘무위진인(無位眞人)’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평생 ‘참사람 운동’을 펴셨습니다.

빈부귀천, 분별심, 삼독심이 없는 것이 ‘무위’로, 명예와 욕망이 떨어진 자리를 ‘참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결코 자기마음대로 하는 것이 참사람이 아닙니다.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듣지 않는 부처님에게서 ‘참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만암 큰스님으로부터 받은 가르침 가운데 평생 잊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큰스님이 하루는 중 승(僧)자를 쓸 줄 아느냐고 물어요.

“사람 인(人)변에 일찍 증(曾)자 입니다” 했더니 “먼저 사람이 된 후에 비로소 중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참사람이 되지 않고 중이 되면 세속 못지않게 승가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이 세상은 너나없이 잘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모두들 잘 살 수 있는 일을 하지도 않고 바라기만 합니다. 솔직히 생각해 보세요. 염불을 하면서도 무언가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는 않는지요.
세상을 살면서 듣는 즉시 말하고, 보는 즉시 말하다보니 자기 자신은 물론 상대방까지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쉴 줄을 알아야 합니다. 주어진 대로 인연따라 살 때 쉴 줄도 알게 됩니다. 지은 복도 없이 바라는 마음으로 살면 재앙만 따를 뿐입니다.

또한 자신을 돌아보면서 건강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이는 육체와 마음 모두 건강해야 합니다. 항상 바른 자세로 앉으세요. 자세가 바를 때 마음도 바르게 됩니다. 자세가 비뚤어지면 마음도 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자기 몸만 귀하게 여겨 좋은 것 편한 것만 찾아서는 안됩니다. 자기 몸을 천하게 여겨야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 집니다.

이 노승도 젊어서는 요즘말로 ‘종합병원’으로 불렸습니다. 온갖 병을 다 가지고 살았습니다. 몸이 부실하니 공부는 뒷전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몸을 돌아 보았습니다. 몸을 잡고 나니 잠자는 중에도 화두를 들어야 편하고, 일하면서도 화두와 함께 합니다.

화두를 놓지 않는다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언행일치(言行一致)’하면 됩니다. 많이 배우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이나 글, 생각으로 많이 아는 것보다 자기 일상생활에 녹여 실천하는 것이 바로 화두와 함께하는 생활입니다. 새해를 맞아 자기 본분을 잘 지키며 소욕지족(少慾知足)하는 불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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